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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신생과 동산고락씨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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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헌공이 태자 신생 에게 동산 東山 고락씨 皋落 를 정벌하게 했다 . 이극이 간언하여 아뢰었다 . “태자는 대사 ( 冢 祀 ) 와 사직의 제사를 받들고 조석으로 군주의 식사를 살피는 사람입니다 . 태자를 ‘ 총자 冢 子 ’ 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 군주가 출행하면 도성을 지키되 도성을 수비할 사람이 있는 경우 군주를 따라나섭니다 . 따라나서는 것을 일러 ‘ 무군 撫軍 ’ 이라 하고 , 도성을 지키는 일을 ‘ 감국 監國 ’ 이라 하니 이것이 옛 제도입니다 . 무릇 군대를 지휘하게 되면 전권을 행사하고 병사들에게 맹세를 받는 것은 군주와 집정이 할 일이지 태자의 직무가 아닙니다 . 군의 성패는 명의 통제에 달려있는데 태자가 매사 군주의 명을 받게 되면 위엄이 서지 않고 , 또 전권을 행사하면 불효가 됩니다 . 그런 이유로 군주의 후계자는 군사를 지휘할 수 없습니다 . 군주가 등용에 실수하고 군을 인솔하여 위엄이 서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또 신은 고락씨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 들었으니 군주께서는 명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 ” 헌공이 말했다 . “과인에게 여러 아들이 있고 아직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지 알 수 없다 ! ” 이극은 그 말에 말없이 물러났다 . 이극이 태자를 접견하니 태자가 물었다 . “나는 폐출되는 것인가 ? ” “군주께서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말씀하셨고 , 군대를 인솔하라 교지하셨으니 임무를 처리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고 어찌 폐출될 것을 우려하십니까 ? 또 자식으로서 불효를 걱정하고 지위를 얻지 못할까 근심하지 마소서 . 스스로 정진하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태자가 군대를 지휘하여 출정할 때 헌공은 그에게 좌우의 색이 다른 편의를 입혀주고 , 손가락에 금결을 끼어 주었다 . 호돌 狐突 이 어융이었고 선우 先友 가 융우였다 . 양여자양 梁餘子養 이 한이 罕夷 의 병거를 몰고 선주목 先丹木 이 거우가 되었으며 양설대부 羊舌大夫 가 군위 ( 尉 ) 가 되었다 . 선우가 말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