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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화우華耦 (춘추좌전.6.15.2)

3 월 , 송나라의 화우 華耦 가 우리나라로 와서 결맹할 때 그의 모든 관속들이 수행했다 . 『춘추』 에 “송 사마 화손”으로 쓴 것은 그의 행동을 귀하게 여긴 것이다 . 문공이 그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 화우가 사양하며 말했다 . “군주의 선신 독 督 이 송 상공께 죄를 지었고 , 그 이름이 제후들의 간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 ☞ 2.2.1.) 신은 그의 제사를 받들고 있으니 감히 군주를 욕보일 수 있겠습니까 ? 아려 亞旅 가 주관하는 연회를 청합니다 . ” 노나라 사람들은 그를 명민하다고 여겼다 . 원문 三月 , 宋華耦 來盟 , 其官皆從之 . 書曰 “ 宋 司馬 華孫 ” , 貴之也 . 公與之宴 . 辭曰 : “ 君之先臣 督 得罪於 宋殤公 , 名在諸侯之策 . 臣承其祀 , 其敢辱君 ? 請承命於亞旅 . ” 魯 人以爲敏 . 관련 주석 ⊙ 三月 , 宋 司馬 華孫 來盟 : 화손 華孫 의 이름은 우 耦 이다 . 『좌전』에서 그를 “화우”라고 호칭한 까닭이다 . “화손”으로 쓴 것은 예를 들면 『좌전·양공 14 년』의 후성숙 厚成叔 을 후 厚 를 씨로 삼아 “후손 厚孫 ”이라고 부른 것과 같다 . 다른 나라의 대부가 노나라에 와서 결맹한 일은 모두 4 차례이다 . 환공 4 년의 “정나라 군주가 아우 어를 보내어 결맹했다 . ”와 선공 7 년의 “위나라 군주가 손량부를 보내 결맹했다 . ” 등에서 『춘추』는 모두 “사 使 ”자를 썼는데 , 다른 두 곳 , 즉 민공 2 년의 “제나라 고자가 와서 결맹했다 . ”는 기사와 본문에선 “사”자를 쓰지 않았다 . 쓰고 쓰지 않은 것에 어떤 특별한 예가 있는 것은 아니다 . “사”를 쓰지 않았어도 군주가 그를 보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 민공 2 년 제의 고자가 환공의 명으로 온 것임은 「제어」의 내용을 근거로 볼 때 충분히 알 수 있다 . 또 희공 4 년 “초의 굴완이 와서 군중에서 결맹했다”는 기사에 대해 『좌전』은 분명히 “초왕이 굴완을 군중으로 보냈다”고 쓰고 있다 . 즉 이 역시 초 성왕이 보낸 것이다 ....

2.2.1. 공보가孔父嘉와 화보독華父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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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환공 2 년 봄 , 송의 화보독이 공씨를 공격하여 공보를 죽이고 그의 처를 빼앗았다 . 송 상공이 분노했고 화보독은 두려운 나머지 상공을 시해했다 .  군자는 화보독이 군주를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고 이후 악에 동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 그래서 『춘추』는 군주의 시해를 먼저 썼다 .  환공이 제 희공 , 진 환공 , 정 장공과 직 稷 ( 하남성 상구현 . 송나라 ) 에서 회합하여 송나라의 변란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뇌물을 받고 화씨의 지위를 세워주었다 .  송 상공이 즉위하여 10 년 동안 11 차례의 전쟁이 있었고 백성들은 전쟁을 더 견딜 수 없었다 . 당시 공보가가 사마였고 화보독은 태재였다 . 백성들이 더 이상 전쟁을 감내할 수 없음을 알고 화보독이 선수를 쳐 널리 말하였다 . “전쟁은 사마가 주도했다 . ” 공보를 죽이고 상공을 시해한 후 , 정나라에 머물던 장공을 불러들여 옹립함으로써 정나라와 가까이했다 . 환공에게 고 郜 나라의 대정을 뇌물로 바쳤고 , 제나라 , 진 陳 나라 그리고 정나라에 모두 뇌물을 바쳤다 . 그리하여 화보독이 송나라 군주를 보좌하게 되었다 . 2.2.1.  二年春 , 宋督 攻 孔氏 , 殺 孔父 而取其妻 . 公怒 , 督 懼 , 遂弑 殤公 .  君子以 督 爲有無君之心 , 而後動於惡 , 故先書弑其君 .  會于 稷 , 以成 宋 亂 , 爲賂故 , 立 華氏 也 .  宋殤公 立 , 十年十一戰 , 民不堪命 . 孔父嘉 爲司馬 , 督 爲大宰 , 故因民之不堪命 , 先宣言曰 : “ 司馬則然 . ” 已殺 孔父 而弑 殤公 , 召 莊公 于 鄭 而立之 , 以親 鄭 . 以 郜 大鼎賂公 , 齊 · 陳 · 鄭 皆有賂 , 故遂相 宋公 . 해설 ▣ 二年春 , 宋督 攻 孔氏 , 殺 孔父 而取其妻 : 공보 孔父 는 이 당시 아직 공 孔 을 씨로 삼지 않은 상태이며 , “ 공씨 ” 는 후대에 이런 사실을 쫒아서 쓴 것이다 . 춘추좌전 표 - 송나라의 주요 귀족 ▣ 公怒 , 督 懼 , 遂弑 殤公 : 『공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