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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단견양, 면박함벽面縛銜璧(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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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 채 목공이 허 희공을 대동하고 무성 武城 ( 하남성 남양시 南陽市 북쪽 ) 에서 초 성왕을 접견하게 했다 . 희공은 등 뒤로 손을 결박하고 입에 옥을 물었으며 대부들은 상복을 입고 사들이 관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 성왕이 봉백 逢伯 에게 저들의 행동에 대해 물었다 . 봉백이 대답하였다 . “과거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였을 때 미자 계가 이같은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 그때 무왕은 친히 그의 포박을 풀어주고 , 입에 물었던 옥을 받고 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불제를 지냈습니다 . 관은 불태웠고 예로써 미자에게 명하여 그의 본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 ” 성왕은 그의 조언대로 했다 . 원문 5.6.4.  冬 , 蔡穆侯 將 許僖公 以見 楚子 於 武城 . 許男 面縛 , 銜璧 , 大夫衰絰 , 士輿櫬 . 楚子 問諸 逢伯 . 對曰 : “ 昔 武王 克 殷 , 微子 啟 如是 . 武王 親釋其縛 , 受其璧而祓之 , 焚其櫬 , 禮而命之 , 使復其所 . ” 楚子 從之 . 관련 주석 ▣ 冬 , 蔡穆侯 將 許僖公 以見 楚子 於 武城 : 초나라 군사들이 후퇴하여 무성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채나라의 주선으로 허나라가 초나라와 만났다 . 무성 武城 은 현재의 하남성 남양시 南陽市 북쪽이다 . ▣ 許男 面縛 : 면박 面縛 은 어쩌면 은허에서 출토된 토용처럼 여용 女俑 은 양손을 앞으로 묶고 , 남용 男俑 은 양 손목을 잘라 뒤로 돌려 놓은 것일 수도 있다 . 여기서는 홍량길의 주장을 따라 손을 등 뒤로 돌려 묶은 것으로 본다 . 혹자는 『사기·고조본기』의 “진 秦 왕자 영 嬰 이 흰 수레와 백마를 몰고 자신의 목을 끈으로 묶고서”라는 구절의 “ 係頸以組 ” 즉 면을 얼굴의 면으로 보기도 한다 . ▣ 銜璧 : 『좌전·애공 11 년』의 “진자행이 수하들에게 함옥 ( 망자의 입에 물리는 옥 . 옮긴이 ) 을 준비하게 했다 ( 陳子行 命其徒具含玉 ) ”와 같은 뜻이다 . 옛 사람들은 죽으면 입에 옥을 물려주는데 이것은 그가 죽은 사람임을 뜻한다 . 양관 楊寬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