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문공 공자중이의 망명 생활 (춘추좌전.5.26.3.)
( 기원전 655 년 ) 공자중이가 진나라의 혼란에 처했을 때 진나라는 그의 포성 蒲城 을 공격했고 , 포성 사람들은 싸우려 했지만 중이는 허락하지 않고 말했다 . “군부 君父 의 명의 보우로 살아왔고 이에 백성을 얻었다 . 무리가 있어 저항한다면 이보다 큰 죄가 없다 . 나는 도망칠 것이다 . ” 이어 적 狄 으로 도망쳤다 . 당시 중이를 따른 사람들은 호언 狐偃 , 조최 趙衰 , 전힐 顛 頡 , 위무자 魏武子 그리고 사공계자 司空季子 ( 서신 胥臣 ) 등이었다 . 적 狄 이 장구여 廧咎如 를 정벌하고 숙외 叔隗 와 계외 季隗 를 사로잡아 중이에게 바쳤다 . 중이는 계외를 취하여 백조 伯 鯈 와 숙류 叔劉 를 낳았고 , 숙외는 조최 趙衰 에게 주었는데 그녀가 조돈 趙盾 을 낳았다 . ( 기원전 644 년 . 혜공 7 년 ) 중이가 적을 떠나 제나라로 향할 때 계외에게 말했다 . “ 25 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거든 재가하라 . ” “그때면 재가를 하고 싶어도 관 속으로 들어갈 나이입니다 .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 ” 중이는 적에 머문 지 12 년 만에 제나라를 향해 떠났다 . ( 기원전 644 년 ) 위나라를 지나갈 때 위 문공이 중이를 예우하지 않았다 . 오록 五鹿 ( 하남성 복양현 濮陽縣 의 남쪽 30 리 ) 에서 출발하여 도중에 야인에게 음식을 구걸했더니 그가 흙덩어리를 내밀었다 . 중이가 분노하여 채찍으로 내려치려 했다 . 자범 ( 호언 ) 이 말했다 . “하늘이 내리신 것입니다 . ” 고개를 조아리고 흙덩어리를 받아 챙겼다 . ( 기원전 644 년 ) 중이가 제나라에 도착했다 . 환공은 그에게 여식을 주고 80 필의 말을 하사했다 . 중이는 제나라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렸고 종자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 종자들이 제나라를 떠나려고 뽕나무 밑에서 모의했는데 누에치는 여인이 나무 위에서 듣고 강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 강씨는 그녀를 죽인 후 중이에게 말했다 . “당신이 천하에 뜻을 지진 사실을 엿들은 사람을 제가 죽였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