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적赤狄 (춘추좌전.7.11.4.)
진 晉 의 극성자 郤 成子 ( 극결 ) 가 여러 적 狄 의 부족들 과 화친을 추구했다 . 당시 그들은 적적 赤狄 의 부역에 시달려 결국 진나라에 복종했다 . 가을 , 찬함 欑函 ( 미상 ) 에서 회합을 가졌는데 그들이 복종했기 때문이다 . 이번 회합에 진의 대부들은 저들을 진나라 땅으로 불러들이려 했지만 극성자가 말했다 . “제가 듣건대 , 덕이 아니라면 수고를 들이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 수고도 없이 어찌 마음을 얻겠습니까 ? 수고하면 공적이 이어집니다 . 저들의 땅으로 가겠습니다 . 『시』 ( 『주송·뢰 賚 』 ) 에 ‘문왕께서 수고를 마다치 않으셨다 . ’했습니다 . 문왕조차 수고를 들였는데 하물며 덕이 부족한 우리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 ” 원문 晉 郤 成子 求成于衆 狄 , 衆 狄 疾 赤狄 之役 , 遂服于 晉 . 秋 , 會于 欑函 , 衆 狄 服也 . 是行也 , 諸大夫欲召 狄 , 郤 成子 曰 : “ 吾聞之 , 非德 , 莫如勤 , 非勤 , 何以求人 ? 能勤 , 有繼 . 其從之也 . 『 詩 』 曰 : ‘ 文王 旣勤止 ’, 文王 猶勤 , 況寡德乎 ? ” 관련 주석 ⊙ 秋 , 晉侯 會 狄 于 欑函 : 두예 : “진 경공이 회합 장소로 갔기 때문에 적을 회합의 주관자로 삼은 것이다 . ” 공영달의 『소』 : “진 경공과 적의 회합에서 적이 자기 땅에 있고 , 진 경공이 그곳으로 갔다 . 그래서 『좌전』에 진 대부가 적을 진의 땅으로 부르려 했지만 극성자가 권하여 경공이 직접 갔기 때문에 적을 회주로 삼은 것이다 . 성공 15 년의 ‘종리에서 오나라와 회합했다’ , 양공 10 년의 ‘상에서 오나라와 회합했다’ , 등의 뜻 역시 같다 . ” 두예는 진 경공이 적과 회합하기 위해 몸소 적의 땅으로 갔다고 봤기 때문에 찬함 欑函 을 적의 땅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소재지는 현재 알 수 없다 . 심흠한의 『지명보주』에서 찬함이 곧 『좌전·은공 11 년』의 “찬모 櫕茅 ”이고 , 현 하남성 수무현이라고 말하지만 진과 적이 회합한 장소같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