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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씨에 비費에 성을 쌓을 것을 청한 남유 (춘추좌전.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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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 南遺 가 비 費 읍의 재였다 . 숙중소백 叔仲昭伯 은 부역을 관장하는 수정 隧正 이었는데 계씨에 잘 보이려고 남유를 좋은 말로 꾀었다 . 남유에게 말하였다 . “비 費 에 성을 쌓겠다고 청하라 . 그대에게 역부를 많이 제공하겠다 . ” 그래서 계씨는 비읍에 성을 쌓았다 . 원문 (9.7.3.)  南遺 爲 費 宰 . 叔仲昭伯 爲隧正 , 欲善 季氏 , 而求媚於 南遺 . 謂 遺 : “ 請城 費 , 吾多與而役 . ” 故 季氏 城 費 . 주석 ▣ 南遺 爲 費 宰 : 『좌전·희공원년』의 “희공은 계우에게 문양과 비읍을 하사했다 . ”고 말한다 . 이후로 비는 계씨의 사읍이 되었다 . 재는 현재 縣宰 이다 . 춘추시대 지도. 비費읍 ▣ 叔仲昭伯 爲隧正 : 숙중소백은 혜백의 손자로서 이름은 대 帶 이다 . 수정 隧正 은 『주례』의 수인에 해당한다 . 직분은 도역 徒役 을 관장한다 . ▣ 欲善 季氏 , 而求媚於 南遺 . 謂 遺 : “ 請城 費 : 남유에게 계손숙더러 비읍에 성을 쌓으라고 청하라고 한 것이다 . ▣ 吾多與而役 . ” : 이는 이 爾 와 같다 . 부역에 징발할 사람들은 교외에 거주하는 이들이다 . ▣ 故 季氏 城 費 : 주석 없음 .

노나라의 교제郊祭 (춘추좌전.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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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4 월 , 교제를 드릴 지 세 번 거북점을 쳤지만 길하지 아니하여 희생을 놓아주었다 .  맹헌자가 말한다 . “내 오늘에서야 비로소 거북점과 시초점의 영험을 알게 되었다 . 무릇 교제는 후직에 제사를 드려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 그래서 계칩에 교제를 지내고 교제를 마친 후에 밭을 갈기 시작한다 . 지금 이미 밭을 간 후에 교제를 점쳤으니 길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 ” 원문 (9.7.2.)  夏四月 , 三卜郊 , 不從 , 乃免牲 . 孟獻子 曰 : “ 吾乃今而後知有卜 · 筮 . 夫郊祀 后稷 , 以祈農事也 . 是故 啟 蟄而郊 , 郊而後耕 . 今旣耕而卜郊 , 宜其不從也 . ” 주석 ⊙ 夏四月 , 三卜郊 , 不從 , 乃免牲 : 복교와 면생은 모두 『좌전·희공 31 년』의 주석을 참조 . 그리고 나머지 관련 내용은 본 『좌전』을 참조 . ▣ 夏四月 , 三卜郊 , 不從 , 乃免牲 : 교 郊 는 두 가지 뜻이 있다 . 『효경』의 “과거 주공이 후직에게 교제를 드려 하늘과 함께 배향했고 명당에서 문왕에게 종사 宗祀 를 드려 상제와 함께 배향했다 . ”는 언급과 『예기·교특생』의 “만물은 하늘에 그 뿌리를 두고 사람은 조상에게 뿌리를 둔다 . 이것이 조상을 상제에게 짝한 까닭이다 . 교제는 그 근본에 크게 보답하여 그 처음을 돌이켜 보는 일이다 . ” 그리고 『공양전·선공 3 년』의 “교제의 희생에 왜 반드시 후직의 희생을 써서 제사를 지내는가 ? 천자는 반드시 그 시조 후직을 배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 등의 문구를 근거로 보면 , 교는 본래 제천의 예이다 . 제천에는 응당 하늘과 함께 제사를 받을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하고 , 후직이 주나라의 시조이므로 그를 배향하는 것이다 . 이것이 본래의 뜻이다 . 후에 또 후직을 처음 농사를 시작한 인물로 여겼고 , 상천에 제사를 드렸다면 상천은 마땅히 이에 응답해야 하므로 생산 활동에 대한 풍년을 기도하는 뜻이 있게 되었다 . 이어지는 문장은 이 뜻을 취했다 . 나머지 설명은 환공 5 년과...

계문자季文子의 죽음 (춘추좌전.9.5.10.)

계문자 ( 계손행보 ) 가 타계했다 . 대부의 소렴에는 군주가 참석한다 . 계씨의 가재는 집안의 물건으로 장례에 쓸 비품을 준비했는데 , 비단옷을 입은 첩이 없었고 , 곡식을 먹는 말이 없었으며 , 금과 옥 등을 쌓아 두지 않았고 , 여벌의 기구도 없었다 .  군자는 이로써 공실에 대한 계문자의 충성을 알 수 있었다 . “세 군주를 보필하였지만 사사롭게 축적한 재물이 없었으니 충성스럽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 원문 (9.5.10.)  季文子 卒 . 大夫入斂 , 公在位 . 宰 庀 家器爲葬備 , 無衣帛之妾 , 無食粟之馬 , 無藏金玉 , 無重器備 , 君子是以知 季文子 之忠於公室也 : “ 相三君矣 , 而無私積 , 可不謂忠乎 ? ” 주석 ▣ 季文子 卒 . 大夫入斂 , 公在位 : 『예기·상대기』에 따르면 , 대부의 대렴에는 군주가 몸소 참석하고 동쪽 서단 序端 에 군주의 자리를 설치하여 서쪽을 향한다 . 대렴은 당상에서 거행하는데 당은 남향이며 동서 양쪽에 벽이 있는데 이 벽의 앞쪽을 고대에 서단이라고 불렀다 . ▣ 宰 庀 家器爲葬備 : 재는 계씨 집안의 가신의 우두머리 . 비 庀 의 음은 비 庇 이고 구비하다 . 집안에 있던 기물로 장례에 쓰일 비품을 준비하였다 . ▣ 無衣帛之妾 , 無食粟之馬 , 無藏金玉 , 無重器備 : 기비는 모든 용구이다 . 무중의 중은 평성으로 그저 한 벌만이 있고 여벌이 없다 . ▣ 君子是以知 季文子 之忠於公室也 : “ 相三君矣 : 계손행보는 『춘추·문공 6 년』에 처음 언급되었기 때문에 나이가 적었을 때부터 출사했음을 알 수 있다 . 선공 8 년 양중이 죽은 후 , 계손이 재상이 되었으며 선공과 성공 그리고 양공 3 대를 거치며 총 33 년을 재상으로 있었다 . ▣ 而無私積 , 可不謂忠乎 ? ” : 「노세가」에서 이 문구를 채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