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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成을 포위한 제나라 (춘추좌전.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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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을 포위한 제나라 여름 , 제 영공이 성 成 을 (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동북쪽 90 리 ) 을 포위했는데 진나라에 딴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 이때 우리 노나라는 성 成 에 외성을 쌓았다 . 원문 (9.15.5.)  夏 , 齊侯 圍 成 , 貳於 晉 故也 . 於是乎城 成 郛 .   주석 ⊙ 夏 , 齊侯 伐我北鄙 , 圍 成 : 성 成 은 『산동통지』에 따르면 현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동북쪽 90 리 떨어진 곳으로 “성 郕 ”으로 쓰기도 한다 . ⊙ 公救 成 , 至 遇 : 우 遇 는 노나라 땅이고 곡부와 영양현의 사이에 있어야 한다 . 군사를 이끌고 성에 외성을 쌓았다는 말을 보면 제나라는 아직 성을 차지하지 못했고 혹 노나라가 출병했기 때문에 포위를 풀었을 수 있다 .   ▣ 夏 , 齊侯 圍 成 , 貳於 晉 故也 : 제나라와 노나라는 모두 진나라의 동맹국이다 . 제나라는 범선자가 우모를 빌려간 후 돌려주지 않자 진나라에게 배반할 마음을 가졌다 . 그래서 노나라의 읍을 침범했다 . ▣ 於是乎城 成 郛 : 『춘추』의 두 문장을 합해서 하나의 전으로 만들었다 .

2.3.4. 기杞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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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환공이 성 郕 (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의 동북쪽 ) 에서 기 杞 무공과 회합했는데 기나라가 강화를 요청했다 . 2.3.4.  公會 杞侯 于 郕 , 杞 求成也 . 해설 ▣ 公會 杞侯 于 郕 , 杞 求成也 : 두예의 주석 : “환공 2 년 ( 조근 때의 불경을 이유로 ) 기나라를 쳤기 때문에 강화를 요청해온 것이다 . ”  ⊙   기 杞 와 기 紀 는  잘못 쓰기 쉽고 ,  성 郕 과 성 盛 은  통한다 .  두예는 별다른 주석이 없다 .  즉 여기의 “성 郕 ”을 은공  5 년에 나오는 “성 郕 ”과 같은 곳으로 본 것이다 .  범녕 范寧 의 『곡량』주석을 보면 ,  “성 郕 은 노나라 땅”이라고 하여 두예와 의견이 다르다 .  노나라 땅의 “성 郕 ”은 『좌전』에선 “성 成 ”으로  쓴다 .  그 옛성은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의  동북쪽이다 . 춘추좌전 지도 - 성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