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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에 복수하는 진나라 (춘추좌전.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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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순언 荀偃 과 난염 欒黶 이 군사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정벌하여 송나라 양량 揚梁 에서의 싸움 ( ☞ 9.12.4.) 에 보복했다 . 초나라의 공자격 公子格 이 군을 이끌고 잠판 湛阪 ( 평정산시 平頂山市 북쪽 ) 에서 진군과 맞붙었지만 초군이 대패했다 . 진군은 이어 방성 方城 의 바깥 지역까지 침략하고 , 다시 허나라를 정벌한 후 회군했다 . 원문 (9.16.3.)  晉荀偃 · 欒黶 帥師伐 楚 , 以報 宋揚梁 之役 . 楚公子格 帥師 , 及 晉 師戰于 湛阪 . 楚 師敗績 . 晉 師遂侵 方城 之外 , 復伐 許 而還 . 주석 ▣ 晉荀偃 · 欒黶 帥師伐 楚 , 以報 宋楊梁 之役 : 제후들의 군은 이미 귀국했고 진나라 홀로 진군했다 . 양량의 전투는 『좌전·양공 12 년』참조 . ▣ 楚公子格 帥師 , 及 晉 師戰于 湛阪 : 담 湛 의 음은 심 諶 혹은 잠 暫 이다 . 잠수는 하남성 보풍현 寶豊縣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섭현을 통과하고 양성현 襄城縣 의 경계에서 북여하 北汝河 에 합류된다 . 잠수의 북쪽 산에 기다란 비탈이 있는데 바로 본문의 잠판이다 . 현 평정산시 平頂山市 북쪽이다 . ▣ 楚 師敗績 . 晉 師遂侵 方城 之外 : 방성은 『좌전·희공 4 년』의 주석을 참조 . 본래 초나라의 북쪽 경계이다 . 그후 초나라는 더욱 확장해서 방성의 바깥에도 초나라를 따르는 속국들을 만들었다 . 진나라 군사는 아직 방성에 진입했던 적이 없다 . ▣ 復伐 許 而還 : 허나라가 천도를 하지 않았기 까닭이다 .  

순언荀偃에 항명한 난염欒黶 (춘추좌전.9.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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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염 欒黶 의 항명 여름 , 제후의 대부들 ( 노나라의 숙손표 , 진의 순언 , 제인 , 송인 , 위의 북궁괄 , 정의 공손채 , 조인 , 거인 , 주인 , 등인 , 설인 , 기인 , 소주인 등 ) 이 진 도공을 따라 진 秦 나라를 정벌하여 역 櫟 의 전쟁 ( ☞ 9.11.6.) 에 보복했다 . 도공은 국경에서 기다리고 육경으로 하여금 제후군을 인솔하여 진격하게 했다 . 경수 涇水 에 이르자 선뜻 건너려 하지 않았다 . 숙향이 숙손목자 ( 숙손표 ) 를 접견하였는데 목자는 「포유고엽 」 ( 『시·패풍』 ) 을 읊었다 . 숙향이 자리를 물러나 배를 준비했다 . 노나라와 거나라 군사가 먼저 경수를 건넜다 . 정나라의 자교 子 蟜 가 위나라의 북궁의자 北宮懿子 를 접견하고 말했다 . “남과 함께 행동하면서 뜻이 견고하지 않으면 그보다 미움을 살 일이 없습니다 . 사직을 어떻게 지키겠습니까 ? ” 의자가 그의 말을 옳게 여기고 , 두 사람은 제후의 진영으로 가서 도강할 것을 권고했다 . 경수를 건너 주둔하였다 . 진 秦 이 경수의 상류에 독을 풀자 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 정나라의 사마 자교 子 蟜 가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자 모든 군사가 그 뒤를 따라 역림 棫 林 까지 이르렀지만 진나라에게서 강화를 얻지 못하였다 . 순언 荀偃 이 명령을 내렸다 . “닭이 울면 전차에 멍에를 매고 우물을 메우고 아궁이를 평탄하게 하라 . 그리고 오로지 나의 말머리만 쳐다보라 . ” 난염 欒黶 이 말하였다 . “일찍이 진나라의 명에 이런 령은 없었다 . 나는 말머리를 동쪽으로 향할 것이다 . ” 그리고는 돌아가 버렸다 . 하군이 그 뒤를 따랐다 . 좌사가 위장자에게 말했다 . “중항백 ( 순언 ) 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으십니까 ? ” 장자가 말했다 . “부자께서 각 군의 장수의 명을 따르라 하셨다 . 난백이 우리의 장수이니 나는 그를 따를 것이다 . 장수의 명을 따르는 것이 바로 부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다 . ” 백유 伯游 ( 순언 ) 가 말했다 . “내 명이 실로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