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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위나라 공자公子 주우州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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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위 장공 莊公 이 제나라 태자 득신 得臣 의 누이를 부인으로 맞이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장강 莊姜 이다 .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자식이 없어 위나라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석인 碩人 」이란 노래를 지어 불렀다 . 장공이 진 陳 나라 에서 다시 부인을 맞이했는데 이름은 여규 厲 媯 였고 효백 孝伯 을 낳은 후 일찍 죽었다 . 여규의 동생 대규 戴 媯 가 환공을 낳았고 , 장강은 환공을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  공자주우 公子州吁 는 첩의 소생이다 . 그는 장공의 총애를 받았고 전쟁놀이를 좋아했는데 장공은 그것을 막지 않았다 . 장강은 그런 주우를 싫어했다 . 석작 石碏 이 간언하였다 . “신이 듣건대 , 자식을 아끼면 바른 도리로 훈육하고 사악함을 용납치 않는다고 합니다 . 교만·사치·음란·방탕 등은 사악함에서 비롯됩니다 . 이들 네 가지는 총애와 봉록이 지나칠 때 찾아옵니다 . 주우를 태자로 옹립하시려거든 바로 결정하십시오 . 늦어질수록 점차 화가 될 것입니다 . 무릇 총애를 입고도 교만하지 않고 , 교만한 데 자신을 낮추고 , 낮추고도 남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 원한을 품고도 이를 눈초리로만 드러내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 또 천한 사람이 귀한 사람을 해치고 , 연소자가 연장자를 능멸하며 , 관계가 먼 사람이 가까운 사람을 이간질하고 , 신참이 옛 사람을 이간질하며 , 작은 것이 큰 것을 능멸하고 , 과함이 의로운 것을 깨뜨리는 것을 일러 여섯 가지 거스름이라 합니다 . 반면 , 군주는 의롭고 , 신하는 군주의 의로운 명을 거행하며 , 아비는 자식을 사랑하고 , 자식은 효도하며 , 형은 동생을 아끼고 , 동생은 형을 공경하는 것을 소위 여섯 가지 순조로움이라 합니다 . 순조로움을 버리고 거스름을 본받으면 화를 재촉하게 됩니다 . 군주가 된 사람은 힘써 재앙을 제거해야 하는데 오히려 화를 재촉하시니 불가하지 않습니까 ? ” 장공은 듣지 않았다 . 석작의 아들 후 厚 가 주우와 어울리자 석작이 이를 금했지만 소용없었다 . 환공이 즉위하자 석작은 ...

1.3.6. 뒤집힌 정 장공의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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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겨울 , 제나라와 정나라가 석문 石門 ( 산동성 장청현 長淸縣 서남쪽 ) 에서 동맹을 맺고 노 盧 의 결맹을 돈독히 했다 . 경술일 (12 월엔 경술일이 없다 ), 정 장공의 수레가 제 수 濟水 부근에서 뒤집혔다 . 1.3.6.  冬 , 齊 · 鄭 盟于 石門 , 尋 盧 之盟也 . 庚戌 , 鄭伯 之車 僨 于 濟 . 해설 ◉ 冬十有二月 , 齊侯 · 鄭伯 盟於 石門 : 제 齊 , 국명으로 강성 姜姓 이다 . 태공의 후예로 도읍은 영구 營丘 인데 현재의 산동성 임치 臨淄 폐현 ( 지금의 임치진 ) 에서 약간 북쪽으로 8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 임치 제나라 성은 대성과 소성 두 부분을 포괄한다 . 총 면적은 약 30 km 2 이다 . ( 『 文物考古工作 30 년』에 자세하다 ). 제 희공 9 년에 춘추시대에 접어들었다 . 춘추시대 후 전씨 田氏 가 나라를 탈취한 후로는 전씨의 제나라 田齊 로 불린다 .  석문 石門 은 제나라 땅이다 . 『청일통지』에 근거하면 석문은 현재의 산동성 장청현 長淸縣 서남쪽 70 리 정도에 위치한다 .  산동성 지역의 제나라 ▣ 冬 , 齊 · 鄭 盟于 石門 , 尋 盧 之盟也 : 심 尋 은 거듭의 뜻 . 심맹 尋盟 은 당시의 상용어로 이전의 우호 관계를 거듭 표명한다는 뜻이다 . 노 盧 의 결맹은 춘추 이전의 일이다 . 노 盧 는 지명으로서 『독사방여기요 讀史方輿紀要 』에 근거하면 현재의 산동성 장청현 長淸縣 서남쪽 약 25 리 떨어진 곳이다 . ▣ 庚戌 : 12 월엔 경술일이 없다 . 날짜에 오류가 있다 . ▣ 鄭 伯之車 僨 于濟 : 분 僨 의 음은 분 奮 이고 뒤집히다 ( 仆 복 ). 제 濟 는 고대의 4 대 하천 중의 하나인데 현재는 그 물줄기가 사라졌다 . 『독사방여기요』 : “대청하 大淸河 는 장청현 長淸縣 서남쪽 20 리 정도 떨어져 있는데 , 평음현 平陰縣 에서 흘러 들어와 동북쪽으로 제하현 齊河縣 경계로 들어오니 , 이 강이 곧 제수이다 . 정백의 수레가 ...

1.3.5. 형제상속의 잔재 - 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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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송 목공이 병에 걸리자 대사마 大司馬 공보 孔父 를 불러 상공 殤公 을 부탁하고 당부했다 . “선군께서 아들인 여이를 제쳐 두고 과인을 세웠던 일을 감히 잊을 수 없다 . 대부의 덕으로 편안히 세상을 떠나 선군께서 여이에 대해 물으실 때 내가 무슨 말로 대답하겠는가 ? 바라건대 그대는 여이를 받들고 사직을 주관하게 하라 . 그래야 죽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 . ” “뭇 신하들은 풍을 받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 ” “그럴 수 없다 . 선군께선 과인을 어질게 여겨 사직을 주관하게 하셨다 . 만약 그 덕을 버리고 여이에게 양위하지 않는다면 이는 선군의 선택을 폐기하는 일이니 어찌 나를 현명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 선군의 선한 덕을 밝히는 일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그대는 선군의 공적을 저버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 ! ” 그리고 아들 공자풍을 정나라로 가서 거처하게 하였다 . 8 월 경신일 (15 일 ) 송 목공이 타계하고 상공이 즉위했다 .  군자가 말한다 . “송 선공이 가히 사람 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목공을 세워 자신의 아들이 군주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하였으니 , 명을 바르게 내렸기 때문이다 ! 「 상송」 ( 「 현조 玄鳥 」 ) 에 말한다 : ‘은나라가 왕위를 전한 것이 모두 합당하니 많은 복을 받을 수 있었다 . ’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 ” 1.3.5.  宋穆公 疾 , 召大司馬 孔父 而屬 殤公 焉 , 曰 : “ 先君舍 與夷 而立寡人 , 寡人弗敢忘 . 若以大夫之靈 , 得保首領以沒 ; 先君若問 與夷 , 其將何辭以對 ? 請子奉之 , 以主社稷 . 寡人雖死 , 亦無悔焉 . ” 對曰 : “ 群臣願奉 馮 也 . ” 公曰 : “ 不可 . 先君以寡人爲賢 , 使主社稷 . 若棄德不讓 , 是廢先君之 舉 也 , 豈曰能賢 ? 光昭先君之令德 , 可不務乎 ? 吾子其無廢先君之功 ! ” 使 公子馮 出居於 鄭 . 八月庚辰 , 宋穆公 卒 , 殤公 卽位 . 君子曰 : “ 宋宣公 可謂知人矣 . 立 穆公 , 其子饗之 , 命以義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