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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라, 섭葉으로 천도 (춘추좌전.8.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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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영공이 정나라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초나라에 천도를 요청했다 . 신축일 (3 일 ), 초나라의 공자신 公子申 이 허나라의 국도를 섭 葉 으로 천도했다 . 원문 (8.15.7.)  許靈公 畏偪于 鄭 , 請遷于 楚 . 辛丑 , 楚公子申 遷 許 于 葉 . 주석 ▣ 許靈公 畏偪于 鄭 : 지난해에 두 차례 허나라를 침략했고 결국 허나라는 “숙신이 봉건받은 땅”을 주고서 강화했었다 . ▣ 請遷于 楚 . 辛丑 : 신축일은 3 일이다 . 춘추시대 지도. 섭현葉縣 ▣ 楚公子申 遷 許 于 葉 : 옛 섭성은 현 하남성 섭현 葉縣 의 서남쪽이다 . 허나라가 천도한 후 본토는 정나라 소유가 되었고 정나라는 그 곳을 “ 舊許 ”라고 불렀다 . 이후 허나라는 초나라의 부용국이 되었고 , 진나라가 주도하는 회맹과 정벌 등에 따르지 않고 , 대신 초나라에 일이 있을 경우 동원되지 않은 적이 없다 .

종리鍾離의 회합, 오나라와의 첫 통교 (춘추좌전.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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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월 , ( 숙손교여 가 진나라의 사섭 , 제나라의 고무구 , 송나라의 화원 , 위나라의 손림보 , 정나라의 공자추 , 주 邾 나라 군주와 ) 종리 鍾離 ( 안휘성 봉양현 鳳陽縣 동북쪽 ) 에서 오나라와 회합을 가졌는데 중원의 나라들이 처음으로 오나라와 통교한 것이다 . 원문 (8.15.6.)  十一月 , 會 吳 于 鍾離 , 始通 吳 也 . 주석 참고  『춘추』원문.  冬十有一月 , 叔孫僑如 會 晉士燮 · 齊高無咎 · 宋華元 · 衛孫林父 · 鄭公子鰌 · 邾 人會 吳 于 鍾離 . 『춘추』에서 두 개의 “회”자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 두예는 오나라가 이의 나라이고 그 이전에 중원의 나라들과 왕래한 적이 없었으며 이때가 처음이다 . 그래서 진나라가 제후의 여러 대부를 이끌고 그들과 회합했기 때문에 두 개의 “회”자를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 명대 왕초의 『춘추집전』에선 제후들의 대부들끼리 먼저 회합한 후 오나라와 회합을 가졌기 때문이며 , 『춘추』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고 주장했다 . 추 鰌 의 음은 추 秋 이다 . 종리 鍾離 는 『노사』에선 국명이라 한다 . 상세한 내용은 『좌전』의 주석을 참조 . 춘추시대 지도. 종리鍾離 ▣ 十一月 , 會 吳 于 鍾離 : 두예 : “종리 鍾離 는 초나라 읍이다 . ” 그러나 제후들과 오나라가 서로 초나라 경내에서 만난다는 것은 자못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 두예의 그런 주석은 『좌전·소공 4 년』의 “초 함윤 의구가 종리에 성을 쌓았다”는 말에 근거한 것인데 이 성은 오나라를 대비했던 일이다 . 종리는 본래 소국으로서 『수경·회수주』와 『사기·오자서열전』의 『색은』에서 『세본』을 인용하여 종리는 영성의 나라로 ( 『통지·씨족략 3 』에선 희성이라 말하는데 믿기 어렵다 ) 서 이 당시 존속했는지 멸망당했는지는 상세하지 않다 . 또 종리는 오나라와 초나라의 경계에 위치한 적도 있는데 , 『곡량전·소공 4 년』의 “경봉을 오나라 종리에 봉했다”는 기사를 보면 종리는 이미 멸망하여 오와...

백종伯宗과 백주리伯州犁 (춘추좌전.8.15.5.)

진 晉 의 극기 , 극주 그리고 극지 가 백종 伯宗 을 해치려고 참소하여 죽였는데 난불기 欒弗忌 까지 화가 미쳤다 . 백 주리 伯州犁 는 초나라로 망명했다 . 한헌자가 말한다 . “극씨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 선인은 하늘과 땅을 잇는 벼리인데 빈번하게 그 벼리를 끊어내니 죽음이 아니면 달리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 ” ( ☞ 8.17.10.)  애초 , 백종이 입조할 때마다 그의 처가 경고했었다 . “‘간악한 자는 주인을 증오하고 백성은 위정자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 당신은 직언을 좋아하시니 필경 곤경에 빠질 것입니다 . ” 원문  (8.15.5.)  晉 三 郤 害 伯宗 , 譖而殺之 , 及 欒弗忌 . 伯州犁 奔 楚 . 韓獻子 曰 : “ 郤 氏 其不免乎 ! 善人 , 天地之紀也 , 而驟 絕 之 , 不亡 , 何待 ? ” 初 , 伯宗 每朝 , 其妻必戒之曰 : “ ‘ 盜憎主人 , 民惡其上 . ’ 子好直言 , 必及於難 . ” 주석 ▣ 晉 三 郤 害 伯宗 : 삼극은 극기 , 극주 그리고 극지를 말한다 . 백종은 『좌전·선공 15 년』의 주석을 참조 . ▣ 譖而殺之 , 及 欒弗忌 : 「진어 5 」의 위소의 주석에 난불기는 백종의 무리라고 한다 . 『좌전』은 백종을 참소한 일의 피해가 난불기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 , 「진어 5 」에선 “난불기가 난을 일으켜 여러 대부가 백종을 해쳤다”고 하여 주장이 다르다 . ▣ 伯州犁 奔 楚 : 백주리 伯州犁 는 백종의 아들이다 . 「진어 5 」에 따르면 , 백주리를 보호하여 초나라로 도망칠 수 있게 한 사람이 필양이라고 한다 . 백주리가 초나라로 망명한 후 태재가 된 일은 다음해의 『좌전』과 『좌전·소공원년』등에 보인다 . ▣ 韓獻子 曰 : “ 郤 氏 其不免乎 ! 善人 , 天地之紀也 : 한궐은 백종과 난불기 모두 선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 ▣ 而驟 絕 之 : 취 驟 는 여러 번이다 . 앞뒤로 두 사람을 해쳤기 때문에 취라고 말했다 . ▣ 不亡 , 何待 ? ” : 성공 17 년에 진나라가 삼극을 죽인 일...

화원, 환씨를 제거하다 (춘추좌전.8.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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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8 월 , 송 공공의 장례를 치렀다 .  이때 화원 華元 이 우사 右師 , 어석 魚石 이 좌사 左師 , 탕택 蕩澤 이 사마 司馬 , 화희 華喜 가 사도 司徒 , 공손사 公孫師 가 사성 司城 , 상위인 向爲人 이 대사구 大司寇 , 린주 鱗朱 가 소사구 少司寇 , 상대 向帶 가 태재 大宰 , 어부 魚府 가 소재 少宰 였다 .  탕택이 공실을 약화시키려고 공자비 公子肥 를 죽였다 . 화원이 말했다 . “나는 우사로서 군신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사의 직분이다 . 오늘날 공실이 비천해졌는데 이를 바로잡지 못했으므로 내 죄가 크다 .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감히 총애를 입을 수 있겠는가 ? ” 그리고 진나라로 망명했다 . 화원과 화희는 대족 戴族 ( 대공의 후예 ) 이고 , 사성 공손사는 장족 莊族 ( 장공의 후예 ) 이며 , 나머지 육관은 모두 환족 桓族 ( 환공의 후예 ) 이었다 .  어석이 화원을 만류하려 했다 . 어부가 말했다 . “우사가 돌아오면 반드시 탕택의 죄를 다스릴 터인데 환씨가 멸족될 것입니다 . ” 어석이 말했다 . “우사가 돌아오고 설사 우리가 탕택의 단죄를 허락해도 필경 섣불리 실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또 화원은 큰 공로가 많아 국인들이 그와 뜻을 함께 하므로 돌아오지 않으면 송나라에서 환씨의 제사가 끊어질까 걱정입니다 . 우사가 탕택을 토벌해도 술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 비록 환씨가 제거된다 해도 반드시 그 절반 정도일 것입니다 . ” 어석이 직접 황하까지 가서 화원을 만류했다 . 화원이 탕택의 토벌을 요청하자 수락했고 이내 그는 돌아왔다 . 화원은 화희와 공손사를 시켜 국인들을 인솔하여 탕씨를 공격하게 하고 자산 子山 ( 탕택 ) 을 죽였다 . 『춘추』 에 “송나라가 그의 대부 산 山 을 죽였다 . ”라고 쓴 것은 탕택이 그의 종족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 어석 , 상위인 , 린주 , 상대 그리고 어부가 도성을 떠나 수수 睢水 가에 머물렀고 화원은 사람을 보내 그들이 떠나지 않게 만류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