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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경공의 장례 (춘추좌전.8.10.7.)

겨울 , 진 경공의 장례를 치렀고 , 노 성공이 장례에 참석했지만 이외 참석한 제후들은 없었다 . 노나라는 이를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에 『춘추』는 경공의 장례조차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이 사실을 숨겼다 . 원문 (성공 10년 일곱번째 기사)  冬 , 葬 晉景公(1) , 公送葬 , 諸侯莫在 . 魯 人辱之 , 故不書 , 諱之也 . (1)   본문엔 景公 이 景之 로 쓰여 있는데 오류로 보인다 .  주석 ▣ 冬 , 葬 晉景公 , 公送葬 , 諸侯莫在 . 魯 人辱之 : 욕지란 이 사건을 치욕으로 여김이다 . ▣ 故不書 : 『춘추』에선 비단 성공이 진 경공의 장례에 참석한 사실을 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땅히 기록해야 할 “진 경공의 장례를 치렀다”는 사실조차 적지 않았다 . ▣ 諱之也 : 주석 없음 .

노나라 성공의 억류 (춘추좌전.8.10.6.)

가을 , 노나라 성공이 진나라를 예방했다 . 진나라는 성공을 억류하고 경공의 장례에 참석하게 했다 . 이때 초나라에 사신을 갔던 적패 糴 茷 는 아직 돌아오기 전이었다 . 원문(성공 10년 여섯번째 기사) 秋 , 公如 晉 . 晉 人止公 , 使送葬 . 於是 糴 茷 未反 . 주석 ▣ 秋 , 公如 晉 . 晉 人止公 , 使送葬 . 於是 糴 茷 未反 : 이 당시 진 대부 적패가 초나라에 예방을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때였는데 , 진나라는 노나라가 진을 따르기도 하고 초를 따르기도 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다 . 그래서 성공을 억류하고 노나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 다음 해의 『좌전』을 참고하라 .  

정 성공의 귀국 (춘추좌전.8.10.5.)

( 진나라에 억류되었다가 ) 돌아온 정 성공이 새 군주를 옹립한 자들을 토벌해 무신일 (8 일 ) 숙신 叔申 과 숙금 叔禽 을 살해했다 . 군자는 말한다 . “덕 있는 자에게 충성하고 그런 인물이 아니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좋다 . 하물며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말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 ” ( ☞ 8.9.12.) 원문 (성공 10년 다섯번째 기사) 鄭伯 討立君者 , 戊申 , 殺 叔申 · 叔禽 . 君子曰 : “ 忠爲令德 , 非其人猶不可 , 況不令乎 ? ” 주석 ▣ 鄭伯 討立君者 , 戊申 : 술신일은 8 일이다 . ▣ 殺 叔申 · 叔禽 : 두예는 “숙금은 숙신의 아우이다 . ”라고 말한다 . ▣ 君子曰 : “ 忠爲令德 , 非其人猶不可 : “비기인”에 대해 이전에 두 가지 해석이 있었다 . 하나는 충성을 다한 사람을 뜻하여 여기서는 숙신을 가리킨다 . 즉 숙신은 충과 덕을 실천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고염무의 『보정』에서 인용한 육찬의 주장이다 . 또 하나는 충성을 받는 대상을 가리킨다는 해석으로서 정 성공을 말한다는 주장이다 . 성공은 충성을 바칠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 두예의 주석에 보인다 . 『수서·장형전』의 「찬」에 “대저 충이란 선한 덕이지만 적절한 대상이 아니면 아니한만 못하다 . ”고 말한 것 역시 두예의 주석을 채용한 것이다 . 또 『여씨춘추·지충편』의 고유의 주석과 『후한서·두융전』의 이현의 주석에서 『좌전』의 이 문구를 인용하고 있는데 역시 뜻이 같다 . 고서에서 “비기인”이란 말을 매우 자주 쓰는데 어떤 때는 본인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 예를 들면 『역·계사하』의 “실로 그럴말한 사람이 아니라면 도는 헛되이 행해지지 않는다 ( 苟非其人 , 道不虛行 ) ”이나 『공자가어·오제덕편』의 “나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다 ( 予也非其人也 ) ” 등이 그러하다 . 어떤 때는 상대방을 가리키기도 한다 . 『맹자·진심하』의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승의 나라도 사양할 수 있지만 , 진실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 苟非其人 ) 한 ...

진 경공의 죽음(춘추좌전.8.10.4.)

진 경공이 꿈에 악귀 ( 大厲 ) 를 보았는데 산발한 머리카락이 땅까지 닿았으며 가슴을 치고 펄쩍뛰며 말했다 . “내 후손을 죽였으니 불의하다 . 상제께 청하여 허락을 받았노라 ! ” 악귀가 대문을 부수고 노침까지 이르러 안으로 들어왔다 . 경공이 겁을 먹고 실 室 로 도망쳤다 . 악귀가 다시 방문을 부술 때 잠에서 깼다 .  경공이 상전 桑田 의 무당을 불렀는데 그 역시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아뢰었다 . 경공이 물었다 . “어찌 되겠는가 ? ” 무당이 말했다 . “햇곡식을 드시지 못할 것입니다 . ”  경공의 병이 위중해지자 진 秦 나라에 용한 의원을 부탁했다 . 진 환공이 의원 완 緩 을 보내 진찰하게 했다 . 의원이 도착하기 전 경공이 꿈을 꾸었는데 질병이 시중드는 두 아이로 변신해 있었다 . 한 아이가 말했다 . “저 의원은 명의다 . 우리를 해칠까 걱정되는데 어디로 도망갈까 ? “ 횡경막 의 윗자리 , 지방 의 아래에 숨으면 명의라도 우리를 어찌 하겠는가 ? ” 의원이 도착해 경공을 진찰한 후 말했다 . “병을 치료할 수 없겠습니다 . 병이 횡경막 위와 지방의 아래에 있는데 , 뜸으로도 어찌할 수 없고 침으로도 닿지 않으며 약재도 소용없습니다 . ” “훌륭한 의원이로다 . ” 그에게 후한 예물을 주어 돌려보냈다 .  6 월 병오일 (6 일 ), 진 경공은 햇보리를 먹고 싶어 전인 甸人 에게 보리를 바치게 했고 궤인 饋人 이 햇보리로 밥을 지었다 . 경공은 상전의 무당을 불러 햇보리로 지은 밥을 보여주며 그를 죽여버렸다 . 밥을 먹으려 할 때 갑자기 배가 부풀어 올랐고 변소에 갔다가 발을 헛디뎌 빠져 죽었다 . 어떤 환관이 새벽에 경공을 업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는데 , 낮에 그는 경공을 변소에서 업고 나왔고 결국 순장되었다 . 원문 晉侯 夢大厲 , 被髮及地 , 搏膺而踊 , 曰 : “ 殺余孫 , 不義 . 余得請於帝矣 ! ” 壞大門及寢門而入 . 公懼 , 入于室 . 又壞戶 . 公覺 , 召 桑田 巫 . 巫言如夢 . 公曰 : “ ...

정 성공 복귀 (춘추좌전.8.10.3.)

정나라의 공자반 公子班 이 숙신 叔申 의 계책을 들었다 . ( ☞ 8.9.12.) 3 월 , 자여 子如 ( 공자반 ) 가 공자수 公子 繻 를 옹립했다 . 여름 4 월 , 정나라 국인들이 공자수를 살해하고 곤완 髡頑 을 옹립하자 자여는 허나라로 도망쳤다 . 진의 난무자가 말했다 . “정나라가 군주를 옹립했으니 우리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을 구금하고 있을 뿐이다 . 무슨 이익이 있겠나 ? 차라리 정나라를 토벌하고 군주는 돌려보내 화친을 구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 ” 진 경공이 병환에 들었다 . 5 월 , 진나라는 태자 주포 州蒲 를 군주로 옹립하고 제후들을 소집해 정나라를 정벌했다 . 정나라의 자한이 양공의 사당에 보관하던 예기 종 鐘 을 뇌물로 바쳤고 , 자연 子然 이 수택 修澤 ( 하남성 원양현 原陽縣 서남쪽 ) 에서 결맹했으며 자사 子駟 가 인질이 되었다 . 신사일 (11 일 ), 정 성공이 귀국했다 . 원문 (성공 10년 세번째 기사)  鄭公子班 聞 叔申 之謀 . 三月 , 子如 立 公子 繻 . 夏四月 , 鄭 人殺 繻 , 立 髡頑 , 子如 奔 許 . 欒武子 曰 : “ 鄭 人立君 , 我執一人焉 , 何益 ? 不如伐 鄭 而歸其君 , 以求成焉 . ” 晉侯 有疾 , 五月 , 晉 立 大子州蒲 以爲君 , 而會諸侯伐 鄭 . 鄭子罕 賂以 襄 鐘 [1] , 子然 盟于 修澤 , 子駟 爲質 . 辛巳 , 鄭伯 歸 . (1)   “종 鐘 ”자를 완각본에선 “종 鍾 ”으로 쓴다 . 여기서는 『석경』과 송본 그리고 금택문고본을 따라 정정했다 . 주석 ▣ 鄭公子班 聞 叔申 之謀 : 숙신의 계략은 지난해의 『좌전』을 참조 . ▣ 三月 , 子如 立 公子 繻 : 자여는 공자반이다 . 「정세가」 : “정나라는 진나라의 처사에 우려하여 공자여가 성공의 서형 수 繻 를 옹립했다 . ” 공자수는 정 양공의 아들이고 성공의 서형이다 . 사마천은 자여가 공자수를 옹립한 이유는 진의 난서가 정나라를 포위했기 때문으로 봤고 , 『좌전』은 자여가 숙신의 “가짜 군주를 ...

위나라, 정나라를 침략하다 (춘추좌전.8.10.2.)

위나라의 자숙흑배 子叔黑背 가 정나라를 침략했는데 진나라가 명한 것이다 . 원문 (성공10년 두번째 기사) 衛子叔黑背 侵 鄭 , 晉 命也 . 주석 ▣ 衛子叔黑背 侵 鄭 : 자숙흑배는 위 목공의 아들이며 위 정공의 동생이다 . ▣ 晉 命也 : 주석 없음 .

진나라와 초나라의 사신 교환 (춘추좌전.8.10.1.)

성공 10 년 봄 , 진 경공이 사신 적패 糴 茷 를 초나라로 파견해 태재 자상 子商 의 예방에 보답했다 . 원문(성공 10년 첫번째 기사) 十年春 , 晉侯 使 糴 茷 如 楚 , 報大宰 子商 之使也 . 주석 ▣ 十年春 , 晉侯 使 糴 茷 如 楚 : 적패 糴 茷 는 진의 대부이다 . ▣ 報大宰 子商 之使也 : 자상은 공자신이고 지난 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