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경공의 죽음(춘추좌전.8.10.4.)



진 경공이 꿈에 악귀(大厲)를 보았는데 산발한 머리카락이 땅까지 닿았으며 가슴을 치고 펄쩍뛰며 말했다. “내 후손을 죽였으니 불의하다. 상제께 청하여 허락을 받았노라!” 악귀가 대문을 부수고 노침까지 이르러 안으로 들어왔다. 경공이 겁을 먹고 실로 도망쳤다. 악귀가 다시 방문을 부술 때 잠에서 깼다

경공이 상전桑田의 무당을 불렀는데 그 역시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아뢰었다. 경공이 물었다. “어찌 되겠는가?” 무당이 말했다. “햇곡식을 드시지 못할 것입니다.” 

경공의 병이 위중해지자 진나라에 용한 의원을 부탁했다. 진 환공이 의원 완을 보내 진찰하게 했다. 의원이 도착하기 전 경공이 꿈을 꾸었는데 질병이 시중드는 두 아이로 변신해 있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저 의원은 명의다. 우리를 해칠까 걱정되는데 어디로 도망갈까? 횡경막의 윗자리, 지방의 아래에 숨으면 명의라도 우리를 어찌 하겠는가?” 의원이 도착해 경공을 진찰한 후 말했다. “병을 치료할 수 없겠습니다. 병이 횡경막 위와 지방의 아래에 있는데, 뜸으로도 어찌할 수 없고 침으로도 닿지 않으며 약재도 소용없습니다.” “훌륭한 의원이로다.” 그에게 후한 예물을 주어 돌려보냈다

6월 병오일(6), 진 경공은 햇보리를 먹고 싶어 전인甸人에게 보리를 바치게 했고 궤인饋人이 햇보리로 밥을 지었다. 경공은 상전의 무당을 불러 햇보리로 지은 밥을 보여주며 그를 죽여버렸다. 밥을 먹으려 할 때 갑자기 배가 부풀어 올랐고 변소에 갔다가 발을 헛디뎌 빠져 죽었다. 어떤 환관이 새벽에 경공을 업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는데, 낮에 그는 경공을 변소에서 업고 나왔고 결국 순장되었다.


원문

晉侯夢大厲被髮及地搏膺而踊, : 殺余孫, 不義. 余得請於帝矣!壞大門及寢門而入. 公懼入于室. 又壞戶. 公覺桑田. 巫言如夢. 公曰: 何如?: 不食新矣.公疾病求醫于. 秦伯使醫爲之. 未至公夢疾爲二豎子, : , 良醫也懼傷我焉逃之?其一曰: 居肓之上膏之下若我何?醫至: 疾不可爲也在肓之上膏之下攻之不可達之不及藥不至焉不可爲也.公曰: 良醫也.厚爲之禮而歸之. 六月丙午晉侯欲麥使甸人獻麥饋人爲之. 桑田示而殺之. 將食如廁陷而卒. 小臣有晨夢負公以登天及日中晉侯出諸廁遂以爲殉.


주석

晉侯夢大厲: 악귀를 려귀厲鬼 한다. 『좌전·소공7년』의 “악귀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其何厲鬼也)?”로 입증할 수 있다. 생략해 만 쓸 수도 있다. 『좌전·양공17년』의 “너의 부친이 악귀가 되었다(爾父爲厲)”가 그 예다. 또한 옛 사람들은 후사를 끊는 귀신을 려라고 불렀다. 『예기·제법』의 “태려”나 “공려” 등에 대해 정현은 고대 제왕의 후사를 끊은 자를 태려, 제후의 후사를 끊은 이를 공려라고 말한다고 주석했다. 『좌전·소공7년』역시 “귀신도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려가 되지 않는다(鬼有所歸, 乃不爲厲)”라는 문구가 있다.

被髮及地: 산발.

搏膺而踊: 박응搏膺 가슴을 치다. 뛰다.

: 殺余孫, 不義: 내 후손을 죽였다라는 말은 성공 8년에 진 경공이 조동과 조괄을 죽였던 일을 가리킨다. 경공이 꿈에서 본 악귀는 조씨 선조의 환영이다. 여기서 손은 넓은 뜻으로 후손을 가리킨다. 「조세가」는 이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진 경공이 병에 걸려 점을 쳤고, 대복大僕 후손 중 축출되지 않은 사람을 존귀하게 대했다.”라고 한다. 악몽 때문에 결국 점을 쳤다는데 『좌전』과는 다른 곳이 있다. 다만 “대복의 후손”이란 역시 조씨의 선조이다.

余得請於帝矣!: 상제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았으므로 복수를 할 수 있다는 뜻. 『좌전·희공10년』에 태자 신생의 말 역시 “내가 상제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았으니 장차 진나라는 진나라 밑에 들어갈 것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壞大門及寢門而入. 公懼入于室: 은 침의 뒤편에 있다. 문이 있어 서로 통한다.

又壞戶. 公覺桑田: 상전桑田 『좌전·희공2년』의 주석을 참조. 본래는 괵나라의 읍이었지만 진에게 멸망당한 후 자연스럽게 진에 합병되었다.

巫言如夢. 公曰: 何如?: 不食新矣.: 햇보리이다. 경공의 죽음은 햇보리가 나기 전이라는 뜻.

公疾病: 질병은 연문으로서 병이 위중하다는 뜻.

求醫于. 秦伯使醫爲之: 는 진료하고 치료함이다.

未至公夢疾爲二豎子: 어린아이.

: , 良醫也懼傷我焉逃之?: 懼傷我焉, 逃之!”로 끊어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자를 다음 구에 놓는 것만 못하다.

其一曰: 居肓之上膏之下: 명치 음은 황이다. 고대 의학에서 심장 끝의 지방을 고 불렀고, 심장과 격막의 사이를 황이라 불렀다. 횡경막 위와 명치끝 지방은 약재의 효력과 침이 닿지 않는 곳이다. 유문기의 『소증』은 “(膏之上 肓之下)”로 쓰는 것이 옳은데 현재의 본에는 상하가 뒤바뀌었다고 주장하지만 신뢰할 수 없다.

若我何?醫至: 疾不可爲也在肓之上膏之下攻之不可達之不及: 攻之은 뜸()이고 달은 침이다.

藥不至焉不可爲也.公曰: 良醫也.: 꿈에서 본 내용과 부합했다.

厚爲之禮而歸之. 六月丙午晉侯欲麥: 햇보리를 먹으려 했다. 『예기·월령』과 『여씨춘추·맹하기』에 모두 햇곡식을 맛보는(嘗新) 예법을 기록하고 있다. 참고할 만하다.

使甸人獻麥: 천자와 제후 모두 전인甸人이란 관리가 있다. 『예기·제의』에 근거하면, 제후들은 적전 백무를 가지고, 전인이 적전의 농사를 주관하고 생산물을 공급한다. 『주례·천관』의 전사甸師 해당하는데, 『주례·춘관·대축』과 『의례·연례』·「대사의」·「공식대부례」·「사혼례」와 『예기·문왕세자』·「상대기」, 『국어·주어중』에선 모두 “전인”이라고 쓴다. 본래 명칭은 전인임을 알 수 있다. 『주례』의 저자가 전사로 고쳐 부른 것이다.

饋人爲之: 궤인은 제후의 식사를 담당하는 관리이다. 『주례·천관』의 포인庖人 해당한다. 정공열의 『춘추분기』에 근거한 설명이다.

桑田示而殺之: 햇보리를 보여주며 무당을 죽였다. 그가 “햇보리를 드시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將食: 현재 창자()으로 쓴다. 배가 부풀어 오름이다.

如廁陷而卒: 실수로 헛디뎌 빠져 죽었다.

小臣有晨夢負公以登天: 소신은 환관이다. 『좌전·희공4년』의 주석을 참조.

及日中晉侯出諸廁遂以爲殉: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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