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郤至의 예방과 초 공왕의 무례한 향례 (춘추좌전.8.12.4.)


진나라의 극지가 초나라로 가서 빙문하고 또 결맹에 참석했다

초 공왕이 극지에게 향례를 베풀고 자반子反이 의전을 도왔는데 대청 아래에 지하실을 만들고 그곳에 종과 북을 걸어 놓았다. 극지가 막 대청에 오를 때 아래에서 종박을 연주하자 깜짝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자반이 말했다. “정오가 다가오고 과군께서 기다리시니 귀하는 어서 들어가십시오!” 

극지가 말했다. “군주께서 선군의 우호를 잊지 않으시어 그 은혜가 저에게까지 미쳐 융성한 예를 베풀고 더하여 음악까지 준비하셨습니다. 만약 하늘의 복으로 양국의 군주께서 상견하시면 어떤 예로써 지금의 예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하신은 이처럼 큰 예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반이 말했다. “하늘의 복으로 양국 군주께서 상견하신다면 이는 오로지 전쟁터에서 서로 한 장의 화살을 더할 뿐인데 무슨 음악이 필요하겠습니까? 과군께서 기다리시니 그대는 들어가십시오!” 

극지가 말했다. “만약 말씀처럼 화살로 서로를 대접한다면 재앙 중에서도 큰 것인데 어찌 복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천하가 태평할 때는 제후들이 천자의 명을 완수하고 한가로운 때에 상견하니 이에 향례와 연례의 예가 있습니다. 향례를 거행하여 공경과 검소를 가르치고, 연례를 베풀어 자애를 보이는데 공경과 검소로 예를 실천하고 자애로 국정을 베푸는 것입니다. 정령을 통해 예가 성취되면 백성은 이로써 휴식을 얻을 수 있고 백관은 업무를 처리함에 아침에 일하고 저녁에는 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후들이 그의 백성을 보호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시』(『주남·토저兎罝)에 ‘용감한 무부는 백성을 지키는 공후의 방패로다’라고 말합니다. 천하가 혼란해지자 제후들은 탐욕스러워지고 침략의 야욕을 그칠 수 없어 자그마한 땅에도 서로 다퉈 백성을 동원하고 용사를 취해 자신의 수족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시』(『주남·토저兎罝)에 ‘용감한 무부는 제후의 수족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천하에 바른 정치가 펼쳐진다면 제후는 백성의 견고한 성이 되어 자신의 수족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허나 어지러워지면 그 반대가 됩니다. 지금 귀하의 말은 난세의 도리이니 상법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허나 귀하가 이 향례를 주관하니 어찌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극지는 결국 안으로 들어가 예를 마쳤다

귀국하여 범문자에게 이 일을 말했더니 문자가 말했다“초나라는 예가 없으니 필시 맹세를 어길 것이다. 내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구나!겨울, 초나라의 공자피가 진나라를 예방했고, 또 결맹에 참석했다. 12, 진 여공과 초나라의 공자피가 적극赤棘에서 동맹을 맺었다.


원문 (성공 12년 네번째 기사) 

且涖盟. 楚子享之子反爲地室而縣焉. 將登金奏作於下驚而走出. 子反: 日云莫矣寡君須矣吾子其入也!賓曰: 君不忘先君之好施及下臣貺之以大禮重之以備樂. 如天之福兩君相見何以代此? 下臣不敢.子反: 如天之福兩君相見無亦唯是一矢以相加遺焉用樂寡君須矣吾子其入也!賓曰: 若讓之以一矢禍之大者其何福之爲? 世之治也諸侯間於天子之事則相朝也於是乎有享·宴之禮. 享以訓共儉宴以示慈惠. 共儉以行禮而慈惠以布政. 政以禮成民是以息. 百官承事朝而不夕此公侯之所以城其民也. : 赳赳武夫公侯干城.及其亂也諸侯貪冒侵欲不忌爭尋常以盡其民略其武夫以爲己腹心·股肱·爪牙. : 赳赳武夫公侯腹心.天下有道則公侯能爲民干城而制其腹心. 亂則反之. 今吾子之言亂之道也不可以爲法. 然吾子, 主也至敢不從?遂入, 卒事. 歸以語范文子. 文子: 無禮, 必食言吾死無日矣夫!楚公子罷且涖盟. 十二月晉侯楚公子罷盟于赤棘.


주석

且涖盟. 楚子享之子反爲地室而縣焉: “현”은 “현”의. 지하실에 종과 북을 걸어 놓았다. 지하실은 당 아래에 있다.

將登: 등은 당에 오르다. 극지는 서쪽 계단을 통해 올라갔다.

金奏作於下: 은 종박 가리킨다. 아홉 가지의 하나라 시대 음악을 연주했다. 먼저 종박을 치고, 그 후 북과 경을 치는 것을 금주金奏라고 한다. 『주례·춘관·종사』에 대한 손이양의 『정의』를 참고한 설명이다. 본문의 금주는 「구하九夏」의 하나인 「사하肆夏」를 연주한 것 같다. 『좌전·양공4년』의 내용에 근거하면, 「사하」는 본래 천자가 원후元侯에게 향례를 베풀 때 연주하는 것이지만 춘추시대 제후들의 상견에서도 역시 이 음악을 사용했다. 그후 점차 제후의 경대부들도 이 음악을 사용하여, 『예기·교특생』은 “대부들이 (참람되게도) 「사하」를 연주하게 된 것은 조문자부터이다”라고 말한다.


참고. 전국시대 증나라의 증후묘에서 출토된 편종


驚而走出. 子反: 日云莫矣: 자는 뜻이 없고 어중 조사이다. 자가 본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황혼의 뜻은 아니다. 『예기·빙의』의 “빙례와 사례는 지극히 큰 예이다. 날이 밝아올 때 행사를 시작하여 정오 즈음에 행사를 마치게 된다. 그러므로 강한 정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행사를 마칠 수 없다. 의식을 시작할 때 술은 맑으나 갈증이 나더라도 감히 마시지 않고, 고기는 쉬 마르나 허기가 져도 먹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지쳐가도(日莫人倦)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감히 해태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참고하라. 빙례는 아침에 시작하여 정오 이전에 마친다. 그러므로 인용구의 “日莫人倦”의 “일막”은 황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막 정오가 되려는 때임을 알 수 있다.

장병린의 『독』에서 인용한 『가자·수정어하』의 마치 해가 막 힘차게 떠오르는 것처럼, 마치 해가 막막暯暯하게 중천에 뜰 때처럼, 마치 해가 암암하게 지려 할 때처럼을 보면, 본문의 일막日莫은 인용한 구절의 과 같다. 해가 중천에 뜰 때를 말한다. 빈객을 영접하여 거행하는 예를 정오에 거행할 수는 없다.

寡君須矣吾子其入也!賓曰: 빈은 극지이다.

君不忘先君之好施及下臣貺之以大禮: 내리다.

重之以備樂: 비악備樂은 종박을 연주(金奏)하다.

如天之福兩君相見何以代此?: 제후의 음악으로 자신을 대접하면 만약 나중에 진과 초의 군주들이 상견할 때는 어떤 음악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뜻.

下臣不敢.子反: 如天之福兩君相見無亦唯是一矢以相加遺: 어수조사로 뜻이 없다. 加遺 동의사의 연용이다. 『시·패풍·북문』의 『모전』은 “유는 더함 뜻”이라고 풀이했다. 만약 진과 초 두 나라의 군주가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전쟁터뿐이라는 것.

焉用樂寡君須矣吾子其入也!賓曰: 若讓之以一矢: 으로 읽는다. 술과 음식을 정성껏 대접함이다. 우창의 『교서』를 참고했다.

禍之大者其何福之爲? 世之治也諸侯間於天子之事: “간”은 겨를間暇 간으로 읽는다. 間於天子之事”의 뜻은 주 왕조의 명령을 완수한 뒤의 한가한 시간이다. 이 말은 그저 외교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則相朝也於是乎有享·宴之禮. 享以訓共儉: 향례 때는 술과 음식을 차려 놓기는 하지만 먹거나 마시지는 않는다. 그래서 “공검”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선공 16년과 소공 5년의 『좌전』의 주석을 참고하라.

宴以示慈惠: 연례 때는 손님과 주인이 함께 먹고 마신다. 그래서 “자애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共儉以行禮而慈惠以布政. 政以禮成民是以息. 百官承事朝而不夕: 대낮에 접견하는 것을 조, 저녁에 접견하는 것을 석이라 한다. 『좌전·성공9년』의 “아침에는 영제를 저녁에는 측을 찾아 뵈었다”는 기사로 입증할 수 있다. 당시는 저녁에 별 일이 없으면 군주를 알현하지 않았다.

此公侯之所以城其民也: 간성은 보호하다(干城)와 같다. 동사로 쓰였다.

: 赳赳武夫, 公侯干城.: 『시·주남·토저兎罝』의 시구이다. 문일다의 『시경신의』에선 간자는 간 가차이고 담의 뜻, 그러므로 간성은 동의사의 연용이라고 설명한다. 『좌전』에선 총 세 차례 “탐모”를 쓴다.

及其亂也諸侯貪冒: 탐함. 탐모는 동의사의 연용이다. 소공 31년과 애공 11년의 『좌전』에 나머지 예가 있다.

侵欲不忌: 불기는 꺼리는 것이 없다.

爭尋常以盡其民: 8척을 심, 16척을 상이라 한다. 심상은 아주 자그마한 땅. 진기민은 백성들을 전쟁터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함.

略其武夫: .

以爲己腹心·股肱·爪牙. : 赳赳武夫公侯腹心.: 「토저편」의 시구이다. 극지는 “공후의 방패”, “공후의 복심” 두 구절을 나눴는데, 정반대의 뜻이다. 이는 고대인의 “단장취의”로서 반드시 『시』의 원뜻과 부합하지는 않는다.

天下有道則公侯能爲民干城而制其腹心. 亂則反之. 今吾子之言亂之道也不可以爲法. 然吾子, 主也: 당시 국군이 경대부에게 향연을 베풀 때 지위가 같지 않으므로 국군이 스스로를 주인이라 말할 수는 없다. 자반이 상으로서 초 공왕을 대신하여 주인이 된다. 그래서 극지가 “그대가 주인”이라고 말한 것이다.

至敢不從?遂入, 卒事. 歸以語范文子. 文子: 無禮, 必食言吾死無日矣夫!: 금택문고본은 “吾死亡無日也夫”로 쓴다. 吾死無日”은 진초 간 큰 전쟁을 예언한다.

楚公子罷且涖盟. 十二月晉侯楚公子罷盟于赤棘: 적극赤棘은 『춘추·성공원년』의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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