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와 초나라의 강화 (춘추좌전.8.12.2.)


송나라의 화원華元이 진나라와 초나라의 화해를 성사시켰다

여름 5, 진의 사섭士燮이 초나라의 공자피公子罷 및 허언許偃 회합했다. 

계해일(4), 송나라 도성의 서문 밖에서 결맹하고, 맹세했다. “진나라와 초나라는 서로에게 병력을 동원하지 않고, 우호와 적대의 상대를 같이 하며, 재해와 위기를 함께 구제하고, 흉사와 환란을 대비하고 구제한다. 만약 초나라가 적에게 공격을 받으면 진나라가 이를 정벌하고, 진나라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초나라 역시 동일하게 행동한다. 사신이 왕래할 때 길이 막히지 않게 하고, 이에 협조하지 않는 나라를 함께 도모하며 진과 초에 내조하지 않는 나라는 토벌한다. 이 맹약을 어긴다면 밝은 신께서 벌을 내리고 그의 군대를 실추하여 나라의 제사를 잇지 못할 것이다.” 

정 성공이 진나라로 가서 결맹을 전해 들었고 쇄택瑣澤(하북성 섭현涉縣 영내)에서 회합하였다. ·초 간에 화친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원문 (성공 12년 두번째 기사) 

宋華元克合·之成夏五月晉士燮楚公子罷·許偃. 癸亥盟于西門之外: ·無相加戎好惡同之同恤菑危備救凶患. 若有害伐之; 亦如之. 交贄往來道路無壅; 謀其不協而討不庭. 有渝此盟明神俾隊其師無克胙國.鄭伯聽成會于瑣澤成故也.


주석

公會晉侯·衛侯瑣澤: “쇄택瑣澤”은 『공양』에서 “사택沙澤”으로 쓴다. 두 글자는 고대 성부와 운부가 모두 같기 때문에 통가한다. 『춘추·정공7년』의 “맹우사(盟于沙)”를 『좌전』에선 “맹우쇄(盟于瑣)”라고 쓴 것으로도 입증할 수 있다. 쇄택은 『휘찬』에서 『진지도기』를 근거로 현 하북성 대명현大名縣 부근이라고 주장했다. 왕부지의 『패소』는 현 하북성 섭현涉縣 영내라고 한다. 『좌전』에 따르면, 당시 진나라 땅으로서 왕부지의 설이 비교적 더 신뢰할 만하다.

宋華元克合·之成: 화원이 진과 초, 두 나라와 모두 화의를 맺은 계책은 지난해의 기사를 참조.

夏五月晉士燮楚公子罷·許偃. 癸亥: 계해일은 4일이다.

盟于西門之外: ·無相加戎好惡同之同恤菑危: 재앙.

備救凶患. 若有害伐之; 亦如之. 交贄往來: 고대의 예방에 사자는 반드시 예물을 휴대한다. 이 예물을 “지”라 한다. 교지왕래는 사신의 왕래를 말한다.

道路無壅; 謀其不協而討不庭: 부정不庭의 뜻은 『좌전·은공10년』의 주석 참조. 본문의 “부정”은 진과 초를 배반하는 제후를 가리킨다. (은 동사로 쓰이면 내조하다의 의미이다. 『시·대아·상무尙武』의 “서나라가 내조하다(方來庭)”은 서나라가 조근한 것을 말한다. 부정不庭은 곧 조근하지 않음이다. 9년의 『좌전』 “송공이 조근하지 않아서(宋公不王)”라는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에 여기서 부정不庭을 토벌했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부정은 명사로서 조근하지 않은 나라를 의미한다. 즉 『시·대아·한혁韓奕』의 “조근하지 않는 나라들(不庭方)”과 『모공정』의 “조근하지 않는 나라들(不延方)”과 같다. 은공 10년의 주석.)

有渝此盟明神俾隊其師: .

無克胙國.: 이 맹세의 내용은 『좌전·희공28년』에도 나온다.

鄭伯聽成: 두예: “청은 수와 같다. 진과 초가 이미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정나라가 가서 명을 받았다.

會于瑣澤: “정백이 진나라로 갔다”는 말에 근거하면 쇄택은 진나라 땅이다. 심흠한의 『지명보주』는 정나라 땅이라고 했지만 본문의 쇄택을 양공 11년에 나오는 쇄와 동일한 곳으로 봤기 때문에 생긴 오류이다.

成故也: 최적의 『춘추복시·외편』에서 (이 세 글자는) 양공 27년의 미병弭兵의 회합(상술 주도의 진초 휴전 회합을 가리킨다. 옮긴이) 부분에서 잘못 떨어져 나온 글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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