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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청한 진나라 한궐과 후계를 양보한 한무기 (춘추좌전.9.7.6)

겨울 10 월 , 진 晉 의 한헌자가 노령으로 사직을 청하고 공족대부 목자 穆子 에게 고질병이 있지만 그를 후계로 세우려 했다 . 목자가 사양하며 말했다 . “ 『시』 ( 『소남·행로』 ) 에 ‘어찌 밤낮으로 가고 싶지 않을까 ? 길가의 저 많은 이슬 때문이다 .’ 라고 말합니다 . 또 ‘몸소 하지 않으면 백성이 믿지 않는다 . ’ ( 『소아·절남산』 ) 라고 말합니다 . 무기는 재주가 없으니 사양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 청컨대 기 起 ( 한선자 ) 를 후계로 삼으십시오 . 그는 전소 田蘇 와 어울리는데 전소는 기에 대해 ‘인함을 좋아한다 . ’라고 말합니다 . 『시』 ( 『소아·소명』 ) 에 ‘네 지위에 삼가고 공경하며 정직한 이를 가까이하라 . 신께서 들으시고 너를 도와 큰 복을 내리리라 . ’라고 말합니다 . ( 직분을 삼가 공경하여 ) 백성을 걱정하는 것이 덕 德 이고 , 자신의 본래 곧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정 正 이고 , 남의 굽은 것을 바로 펴주는 것을 직 直 이라 합니다 .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룬 것이 인 仁 이니 이처럼 할 수 있다면 신께서 들으시고 큰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 그를 세우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 ”  경술일 ( 9 일 ) 경술일 , 한궐은 선자를 입조케 하고 자신은 사직을 청하였다 . 진 도공은 한무기의 사람됨이 인하다고 여겨 공족대부들을 관장하게 하였다 . 원문 (9.7.6.)  冬十月 , 晉韓獻子 告老 , 公族 穆子 有廢疾 , 將立之 . 辭曰 : “『 詩 』 曰 : ‘ 豈不夙夜 ? 謂行多露 . ’ 又曰 : ‘ 弗躬弗親 , 庶民弗信 . ’ 無忌 不才 , 讓 , 其可乎 ? 請立 起 也 . 與 田蘇 游 , 而曰 ‘ 好仁 ’ . 『 詩 』 曰 : ‘ 靖共爾位 , 好是正直 . 神之聽之 , 介爾景福 . ’ 恤民爲德 , 正直爲正 , 正曲爲直 , 參和爲仁 . 如是 , 則神聽之 , 介福降之 , 立之 , 不亦可乎 ? ” 庚戌 , 使 宣子 朝 , 遂老 . 晉侯 謂 韓無忌 仁 , 使掌公族大夫 . 주석 ▣ 冬十月 ,...

초나라를 우려하는 한궐 (춘추좌전.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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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 4 년 봄 , 진 陳 나라의 배반 때문에 초나라 군이 번양 繁陽 ( 하남성 신채현 新蔡縣 의 북쪽 ) 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 한헌자 ( 한궐 ) 가 이를 우려하여 조정에서 말하였다 . “문왕은 은나라에 반기를 든 나라들을 인솔하여 주 紂 임금을 섬겼으니 때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 지금 우리는 이와 반대로 처신하니 어렵습니다 . ” 원문 (9.4.1.)  四年春 , 楚 師爲 陳 叛故 , 猶在 繁陽 . 韓獻子 患之 , 言於朝曰 : “ 文王 帥 殷 之叛國以事 紂 , 唯知時也 . 今我易之 , 難哉 ! ” 주석 ▣ 四年春 , 楚 師爲 陳 叛故 , 猶在 繁陽 : 번양은 현 하남성 신채현 新蔡縣 의 북쪽이다 . 猶在繁陽 은 작년 초나라의 공자하기가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를 침략했지만 진이 초나라에 복종하지 않자 초군 역시 퇴각하지 않고 있었다 . 번양은 진 陳 나라에서 거리가 200 여 리 되는데 진격할 수도 후퇴할 수도 있는 거리다 . 춘추시대 지도. 번양 ▣ 韓獻子 患之 : 한궐은 이미 성공 18 년에 진나라의 중군의 장수가 되었고 국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 ▣ 言於朝曰 : “ 文王 帥 殷 之叛國以事 紂 : 『일주서·정전편』의 “문왕은 육주의 제후를 규합하여 상나라를 받들었다” , 『논어·태백편』의 “천하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였어도 은나라에 복종했다”는 언급이 있다 .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당시 천하는 9 주로 구분되었는데 6 주를 얻었다면 2/3 이다 . ▣ 唯知時也 . 今我易之 : 두예 : “진의 역량은 초나라를 굴복시킬 수 없으므로 진 陳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니다 . ” ▣ 難哉 ! ” : 주석 없음 .

팽성을 구하기 위해 송나라를 정벌한 초나라 자중 (춘추좌전.8.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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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을 구하기 위해 송나라를 정벌한 초나라 자중 겨울 11 월 , 초나라의 자중이 팽성 彭城 ( 강소성 서주시 徐州市 ) 을 구원하기 위해 송나라를 정벌했다 . 송의 화원이 진나라로 가서 위급을 알렸다 .  한헌자가 집정이었고 , 말했다 . “사람을 얻으려면 반드시 먼저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패업을 이루고 , 변경을 안정시키는 일은 송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 ” 여공은 태곡 台谷 ( 미상 ) 에 군사를 주둔시켜 송나라를 구원했다 . 미각지곡 靡角之谷 ( 팽성 부근 ) 에서 초군과 마주치자 초군이 퇴각했다 . 원문 (8.18.12.)  冬十一月 , 楚子重 救 彭城 , 伐 宋 . 宋華元 如 晉 告急 . 韓獻子 爲政 , 曰 : “ 欲求得人 , 必先勤之 . 成霸 · 安彊 [1] , 自 宋 始矣 . ” 晉侯 師于 台谷 以救 宋 . 遇 楚師 于 靡角之谷 , 楚 師還 . (1)   『석경』과 송본 , 금택문고본에는 모두 “강 疆 ”자로 쓴다 . 안강은 강역을 안정시킴의 뜻이다 . 그러나 초나라는 단지 송나라를 정벌하는 것이지 진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아니므로 진의 강역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보기엔 무리다 . 그러므로 “강 彊 ”으로 쓰는 것이 옳다 . 주석 ▣ 冬十一月 , 楚子重 救 彭城 , 伐 宋 . 宋華元 如 晉 告急 . 韓獻子 爲政 : 당시 난서가 만약 많은 나이로 인해 은퇴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면 사망한 것 같다 . 그래서 한궐이 그를 대신해 중군의 장수로 있었다 . 춘추시대 지도. 팽성 ▣ 曰 : “ 欲求得人 : 득인은 得諸侯 와 같다 . ▣ 必先勤之 : 근은 로 勞 . 그를 위해 힘쓰는 일이 있어야 한다 . 「진어 2 」의 “ 秦 人勤我矣 . ”에 대해 위소는 “근아 勤我 는 우리를 돕다 ( 助 ) 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 근과 조 역시 통한다 . ▣ 成霸 · 安彊 : “강”자는 『석경』과 송본 , 금택문고본에는 모두 “강 疆 ”자로 쓴다 . 안강은 강역을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