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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국의 부고는 이름을 쓴다. (춘추좌전.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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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 6 년 봄 , 기 杞  환공이 타계했다 . 처음으로 이름을 써서 부고했는데 동맹했기 때문이다 . 원문 (9.6.1.)  六年春 , 杞桓公 卒 . 始赴以名 , 同盟故也 . 주석 ⊙ 六年春王三月 : 정월 14 일 을미일이 동지였고 건자이다 . ⊙ 壬午 : 임오일은 2 일이다 . ⊙ 杞伯姑容 卒 : 공영달의 『소』에서 『세본』을 인용 , 고용 姑容 은 기 성공의 아우라고 말하고 있다 .   춘추시대 지도. 기 杞 나라 ▣ 六年春 , 杞桓公 卒 . 始赴以名 , 同盟故也 : 기 환공은 희공 24 년에 즉위하여 70 년간 재위했다 . 노 성공 5 년 , 7 년 , 9 년에 노나라와 동맹했고 양공 당시 동맹한 기사는 찾아볼 수는 없다 . 본문의 동맹은 전대의 일이다 . 기나라는 춘추시대 이래로 군주의 부고에 이름을 적은 적이 없었다 . 성공은 희공 23 년에 죽었지만 역시 “기자가 서거했다”라고만 적고 있다 . 이 해 이후로 기나라 군주의 사망과 장례가 모두 『노춘추』에 기재되고 있다 . 『춘추·희공 23 년』의 주석에 자세하다 .

진나라에 성혼을 요청하는 기나라 (춘추좌전.8.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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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에 성혼을 요청하는 기나라 가을 , 기 杞 환공이 내조하여 성공의 노고를 위로하고 , 또 진나라의 상황을 물었다 . 성공이 진 도공에 대해 얘기했다 . 기 환공은 이 때문에 급히 진나라를 예방하고 혼사를 청했다 . 원문 (8.18.7.)  秋 , 杞桓公 來朝 , 勞公 , 且問 晉 故 . 公以 晉 君語之 . 杞伯 於是驟朝于 晉 而請爲昏 . 주석 ▣ 秋 , 杞桓公 來朝 , 勞公 , 且問 晉 故 . 公以 晉 君語之 : 두예 : “진 도공의 덕정에 대해 얘기했다 . ” 춘추시대 지도. 기 杞 나라 ▣ 杞伯 於是驟朝于 晉 而請爲昏 : 취 驟 에는 빠름과 자주의 두 가지 뜻이 있다 . 당시 기 환공은 즉위한 지 64 년이 되는 해였으므로 매우 연로했다 . 그러므로 자주의 뜻보다는 신속하게 뜻으로 보는 것이 옳다 .

기나라 환공 (춘추좌전.8.9.1.기원전 582년)

성공 9 년 봄 , 기 환공이 우리나라로 와서 숙희의 상구를 맞이해 갔는데 우리가 요청한 것이다 . 기숙희의 죽음은 기나라 때문이었다 . 저들이 숙희의 상구를 맞이해 간 것은 우리나라를 위해서였다 . 원문(성공 9년 첫번째 기사)  九年春, 杞桓公 來逆 叔姬 之喪,請之也 . 杞叔姬 卒,爲 杞 故也 . 逆 叔姬 ,爲我也 .

춘추좌전. 기나라, 紀, 2.8.4.

2.8.4.  ( 환왕의 공경 ) 채공이 우리나라로 왔고 , 바로 왕후를 맞이하러 기 紀 나라로 떠났으니 , 예에 부합하였다 . 祭公 來 , 遂逆王后于 紀 , 禮也 . 해설  ⊙ 祭公 來 , 遂逆王后于 紀 : 은공 원년에 채백이 언급되었는데 이 사람인 것 같다 . 여기서 채공이라고 한 까닭은 아마 이때 천자의 삼공 三公 이 된 것이 아닌가싶다 . 이 문장의 뜻은 주나라 환왕을 대신하여 왕후를 영접하러 간 것인데 이 때는 환왕이 즉위한 지 이미 16 년이 되는 해였다 . 즉위 16 년 만에 왕후를 들일 수 있을까 ? 이를 미루어 보면 초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백호통 白虎通 』과 『왕도기 王度記 』는 모두 “천자와 제후는 모두 재취하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 하지만『삼례』를 살펴보면 모두 이런 언급은 없다 . 또 『좌전』만을 놓고 보아도 역시 그런 예는 없으므로 믿기 어렵다 . 상세한 것은 모기령의 『춘추전』을 참고하라 . 고대의 통혼에 있어 남녀 쌍방의 지위는 서로 걸맞아야 한다 . 주 왕실이 비록 그 위엄이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명목상 천자이기 때문에 제후와의 통혼은 서로 지위가 걸맞지 않는다 . 그래서 천자는 친히 혼사를 주관하지 않고 동성 제후에게 혼사를 위임한다 . 예를 들면 주나라 왕의 여식인 왕희 王姬 가 출가할 때 먼저 노나라에 보내고 ( 왕희는 제나라로 출가하는 것인데 천자가 스스로 혼사를 주관하지 않기에 노나라로 보내 노나라 군주가 그 혼사를 주관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 옮긴이 ), 그후에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간다 . 『춘추·장공원년』의 “선백이 왕희를 호송했고 , 노나라는 왕희가 머물 거처를 성 밖에 지었다 ( 單伯 送 王姬 , 築 王姬 之館于外 ) ”라는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 본문의 주나라 왕이 혼사를 치를 때도 역시 이런 절차를 통했을 것이다 . 왕실이 공경을 노나라에 파견하고 그 다음 왕후를 영접하여 바로 경사로 간다 . 이것이 채공이 왕후를 맞이할 때 필수적으로 노나라에 오게 된 이유이다 . 천자는...

2.6.7. 기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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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겨울 , 기 紀 나라 군주가 와서 예방하고 , 왕명으로 제나라와의 강화를 중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 환공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2.6.7.   冬 , 紀侯 來朝 , 請王命以求成于 齊 . 公告不能 . 해설 ▣ 冬 , 紀侯 來朝 , 請王命以求成于 齊 . 公告不能 : 여름 4 월에 기나라 군주가 노나라에 와서 제나라로 인한 어려운 문제를 고민했고 , 겨울 다시 예방을 와서 환공이 기나라 대신 왕명을 받아 제나라와 화해할 수 있도록 노나라에게 요청했지만 환공은 할 수 없다고 전했다 . 이에 기나라는 왕후를 들여보내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려 했지만 끝내 제나라에게 멸망됨을 피할 수는 없었다 .  춘추좌전 지도 - 기紀나라

2.5.2. 기나라(紀) 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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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름 , 제 희공과 정 장공이 기 紀 나라를 예방했는데 기습하려던 것이었다 . 기나라가 이를 눈치챘다 . 2.5.2.  夏 , 齊侯 · 鄭伯 , 朝于 紀 , 欲以襲之 . 紀 人知之 . 해설 ▣ 夏 , 齊侯 · 鄭伯 , 朝于 紀 , 欲以襲之 . 紀 人知之 : 제나라와 정나라는 대국이고 , 희공과 장공은 또 당시의 영웅이었다 . 기 紀 나라는 소국일 뿐인데 두 나라가 함께 내조하는 것을 보고 필경 그들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춘추좌전 지도 - 기 紀

2.2.3. 기杞나라

본문 가을 7 월 , 기 杞 무공 이 와서 조견할 때 불경을 저질렀다 . 무공이 돌아가자 기나라 토벌을 논의했다 . 2.2.3.  秋七月 , 杞侯 來朝 , 不敬 . 杞侯 歸 , 乃謀伐之 . 해설 ▣ 秋七月 , 杞侯 來廟 , 不敬 . 杞侯 歸 , 乃謀伐之 : 주석 없음 .

1.8.7. 부래浮來 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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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은공이 거 莒 나라 군주와 부래 浮來 ( 산동성 거현 莒縣 서쪽 ) 에서 결맹함으로써 기 紀 나라와도 우호를 맺었다 . 1.8.7.  公及 莒 人盟于 浮來 , 以成 紀 好也 . 해설 ▣ 公及 莒 人盟于 浮來 : 부래는 『춘추』의 주석을 참고 .  ◉   “부래 浮來 ”는  『공양』과 『곡량』모두 “포래 包來 ”로 쓴다 .  두 글자는 고음이 유사하여 통가한다 .  현재의 산동성 거현 莒縣  서쪽에 부래산이 있고 ,  그 중턱에 거자릉 莒子陵 이  있는데 부래는 거 莒 나라 의 읍이다 .  두예는 기 紀 나라의  읍이라고 말한다 .  오늘날 어떤 학자는 부래가 기원 沂源 과  기수 沂水 가에  있었고 ,  그 중 기수 동쪽 기슭으로서 두 현의 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춘추좌전 지도 - 부래浮來 ▣ 以成 紀 好也 : 호 好 는 거성이다 . 『좌전·은공 2 년』 : “기나라 군주 면과 거나라 군주가 밀에서 결맹했는데 , 이것은 노나라를 위한 일이었다 . ” 기와 거 두 나라는 이미 노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서로 결맹했다 . 노나라와 거나라가 서로 맹약을 맺음으로써 또한 기나라와도 우호 관계와 성립된 것을 표시한 것이다 .

1.2.6. 기紀나라와 거莒나라 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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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겨울 , 기 紀 나라의 열수 ( 자백 子帛 ) 가 거 莒 나라 군주와 밀 密 ( 산동성 창읍현 昌邑縣 동남쪽 ) 에서 결맹했는데 노나라 때문이었다 . 1.2.6.  冬 , 紀子帛 · 莒子 盟于 密 , 魯 故也 . 해설 ◉ 紀子帛 · 莒子 盟于 密 : 기자백 紀子帛 에 대해 두예는 이 사람이 곧 기열수이며 자백은 그의 자 字 라고 설명한다 . 두예는 또 『좌전』의 “노나라 때문이다 ( 魯故也 ) ”란 문구에 대해 , 자백이 거나라 군주와 결맹하고 , 노나라와 거나라 간의 불목을 화해시키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기열수를 노나라의 대부에 견주어 거나라 군주의 앞에 쓴 것이라고 설명한다 . 육순 陸淳 의 『춘추집전찬례 春秋集傳纂例 』 1 에서도 조광 趙匡 이 『죽서기년』에 근거한 내용을 인용하여 역시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 그러나 『수경주·회수편 淮水篇 』은 “유수 遊水 가 다시 동북쪽으로 기장 紀鄣 의 옛성 남쪽을 흘러 지나간다 . 이곳은 고대 기자백 紀子帛 의 나라이다”라고 설명한다 . 역도원은 백을 기나라 군주의 이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 『춘추』를 살펴보면 , 기나라 군주를 호칭할 때 모두 기후 紀侯 라고 쓰지 기백으로 쓴 적은 없다 . 게다가 열수의 자가 자백이다 . 이름과 자가 실로 상응하므로 두예의 주장이 옳은 것 같다 . 모기령 毛奇齡 의 『춘추간서간오 春秋簡書刊誤 』를 참고한 설명이다 . 춘추좌전 지도 - 거나라  밀 密 , 『청일통지 淸一統志 』에 따르면 , 산동성 창읍현 昌邑縣 의 동남쪽 15 리 떨어진 곳에 밀향 密鄕 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다 . ▣ 冬 , 紀子帛 · 莒子 盟于 密 , 魯 故也 : 『춘추 』 의 주석에 상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