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투초인 게시물 표시

약오씨 멸족, 자월초의 반란을 진압한 초 장왕 (춘추좌전.7.4.3.)

이미지
애초 초나라 ( 자문의 아우 ) 사마 자량 子良 이 자월초 子越椒 를 낳았을 때 자문 子文 이 말했다 .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한다 ! 이 아이는 곰과 호랑이의 생김새에 승냥이의 목소리를 타고 났다 .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약오씨 若敖氏 를 멸족시킬 것이다 . 속담에 ‘승냥이 새끼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 고 한다 . 이 아이는 승냥이다 . 어찌 키울 수 있겠는가 ? ” 자량은 그의 말을 따를 수 없었다 . 자문은 이를 크게 걱정했고 , 임종에 이르러 그 일족을 불러 말했다 . “자월초가 정권을 잡거든 속히 떠나 해를 입지 않도록 하라 . ” 다시 흐느끼며 말했다 . “귀신도 제삿밥이 필요한데 약오씨의 귀신들은 아마도 굶지 않겠는가 ! ” h 영윤 자문이 죽자 ( 그의 아들 ) 투반 鬬般 이 영윤이 되었고 자월 ( 초 ) 이 사마가 되었다 . 위가 蔿賈 가 공정 工正 이었는데 자양 子揚 ( 투반 ) 을 참소해 죽였다 . 자월이 영윤이 되었고 위가는 사마가 되었다 . 자월은 또 위가를 미워하여 약오씨 일족을 이끌고 백영 伯嬴 ( 위가 ) 을 요양 轑 陽 에서 포위하여 죽인 후 이어 증야 烝野 ( 하남성 신야현 新野縣 ) 에 머물며 장왕을 공격하려 했다 . 장왕은 문왕 , 성왕 그리고 목왕의 후손을 인질로 보내 타협하기를 원했지만 자월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 장왕이 장서 漳澨 ( 호북성 형문현 荊門縣 의 서쪽 ) 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  가을 7 월 무술일 (9 일 ), 장왕과 약오씨가 고호 皋滸 ( 호북성 양양현 襄陽縣 의 서쪽 ) 에서 싸움을 벌였다 . 백분 伯棼 ( 투초 , 자월초 ) 이 왕에게 활을 쏘았고 , 화살은 전차의 끌채를 지나 북걸이까지 날아가 징에 박혔다 . 재차 활을 쐈지만 역시 수레의 끌채를 지나 수레덮개를 관통했다 . 왕의 병사들이 두려워 물러났다 . 장왕이 병사를 시켜 군중을 돌며 말하게 했다 . “우리 선군 문왕께서 식나라를 물리치고 세 개의 화살을 얻었는데 백분이 두 개를 훔쳐가 이제 다 썼다 . ” 왕이 북을 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