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문자의 반란과 위 헌공의 망명 (춘추좌전.9.14.4.)
손문자의 반란과 위 헌공의 망명 위 헌공이 손문자 孫文子 및 영혜자 寧惠子 와 식사를 하자고 명했고 , 두 사람은 조복을 차려 입고 입조했는데 날이 늦도록 헌공은 이들을 부르지 않고 유원지에서 기러기 사냥을 하고 있었다 . 두 사람이 헌공을 찾아 유원지로 갔을 때 헌공은 피관을 벗지 않은 채 그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 두 사람은 헌공의 무례에 분노했다 . 손문자는 자신의 읍인 척 戚 ( 하남성 핍양현 濮陽縣 의 북쪽 ) 으로 갔고 손괴 孫蒯 를 궁궐로 보냈다 . 헌공이 손괴에게 술을 내리며 태사에게 「교언 」 ( 『시·소아』 ) 의 마지막 장을 부르게 했다 . 태사는 사양했는데 사조 師曹 가 자청하였다 . 애초 , 헌공에게 애첩이 있었는데 사조를 시켜 그녀에게 거문고 연주를 가르치게 했다 . 사조는 가르칠 때 그녀에게 회초리를 들었다 . 헌공이 분노했고 사조에게 채찍 300 대를 쳤다 . 이런 연유로 사조는 노래를 불러 손자를 분노케 하여 헌공에 복수한 것이다 . 헌공은 노래를 부르라 했지만 그는 손괴가 잘 들을 수 있게 낭송하였다 . 손괴는 겁을 먹었고 문자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 문자가 말했다 . “군주가 우리를 꺼리니 선수를 치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가 죽을 것이다 . ” 손문자가 모든 가솔을 척 戚 으로 불러 모아 도성으로 들어갈 때 거백옥 蘧伯玉 과 마주쳤다 . “군주의 포학함은 그대도 알고 있을 것이다 . 사직이 무너질까 크게 두렵다 . 어쩌면 좋겠는가 ? ”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감히 신하가 이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 설령 그를 범하여 폐위한들 새 군주가 더 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 ” 거백옥은 말을 마치자 바로 가까운 관문을 통해 도망쳤다 . 헌공이 자교 子 蟜 , 자백 子伯 , 자피 子皮 를 보내 손자 와 북궁 丘宮 에서 결맹하게 했지만 손자는 모두를 살해했다 . 4 월 기미일 , 자전 子展 은 제나라로 도망치고 헌공은 견 鄄 ( 산동성 견성현 鄄城 縣 의 서북쪽 ) 으로 도망쳤다 . 자행 子行 을 손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