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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여廧咎如 (춘추좌전.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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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극극과 위나라의 손량부가 장구여 廧咎如 를 정벌했다 . 그곳의 적적 赤狄 의 잔당을 토벌한 것이다 . ( ☞ 7.16.1. ) 장구여가 궤멸했는데 윗사람이 백성에게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 원문 晉 郤 克 · 衛孫良夫 伐 廧咎如 , 討 赤狄 之餘焉 . 廧咎如 潰 , 上失民也 . 관련 주석 ▣ 晉 郤 克 · 衛孫良夫 伐 廧咎如 : 장구여는 『좌전·희공 23 년』의 주석 참조 . 춘추좌전 지도 - 장구여 ▣ 討 赤狄 之餘焉 : 적적의 부락은 매우 많다 . 로씨 · 갑씨 · 류우 · 탁신의 무리 등인데 차례로 진나라에게 멸망되었다 . 장구여가 남았기 때문에 “적적의 남은 무리를 토벌했다”고 쓴 것이다 . 공영달의 『소』는 유현의 주장과 혜동의 『보주』를 인용하여 위처럼 해석했다 . 그러나 두예는 “진이 적적 로씨를 멸했는데 그 유민이 장구여로 숨어 들어갔기 때문에 토벌한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 . ▣ 廧咎如 潰 , 上失民也 : 두예는 “이는 『좌전』을 가지고 『춘추』를 해석한 것이다 . 『춘추』에는 ‘장구여가 궤멸되었다’는 언급이 없다 . 경문에는 ‘ 廧咎如 潰 ’의 네 글자가 누락되었다 . ”고 주장한다 . 『곡량』에도 이 네 글자는 없다 . 두예의 주석을 신뢰하기에는 미진하다 .

적적로씨赤狄潞氏 (춘추좌전.7.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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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 赤狄 로씨 潞氏 의 군주 영아 嬰兒 의 부인은 진 경공의 누이이다 . 풍서 酆 舒 가 집정이 되어 그녀를 살해하고 또 군주의 눈을 상하게 했다 .  진 경공이 노씨를 정벌하려 했다 . 대부들이 모두 아뢰었다 . “불가합니다 . 풍서에겐 세 가지 뛰어난 재주가 있으니 그의 후임이 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 ”  백종 伯宗 이 말했다 . “반드시 적적을 정벌해야 합니다 . 적 狄 에 다섯 가지 죄가 있으니 비록 풍서가 탁월한 재주가 많더라도 어찌 그 죄를 무마할 수 있겠습니까 ?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 음주를 좋아하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 중장 仲章 을 퇴출하고 려씨 黎氏 의 땅을 빼앗은 것이 세 번째입니다 . 우리 백희를 살해한 것이 네 번째입니다 . 그의 군주의 눈을 상하게 한 것이 다섯 번째입니다 . 자신의 잘난 재주를 믿고 덕을 기르지 않으니 이는 죄를 더하는 일입니다 . 그의 후임이 혹 덕과 의를 삼가고 받들어 귀신과 사람을 잘 섬겨 나라의 명운을 더욱 공고히 한다면 후임을 기다려 무슨 소용입니까 ? 죄가 있는데 토벌치 않고 ‘후일을 기약하자’고 말하나 차후에 그 죄를 모두 해명했는데 토벌이 가능하겠습니까 ? 무릇 재주와 무리의 수를 믿는 것은 망국의 길입니다 . 바로 상나라 주 임금이 그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 하늘이 때를 잃으면 재앙이 되고 , 땅의 만물이 본성을 잃으면 요괴가 되며 , 백성이 덕을 어기면 혼란해집니다 . 혼란이 일어나면 요괴와 재앙이 발생합니다 . 그러므로 글자 정 正 을 거꾸로 하면 핍 乏 이 됩니다 . 이런 모든 정상과 거꾸로 된 일들이 현재 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 ” 진 경공이 그의 말을 따랐다 .  6 월 계묘일 (18 일 ), 진의 순림보가 곡량 曲梁 ( 노성의 서쪽 10 리 ) 에서 적적을 물리쳤다 . 신해일 (26 일 ) 로씨를 멸하였다 . 풍서는 위나라로 도망쳤지만 위나라가 그를 진나라로 보냈고 진나라는 풍서를 주살했다 . 원문 潞子嬰兒 之夫...

선곡先縠 (춘추좌전.7.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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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 진나라가 필에서의 패전과 청 淸 에 침입한 적적 赤狄 과 관련하여 죄를 다스려 선곡에게 그 죄를 물어 주살하고 그 일족도 몰살했다 . 군자는 말한다 . “‘재앙의 도래는 스스로 불러들인다 . ’ 아마도 선곡을 두고 한 말이로다 ! ” 원문 冬 , 晉 人討 邲 之敗與 淸 之師 , 歸罪於 先縠 而殺之 , 盡滅其族 . 君子曰 : “‘ 惡之來也 , 己則取之 ’, 其 先縠 之謂乎 ! ” 관련 주석 ▣ 冬 , 晉 人討 邲 之敗與 淸 之師 , 歸罪於 先縠 而殺之 , 盡滅其族 : 「진세가」는 선곡이 “적과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도모했다 . 진나라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그의 일족을 멸했다 . ”고 기록하여 필의 전투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과는 부합하지 않는듯하다 . 『좌전·소공 3 년』에 보면 , 원씨 ( 선진 ) 가 노예의 신분으로 강등되어 그의 방계 일족까지 쇠퇴했다 . ( ☞ 10.3.3.) 춘추좌전 지도 - 적적과 내통한 선곡 ▣ 君子曰 : “‘ 惡之來也 : 『순자·부국편』 : “그러므로 혹은 은혜를 혹은 벌을 주기도 하는 것 ( 故使或美或惡 ) ”에 대해 양경은 “미 美 는 총애를 , 악 惡 은 형벌을 가리킨다”고 주석했다 . ▣ 己則取之 ’ : 예부터 이런 말이 있었던 듯하다 . ▣ 其 先縠 之謂乎 !: 주석 없음 .

적적赤狄 (춘추좌전.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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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晉 의 극성자 郤 成子 ( 극결 ) 가 여러 적 狄 의 부족들 과 화친을 추구했다 . 당시 그들은 적적 赤狄 의 부역에 시달려 결국 진나라에 복종했다 .  가을 , 찬함 欑函 ( 미상 ) 에서 회합을 가졌는데 그들이 복종했기 때문이다 . 이번 회합에 진의 대부들은 저들을 진나라 땅으로 불러들이려 했지만 극성자가 말했다 . “제가 듣건대 , 덕이 아니라면 수고를 들이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 수고도 없이 어찌 마음을 얻겠습니까 ? 수고하면 공적이 이어집니다 . 저들의 땅으로 가겠습니다 . 『시』 ( 『주송·뢰 賚 』 ) 에 ‘문왕께서 수고를 마다치 않으셨다 . ’했습니다 . 문왕조차 수고를 들였는데 하물며 덕이 부족한 우리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 ” 원문 晉 郤 成子 求成于衆 狄 , 衆 狄 疾 赤狄 之役 , 遂服于 晉 . 秋 , 會于 欑函 , 衆 狄 服也 . 是行也 , 諸大夫欲召 狄 , 郤 成子 曰 : “ 吾聞之 , 非德 , 莫如勤 , 非勤 , 何以求人 ? 能勤 , 有繼 . 其從之也 . 『 詩 』 曰 : ‘ 文王 旣勤止 ’, 文王 猶勤 , 況寡德乎 ? ” 관련 주석 ⊙ 秋 , 晉侯 會 狄 于 欑函 : 두예 : “진 경공이 회합 장소로 갔기 때문에 적을 회합의 주관자로 삼은 것이다 . ” 공영달의 『소』 : “진 경공과 적의 회합에서 적이 자기 땅에 있고 , 진 경공이 그곳으로 갔다 . 그래서 『좌전』에 진 대부가 적을 진의 땅으로 부르려 했지만 극성자가 권하여 경공이 직접 갔기 때문에 적을 회주로 삼은 것이다 . 성공 15 년의 ‘종리에서 오나라와 회합했다’ , 양공 10 년의 ‘상에서 오나라와 회합했다’ , 등의 뜻 역시 같다 . ” 두예는 진 경공이 적과 회합하기 위해 몸소 적의 땅으로 갔다고 봤기 때문에 찬함 欑函 을 적의 땅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소재지는 현재 알 수 없다 . 심흠한의 『지명보주』에서 찬함이 곧 『좌전·은공 11 년』의 “찬모 櫕茅 ”이고 , 현 하남성 수무현이라고 말하지만 진과 적이 회합한 장소같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