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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6군 (춘추좌전.8.3.8)

12 월 갑술일 (26 일 ), 진나라가 6 군 체제로 개편했다 . 한궐 韓厥 ·조괄 趙括 ·공삭 鞏朔 ·한천 韓穿 ·순추 荀騅 ·조전 趙旃 등이 경이 되었는데 안 鞍 의 전쟁의 공로에 대한 포상이었다 . 원문 十二月甲戌 , 晉 作六軍 . 韓厥 · 趙括 · 鞏朔 · 韓穿 · 荀騅 · 趙旃 皆爲卿 , 賞 鞍 之功也 . 관련 주석 ▣ 十二月甲戌 : 갑술일은 26 일이다 . ▣ 晉 作六軍 : 「년표」·「제세가」·「진세가」등에선 “육군”을 모두 “육경”으로 쓰고 있다 . 아마 다음 문장의 “모두 경이다”라는 문구로 인한 오류로 생각된다 . ▣ 韓厥 · 趙括 · 鞏朔 · 韓穿 · 荀騅 · 趙旃 皆爲卿 : 추 騅 의 음은 추 錐 이다 . 순추는 「진세가」의 『색은』에 근거하면 , 시호는 문자 文子 이다 . 진나라는 이전까지 3 군이었다가 이때 신중 新中 ·신상·신하의 3 군을 창설하여 모두 6 군 체제로 변신했다 . 3 군에는 본래 각각 장수와 부장이 있어 모두 6 경이 담당했고 , 이번의 증설로 인해 6 경이 추가되었다 . 『좌전·성공 6 년』의 “한헌자가 신중군의 장수가 되었다”에 대해 두예는 본문의 이름을 기록한 순서를 기준으로 “한궐이 신중군의 장수가 되고 , 조괄이 보좌했으며 ; 공삭이 신상군의 장수가 되고 한천이 그를 보좌했고 ; 순추가 신하군의 장수가 되었으며 조전이 그를 보좌했다 . ”고 설명한다 . 「진세가」는 “한천”을 “조천 趙穿 ”으로 잘못 쓰고 있다 . ▣ 賞 鞍 之功也 : 주석 없음 .

대국과 소국의 의전 순서 (춘추좌전.8.3.7)

겨울 11 월 , 진 경공이 순경 荀庚 을 우리나라로 보내 예방하고 , 또 이전의 동맹을 경신했다 . 위 정공이 손량부를 우리나라로 보내 예방하고 , 또 동맹을 경신했다 .  성공이 장선숙 臧宣叔 에게 물었다 . “중항백은 진나라에서 서열이 세 번째이고 , 손자는 위나라에서 지위가 상경이다 . 누구와 먼저 예를 거행해야 하는가 ? ” 장선숙이 대답했다 . “차국의 상경은 대국의 중경에 해당하고 , 중경은 하경과 같으며 , 하경은 상대부와 지위가 같습니다 . 소국의 상경은 대국의 하경에 상당하고 , 중경은 상대부 , 하경은 하대부와 지위가 같습니다 . 지위의 상하가 이와 같음은 옛 법도입니다 . 위나라는 진나라에 대해 차국의 지위에 설 수 없습니다 . 진나라는 맹주이니 진의 사자를 앞에 세워야 합니다 . ” 병오일 (28 일 ), 진나라와 결맹하고 , 정미일 (29 일 ), 위나라와 결맹하였으니 예에 맞았다 .   원문 冬十一月 , 晉侯 使 荀庚 來聘 , 且尋盟 . 衛侯 使 孫良夫 來聘 , 且尋盟 . 公問諸 臧宣叔 曰 : “ 中行伯 之於 晉 也 , 其位在三 , 孫子 之於 衛 也 , 位爲上卿 , 將誰先 ? ” 對曰 : “ 次國之上卿 , 當大國之中 , 中當其下 , 下當其上大夫 . 小國之上卿 , 當大國之下卿 , 中當其上大夫 , 下當其下大夫 . 上下如是 , 古之制也 . 衛 在 晉 , 不得爲次國 . 晉 爲盟主 , 其將先之 . ” 丙午 , 盟 晉 ; 丁未 , 盟 衛 , 禮也 . 관련 주석 ▣ 冬十一月 , 晉侯 使 荀庚 來聘 , 且尋盟 : 순경 庚 은 순림보의 아들이다 . 심맹이란 성공 원년 적극의 맹약을 더욱 두텁게 한 것이다 . ▣ 衛侯 使 孫良夫 來聘 , 且尋盟 : 선공 7 년의 맹약을 두텁게 한 것 . ▣ 公問諸 臧宣叔 曰 : “ 中行伯 之於 晉 也 , 其位在三 : 중항백은 순경이다 . 당시 진나라는 극극이 중군을 지휘하여 첫 번째 , 순수가 중군의 보좌로서 두 번째 , 그리고 순경이 상군을 지휘하여 세 번째이다 . 두예는 다음의 문답을 근거로 ...

장구여廧咎如 (춘추좌전.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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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극극과 위나라의 손량부가 장구여 廧咎如 를 정벌했다 . 그곳의 적적 赤狄 의 잔당을 토벌한 것이다 . ( ☞ 7.16.1. ) 장구여가 궤멸했는데 윗사람이 백성에게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 원문 晉 郤 克 · 衛孫良夫 伐 廧咎如 , 討 赤狄 之餘焉 . 廧咎如 潰 , 上失民也 . 관련 주석 ▣ 晉 郤 克 · 衛孫良夫 伐 廧咎如 : 장구여는 『좌전·희공 23 년』의 주석 참조 . 춘추좌전 지도 - 장구여 ▣ 討 赤狄 之餘焉 : 적적의 부락은 매우 많다 . 로씨 · 갑씨 · 류우 · 탁신의 무리 등인데 차례로 진나라에게 멸망되었다 . 장구여가 남았기 때문에 “적적의 남은 무리를 토벌했다”고 쓴 것이다 . 공영달의 『소』는 유현의 주장과 혜동의 『보주』를 인용하여 위처럼 해석했다 . 그러나 두예는 “진이 적적 로씨를 멸했는데 그 유민이 장구여로 숨어 들어갔기 때문에 토벌한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 . ▣ 廧咎如 潰 , 上失民也 : 두예는 “이는 『좌전』을 가지고 『춘추』를 해석한 것이다 . 『춘추』에는 ‘장구여가 궤멸되었다’는 언급이 없다 . 경문에는 ‘ 廧咎如 潰 ’의 네 글자가 누락되었다 . ”고 주장한다 . 『곡량』에도 이 네 글자는 없다 . 두예의 주석을 신뢰하기에는 미진하다 .

초 공왕과 지앵知罃 (춘추좌전.8.3.4)

진나라가 초의 공자곡신 公子穀臣 과 연윤 양로 襄老 의 시신을 초나라에 돌려주고 , 지앵 知罃 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 ( ☞ 8.2.6.) 당시 ( 지앵의 부친 ) 순수 荀首 가 중군의 보좌였기 때문에 초나라는 이를 수락했다 .  공왕이 지앵을 전송하며 말했다 . “아마 그대는 과인을 원망했겠지 ? ”  “두 나라가 싸움을 벌였고 신이 미련하여 임무를 다하지 못해 귀가 잘릴 신세가 되었습니다 . 집사께서 제 피로 흔고 釁鼓 치 않으시고 돌려보내 모국에서 처벌받게 하셨으니 군주의 은혜입니다 . 실로 신이 부족한 것인데 감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 ”  “그럼 , 과인이 은혜를 베푼 것인가 ? ”  “양국이 각자 사직을 생각하고 백성의 고통을 덜기 위해 각자 분노를 경계하고 서로 관용을 베풀기로 한 것입니다 . 쌍방이 포로를 석방하여 우호를 맺었습니다 . 신은 이번 우호에 관여한 바가 없는데 누구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겠습니까 ? ”  “그대가 돌아가면 내게 어떻게 보답하겠는가 ? ”  “신은 원한을 품지 않을 것이니 군주 역시 은혜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 원망도 은혜도 없으니 어찌 보답할 지 모르겠습니다 . ”  “설사 그렇더라도 어떻게 보답할 지 반드시 과인에게 고해야 할 것이다 . ”  “군주의 은혜로 포로였던 신이 진으로 돌아가 뼈를 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과군이 저를 죽이더라도 또한 이 은혜는 썩어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만약 과군이 군주가 베푼 은혜를 좇아 저를 사면하여 군주의 외신 外臣 ( 순 ) 수 首 에게 넘기고 , 수 首 가 과군께 청하여 가문의 사당에서 저를 죽이더라도 역시 군주의 은혜는 썩어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만약 부친이 과군의 허락을 얻지 못해 제가 종직 宗職 을 계승하고 단계를 밟아 정사에 종사하게 되면 저는 가병을 거느리고 우리 땅을 지킬 것입니다 . 설사 전장에서 집사와 조우하더라도 감히 피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할 것이며 두 마음을 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