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양공12년인 게시물 표시

억류된 정나라 사신들을 석방한 초나라 (춘추좌전.9.13.7.)

이미지
억류된 정나라 사신들을 석방한 초나라 정나라의 양소 良霄 와 태재 석착 石 㚟 은 여전히 초나라에 억류되어 있었다 . ( ☞ 9.11.5. )  석착이 자낭에게 말했다 . “선왕들은 정벌에 나설지 5 년에 걸쳐 점을 쳤습니다 . 매년 반복해서 상서로운지 점치고 상서로움이 반복되면 실행하고 , 그렇지 않으면 더욱 덕을 닦아 점괘의 결과를 고치려 했습니다 . 작금의 사태는 실로 초나라가 강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지 행인 行人 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 정나라의 경을 억류하여 그가 군주와 신하들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제거하고 , 저들이 더 돈독해지고 초나라를 미워하게 하여 진에 더 단단히 붙게 하면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 우리를 돌려보내 사신을 보냈던 의도를 무산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군주를 원망하고 대부들을 미워하게 하여 서로 견제하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 ” 초나라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 원문 (9.13.7.)  鄭 良霄 · 大宰 石 㚟 猶在 楚 . 石 㚟 言於 子囊 曰 : “ 先王卜征五年 , 而歲習其祥 , 祥習則行 . 不習 , 則增修德而改卜 . 今 楚 實不競 , 行人何罪 ? 止 鄭 一卿 , 以除其偪 , 使睦而疾 楚 , 以固於 晉 , 焉用之 ? 使歸而廢其使 , 怨其君以疾其大夫 , 而相牽引也 , 不猶愈乎 ? ” 楚 人歸之 . 주석 ▣ 鄭 良霄 · 大宰 石 㚟 猶在 楚 : 두 사람은 정나라를 위해 초나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억류되었었다 . 『좌전·양공 11 년』의 기사 참조 . ▣ 石 㚟 言於 子囊 曰 : “ 先王卜征五年 : 『주례·춘관·태복 太卜 』에서 8 가지 일은 반드시 거북점을 친다고 말한다 . 첫 번째가 정 征 인데 정중은 이 정을 군사 정벌로 해석했다 . 옳다 . 정현은 정행 즉 순수라고 해석했는데 틀리다 . 그런데 정벌하기 5 년 전부터 점을 친다는 말은 사리에 맞지 않은 듯하고 다른 문헌에서도 이런 말은 없다 . 심동의 『소소』 : “이는 과거 초 선왕 때의 고사이다 . 초나라가 정나라를 정벌하는 일이 이롭지 않은...

농번기를 피한 축성 (춘추좌전.9.13.6.)

이미지
축성의 적절한 시기 겨울 , 노나라가 방 防 ( 산동성 비현 費縣 동북쪽 ) 에 성을 쌓았다 . 『춘추』에 기록한 까닭은 시기가 적절했기 때문이다 . 이때 더 일찍 공사를 시작하려 했지만 장무중 臧武仲 이 농삿일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길 요청했으니 예에 맞다 . 원문 (9.13.6.)  冬 , 城 防 . 書事 , 時也 . 於是將早城 , 臧武仲 請俟畢農事 , 禮也 . 주석 ⊙ 冬 , 城 防 : 여기 방은 동방이다 . 『춘추·은공 9 년』의 주석을 참조 . 장공 29 년 그곳에 일찍이 성을 쌓았는데 이때 다시 쌓은 것이다 . 양공 17 년 제나라 군사가 장손을 이곳 방에서 포위하고 , 23 년에 장손이 주나라에서 방으로 가서 노나라의 후방을 구원했다 . 모두 본문의 방과 같은 곳이다 . ▣ 冬 , 城 防 . 書事 , 時也 . 於是將早城 , 臧武仲 請俟畢農事 , 禮也 : 필농사란 적절한 시기 ( 한 해 농삿일을 마치는 때 ) 를 말한다 . 법도에 맞다 .

초나라의 국상을 틈탄 오나라의 공격 (춘추좌전.9.13.5.)

이미지
초의 국상을 틈탄 오나라의 공격 오나라가 초나라를 침략했다 . 초의 양유기 養由基 가 명을 받아 전장으로 달려가고 , 자경 子庚 도 군사를 인솔하여 그 뒤를 따랐다 . 양숙 養叔 이 말했다 . “오나라가 우리 국상을 틈타 우리가 군사를 일으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필경 얕보고 대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 그대는 세 곳에 매복하여 나를 기다리라 . 적을 유인할 것이다 . ” 자경이 그의 말을 따랐다 . 용포 庸浦 ( 초나라 ) 에서 전투를 벌여 오나라 군사를 크게 무찌르고 공자당 公子黨 을 사로잡았다 . 군자는 오나라의 행동을 좋지 않게 봤다 . 『시』 ( 「소아·절남산」 ) 에 노래한다 . “하늘이 옳지 않게 여기시니 나라에 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 ” 원문 (9.13.5.)  吳 侵 楚 , 養由基 奔命 , 子庚 以師繼之 . 養叔 曰 : “ 吳 乘我喪 , 謂我不能師也 . 必易我而不戒 . 子爲三覆以待我 , 我請誘之 . ” 子庚 從之 . 戰于 庸浦 , 大敗 吳 師 , 獲 公子黨 .   君子以 吳 爲不弔 ,『 詩 』 曰 : “ 不弔昊天 , 亂靡有定 . ” 주석 ▣ 吳 侵 楚 , 養由基 奔命 , 子庚 以師繼之 : 분명 奔命 이란 급히 군을 행군하여 앞으로 달려 감이다 . ▣ 養叔 曰 : 양숙은 양유기이다 . ▣” 吳 乘我喪 , 謂我不能師也 : 오나라는 초 공왕이 죽은 틈을 타서 침략했다 . 즉 초나라가 군사를 정렬하여 저항하기 힘들 것이라고 여긴 것 . ▣ 必易我而不戒 : 이 易 는 경시하다 . 『설문』은 “탕 偒 ”으로 쓰고 “가볍게 여김 ( 輕 ) ”으로 풀었다 . 불계는 대비하고 경계하는 준비가 없었다 . ▣ 子爲三覆以待我 : 삼복은 복병을 세 군데 배치 . ▣ 我請誘之 . ” 子庚 從之 . 戰于 庸浦 : 두예 : “용포는 초나라 땅이다 . ” ▣ 大敗 吳 師 , 獲 公子黨 : 주석 없음 . ▣ 君子以 吳 爲不弔 : 조 弔 와 숙 淑 자는 고본에서 같은 글자 . 숙은 선 善 의 뜻이고 조 역시 선의 뜻이다 . ...

초나라 공왕의 시호 (춘추좌전.9.13.4.)

이미지
초나라 공왕의 시호  초 공왕이 병환에 들자 대부들에게 말하였다 . “내가 부덕한 채로 어려서 사직을 맡게 되었다 . 열 살의 나이에 선군을 잃고 태사와 태보의 가르침을 미처 다 익히기도 전에 군주의 자리에 오르니 이 때문에 부덕하여 언릉 ( 鄢 ) 에서 군사를 잃었다 . ( ☞ 8.16.5.) 사직을 욕보여 대부들에게 근심을 끼친 적이 너무 많았노라 . 만약 대부들의 덕에 선종하여 땅에 묻힌다면 이는 제사와 매장하는 일이고 , 선군의 뒤를 이어 예묘 禰廟 의 묘호를 짓는 일이니 , 청컨대 ‘영 靈 ’이나 ‘려 厲 ’ 중에서 대부들이 택해 주기를 원하노라 .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다섯 차례나 명을 내리자 겨우 수락했다 . 가을 , 초 공왕이 타계했다 . 자낭이 시호를 논의하자 대부들이 말하였다 . “군의 명이 있었습니다 . ” 자낭이 말했다 . “군주께서 ‘공 共 ’을 시호로 명하셨는데 어찌 이를 폐할 수 있겠소 ? 혁혁한 초나라에 군주로 임하여 만이를 위로하고 먼 남쪽까지 정벌하여 영토를 넓히셨고 여러 중원의 나라를 복속시켰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아셨으니 어찌 ‘ 공손하다 ’ 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소 ? ‘공’으로 시호를 정합시다 . ” 대부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 . 원문 (9.13.4.)  楚子 疾 , 告大夫曰 : “ 不穀不德 , 少主社稷 . 生十年而喪先君 , 未及習師保之 教 訓而應受多福 , 是以不德 , 而亡師于 鄢 ; 以辱社稷 , 爲大夫憂 , 其弘多矣 . 若以大夫之靈 , 獲保首領以歿於地 , 唯是春秋窀 穸 之事 · 所以從先君於禰廟者 , 請爲 「 靈 」 若 「 厲 」 . 大夫擇焉 . ” 莫對 . 及五命 , 乃許 . 秋 , 楚共王 卒 . 子囊 謀諡 . 大夫曰 : “ 君有命矣 . ” 子囊 曰 : “ 君命以 共 , 若之何 毀 之 ? 赫赫 楚國 , 而君臨之 , 撫有蠻夷 , 奄征南海 , 以屬諸夏 , 而知其過 , 可不謂共乎 ? 請謚之 「 共 」 . ” 大夫從之 . 주석 ⊙ 秋九月庚辰 : 경진일은 14 일이다 . ⊙ 楚子審 卒 : 두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