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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제나라의 중년仲年

본문 겨울 , 제나라의 중년 ( 희공의 아우 ) 이 우리나라로 와서 빙문했으니 부인 강씨를 위문한 것이다 . 2.3.7.   冬 , 齊仲年 來聘 , 致夫人也 . 해설 ▣ 冬 , 齊仲年 來聘 , 致夫人也 : 고대에 ( 공실의 ) 여인이 출가하면 다시 대부를 보내 예방한다 . 이를 소위 “겸손과 공경의 뜻을 담아 위문하여 깊은 정을 드러내게 하였다 ( 存謙敬 , 序殷勤 ) ”라는 것이다 . 노나라 입장에서 여식을 출가시킬 때는 치녀 致女 라고 한다 . 성공 9 년의 『춘추』와 『좌전』의 “계손행보 季孫行父 가 송나라로 공녀를 호송했다 ( 致女 ) ”라는 기사가 그 예다 . 타국의 입장에서 노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통칭 빙 聘 이라 한다 . 『좌전』에서 치부인 致夫人 이라고 해석한 이유이다 .

2.3.6. 문강文姜

본문 제 희공이 강씨를 환 讙 (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 노나라 ) 까지 전송했는데 예가 아니다 . 범례에 따르면 공녀가 출가할 때 , 대등한 나라로 출가하고 군주의 형제일 경우 상경이 호송하여 선군에게 예를 차린다 . 군주의 여식일 경우에는 하경이 수행한다 . 상대가 대국이면 비록 군주의 딸이라도 역시 상경이 수행한다 . 상대가 천자라면 모든 경이 수행하고 제후는 친히 호송하지 않는다 . 상대가 작은 나라이면 상대부가 호송한다 . 2.3.6.   齊侯 送 姜氏 于 讙(1) , 非禮也 . 凡公女 , 嫁于敵國 , 姊妹 , 則上卿送之 , 以禮於先君 ; 公子 , 則下卿送之 . 於大國 , 雖公子 , 亦上卿送之 . 於天子 , 則諸卿皆行 , 公不自送 . 於小國 , 則上大夫送之 . (1)   “우환 于 讙 ” 두 글자는 본래 없다 . 완원의 『교감기』는 “『석문』에서 ‘판본에 따라 姜氏 于 讙 으로 쓰기도 한다’ , 『수경주·문수편』에서 『좌전』을 인용할 때는 ‘ 齊侯 送 姜氏 于 下 讙 ’으로 쓰고 있다 . ’”고 설명한다 . 이것은 『춘추』의 경문 “ 齊侯 送 姜氏 于 讙 ”을 해석한 말이다 . 당연히 두 글자가 있어야 한다 . 양수경 楊守敬 이 소장한 육조 시대의 手記 『좌씨전』과 일본의 금택문고 본에서도 모두 이 두 글자가 있다 . 이에 근거하여 수정한다 . 해설 ▣ 齊侯 送 姜氏 于 讙 , 非禮也 : “우환 于 讙 ” 두 글자는 본래 없다 . 완원의 『교감기』 : “『석문』에서 ‘ 送 姜氏 于 讙 으로 쓴 본도 있다’ , 『수경주·문수편』에서 『좌전』을 인용할 때 ‘ 齊侯 送 姜氏 于 下 讙 ’으로 썼다 . ’”고 설명한다 . 이것은 『춘추』의 경문 “ 齊侯 送 姜氏 于 讙 ”을 해석한 말이다 . 당연히 두 글자가 있어야 한다 . 양수경 楊守敬 이 소장한 육조 시대 사람이 수기한 『좌씨전』과 일본의 금택문고본에도 모두 두 글자가 있다 . 이에 근거하여 수정한다 . 『사기·년표』 : “ 환공 3 년 휘가 부인을 맞이하러 ...

2.3.5. 공자휘公子翬

본문 가을 , 공자휘 公子翬 가 제나라로 가서 부인을 영접했다 . 선군의 우호를 경신했기 때문에 『춘추』는 “공자”라고 썼다 . 2.3.5.  秋 , 公子翬 如 齊 逆女 . 修先君之好 , 故曰 : “ 公子 ” . 해설   ▣ 秋 , 公子翬 如 齊 逆女 . 修先君之好 , 故曰 : “ 公子 ” : 『춘추』에서 휘에게 “공자”란 호칭을 붙인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 이전까지 예를 들면 은공 4 년과 10 년의 『춘추』경문에선 그저 이름인 “휘 翬 ”만 썼었다 .  ⊙ 구례에 따르면 천자를 제외하고 모두 혼인할 때 직접 부인을 영접 ( 親迎 ) 해야 한다 .  그러나 『춘추』에는 제후가 부인을 친영했다는 기록이 없다 .  아마도 제후의 친영은 국경 밖으로는 나서지 않았고 ,  국경 밖으로는 경이 대신 시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2.3.4. 기杞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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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환공이 성 郕 (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의 동북쪽 ) 에서 기 杞 무공과 회합했는데 기나라가 강화를 요청했다 . 2.3.4.  公會 杞侯 于 郕 , 杞 求成也 . 해설 ▣ 公會 杞侯 于 郕 , 杞 求成也 : 두예의 주석 : “환공 2 년 ( 조근 때의 불경을 이유로 ) 기나라를 쳤기 때문에 강화를 요청해온 것이다 . ”  ⊙   기 杞 와 기 紀 는  잘못 쓰기 쉽고 ,  성 郕 과 성 盛 은  통한다 .  두예는 별다른 주석이 없다 .  즉 여기의 “성 郕 ”을 은공  5 년에 나오는 “성 郕 ”과 같은 곳으로 본 것이다 .  범녕 范寧 의 『곡량』주석을 보면 ,  “성 郕 은 노나라 땅”이라고 하여 두예와 의견이 다르다 .  노나라 땅의 “성 郕 ”은 『좌전』에선 “성 成 ”으로  쓴다 .  그 옛성은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의  동북쪽이다 . 춘추좌전 지도 - 성郕

2.3.3. 서명胥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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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름 , 제 희공과 위 선공이 포 蒲 ( 하남성 장원현 長垣縣 . 위나라 땅 ) 에서 서명 胥命 했으니 결맹한 것은 아니었다 . 2.3.3.  夏 , 齊侯 · 衛侯 胥命于 蒲 , 不盟也 . 해설 ▣ 夏 , 齊侯 · 衛侯 胥命于 蒲 , 不盟也 : 불맹은 경문에서 “ 胥命 ” 이라고 쓴 까닭에 대한 소이를 해석한 것이다 .  ⊙   서명 胥命 이란  제후가 회합은 하되 구두로 약속하고 희생의 피를 마시는 삽혈 의식은 거행하지 않은 경우이다 .  『좌전·장공 20 년』 :  “봄 ,  미 弭 에서  서명했다 .  여름 ,  함께 왕성 王城 을  공격했다 . ” 구두로 약속한 후에도 함께 공격할 수 있다 .  『순자·대략편 大略篇 』 :  “실천이 부족한 사람은 말을 지나치게 하고 ,  신의가 부족한 사람은 말로만 성실한 체한다 .  그러므로 『춘추』에서 서명 胥命 을 좋게 여기고 ,  『시』는 빈번한 결맹을 비난하고 있는데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 . ” 『순자』의 의미에 근거해도 역시 서명은 역시 신뢰할만한 구두 약속으로 보고 ,  굳이 맹약을 필요로 하지 않은 것이다 .  『공양전』역시 “서명이란 무엇인가 ?  서로 약속한 것이다 ( 相命 ) 이다 .  왜 상명이라고 부르는가 ?  올바름에 가깝기 때문이다 .  여기서 근정 近正 이란 무엇인가 ?  고대에는 결맹하지 않고 구두 약속을 하고 물러갔다 . ” 포 蒲 는 위나라 땅으로 현재 하남성 장원현 長垣縣 의  동쪽이다 . 춘추좌전 지도 - 포 蒲

2.3.2. 영嬴 회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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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환공이 영 嬴 ( 산동성 래무현 萊蕪縣 ) 에서 제 희공과 회합하고 제나라와 성혼했다 . 2.3.2.   會于 嬴 , 成昏于 齊 也 . 해설 ▣ 會于 嬴 , 成昏于 齊 也 : 성혼 成昏 의 의미에 대해선 은공 7 년의 주석에 보인다 .  ⊙ 『춘추』에서 계절과 달을 모두 기록하면서도 “왕 王 ”을 쓰지 않은 사례는 모두  15 차례가 있고 ,  계절을 쓰고 ,  달을 기록하지 않은 상태에서 “왕”을 쓰지 않은 경우가 모두  100 여 건이 있다 .  기록 자체는 상세한 것도 있고 간략한 것도 있어서 어떤 특별한 례가 있는 것 같진 않다 .  자세한 내용은 모기령의 『춘추전』을 참조하라 .  작년 윤 12 월 초육일 신미일이 동지였다 .  그러므로 이해는 건축이다 .  영 嬴 의 옛성은 현재의 산동성 래무현 萊蕪縣  서북쪽이다 .  『일통지』에 근거하면 민간에선 성자현 城子縣 이라고  불렀다 . 춘추좌전 지도 - 영嬴

(B.C.709년) 2.3.1. 한만韓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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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환공 3 년 봄 , 곡옥 무공이 익 翼 ( 산서성 익성현 ) 을 정벌하여 형정 陘庭 ( 익성현 동남쪽 ) 에 군사를 주둔했다 . 한만 韓萬 이 무공의 전차를 몰았고 , 양홍 梁弘 이 거우였다 . 무공이 익후를 분습 汾隰 까지 뒤쫓았는데 익후의 전차의 좌우 말이 나뭇가지에 걸려 앞으로 나갈 수 없었고 야밤에 익후를 사로잡았고 난공숙도 함께 잡았다 . 2.3.1.  三年春 , 曲沃武公 伐 翼 , 次于 陘庭 . 韓萬 御戎 , 梁弘 爲右 . 逐 翼侯 于 汾隰 , 驂 絓而止 , 夜獲之 , 及 欒共叔 . 해설 ▣ 三年春 , 曲沃武公 伐 翼 , 次于 陘庭 : 『좌전·장공 3 년』 : “군사와 관련한 범례에 따르면 , 하루 숙영 ( 一宿 ) 을 사 舍 , 이틀 신 信 , 이를 넘어서면 차 次 라 한다 . ” 즉 본문의 차는 삼일 이상을 머무는 것을 말한다 . ▣ 韓萬 御戎 : 한 韓 은 본래 국명으로서 『죽서기년』에 근거하면 춘추 시대 이전인 진 문후 21 년에 멸망했다 . 『좌전·희공 24 년』의 “우 邘 나라·진 晉 나라 ·응 應 나라·한 韓 나라는 무왕의 아들들이 봉건받은 나라이다”라는 기사를 참조 . 본문의 한나라는 곧 옛 한나라이다 . 『한서·위표전담한왕신전 魏豹田儋韓王信傳 』과 『찬 贊 』의 주석을 보면 옛 한나라와 한궐 韓闕 은 선조가 같다고 말하지만 상고할 만한 것은 적은 것 같다 . 한만은 환숙의 아들이다 . 한의 지역을 봉건받아 대부가 되었다 . 즉 이 사람이 전국 시대 한나라의 시조이다 . 『국어·진어』 8 에 한선자가 숙향에게 “저의 시조 환숙이하 모든 조상들이 그대의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 其自桓叔以下 , 嘉吾子之賜 ) ”라고 사례한 말로써 입증할 수 있다 . 한 韓 은 현재의 산서성 하진현 河津縣 의 동쪽이다 .  어융 御戎 은 전차를 모는 사람이다 . 『주례·하관』에선 융복 戎僕 이라 고 부른다 . 춘추좌전 지도 - 한韓 ▣ 梁弘 爲 右 : 『좌전·희공 33 년』을 보면 , 진나라에도 양홍 梁弘 이 언급되었는데 두 사람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