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춘추시대인 게시물 표시

위나라의 손괴孫蒯 (춘추좌전.9.17.2.)

이미지
  위나라의 손괴 孫蒯 가 조수 曹隧 ( 조나라 땅 ) 에서 사냥을 하고 , 중구 重丘 ( 산동성 치평현 茌平縣 서남쪽 20 리 ) 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다가 물병을 깨뜨렸다 . 중구의 사람들이 성문을 닫고 그를 꾸짖었다 . “너는 군주를 내쫓고 네 아비는 악행을 자행했는데 이런 악행에 걱정도 않고 사냥은 웬 말이냐 ? ” ( ☞ 9.14.4.) 여름 , 위나라의 석매 石買 와 손괴가 조나라를 정벌하여 중구 땅을 탈취했다 . 조나라는 진나라에 이 일을 제소했다 .  원문 (9.17.2.)  衛孫蒯 田于 曹隧 , 飲 馬于 重丘 , 毀 其 瓶 . 重丘 人閉門而詢之 , 曰 : “ 親逐而君 , 爾父爲厲 . 是之不憂 , 而何以田爲 ? ” 夏 , 衛石買 · 孫蒯 伐 曹 , 取 重丘 . 曹 人愬于 晉 . 주석 ▣ 衛孫蒯 田于 曹隧 : 조수 曹隧 는 조나라 땅이다 . 두예 : “국경을 넘어 사냥을 했다 . 손괴 孫蒯 는 손림보의 아들이다 . ” ▣ 飲 馬于 重丘 : 중구는 옛 나라의 이름 . 『일주서·사기해』 : “적양 績陽 은 힘이 강력하여 사방을 정벌했다 . 중구 重丘 는 적양에게 미녀를 보냈다 . ” 『로사·국명기』 6 에서 『좌전』의 이 문구를 인용하여 그를 입증했는데 옳다 . 양리승의 『보석』에 설명이 있다 . 중구는 현 산동성 치평현 茌平縣 서남쪽으로 약 20 리 떨어진 곳 . ▣ 毀 其 瓶 : 『옥편』 : 병 瓶 은 물을 담는 그릇이다 . ▣ 重丘 人閉門而詢之 : 순 詢 은 꾸짖다 ( 詬 구 ) 와 같고 소리는 구 溝 이다 . 꾸짖다의 뜻 . ▣ 曰 : “ 親逐而君 : 이 而 는 너 . 손림보가 위 헌공을 축출한 것은 손괴가 조정에 들어가 헌공을 접견했었던 일과 관련이 있다 . 그래서 친축이라고 말했다 . 『좌전·양공 14 년』의 기사 참조 . 양수달 선생의 『좌전독』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 ▣ 爾父爲厲 : 려 厲 는 악행 . 홍량길의 『좌전고』에 설명이 자세하다 . ▣ 是之不憂 , 而何以田爲 ? ” : 주석...

투키디데스와 헤로도토스의 역사 서술 (중국이야기)

이미지
“ 아테네인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인과 아테네인 간의 전쟁의 역사에 대해 썼다 . 이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 이 전쟁이 크게 확대되고 , 또 과거에 일어난 그 어떤 전쟁보다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게 되리라 예측하고 곧 쓰기 시작했다 . (1.1.)”   『펠레폰네소스전쟁』 첫 문장이다 . 여기엔 저자가 누구인지 , 저술 동기는 무엇인지 숨김없이 드러난다 . 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기도 했던 그는 범 그리스 세계에 유례없는 영향을 미칠 사건으로 판단하고 즉시 자료 수집에 나서고 실시간으로 서술을 시작한다 .   펠로폰네소스 전쟁 『좌전』이 성립된 연대와 유사한 시기의 서양 역사서는 헤로도토스 ( 대략 기원전 484 년 – 425 년 ) 의 『역사』와 투키디데스 ( 대략 기원전 465 년 – 400 년 ) 의 『역사 ( 펠레폰네소스전쟁 ) 』가 있다 . 두 사람의 시대는 대체로 춘추 말기에서 전국 시대 초기에 해당한다 .   평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저서를 평가할 때 , 전자에 대해 확인할 수 없는 상고 시대의 전설과 믿기 어려운 황당한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기록한 데 반해 후자는 철저하게 사실과 증거에 근거한 엄밀한 기록이라는 면에서 투키디데스의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술 천병희 씨가 공들여 번역한 두 저자의 저서를 모두 읽어본 사람으로 이런 평가에는 쉽게 동의할 수는 없다 . 오히려 역사를 대하는 태도로서는 헤로도토스의 광범위한 지적인 호기심과 질문 그리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선호한다 . 그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의 해결을 위해 직접 범 그리스 ( 범 그리스는 발칸반도 아래에 위치한 협의의 그리스뿐만 아니라 지중해에 널려 있는 식민도시들을 포함한다 ), 소아시아 , 이집트 등을 답사하고 현지의 유력한 지식인들 예를 들면 이집트 신관들을 포함해 민간의 문화와 관습의 탐구를 위해 그 누구라도 서슴지 않고 인터뷰했으며 그들의 전언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함...

유하혜의 담판 (춘추좌전.5.26.3.)

여름 , 제 효공이 우리나라 북쪽 변방을 공격했고 위나라는 제나라를 공격했다 . 도 洮 의 맹약에 따른 일이다 .  희공이 전희 展喜 (유하혜)를시켜 제나라 진영에 음식을 보내며 , 그 전에 전금 展禽 에게 가서 조언을 받게 했다 . 효공이 국경을 넘기도 전에 전희가 찾아가 말했다 . “과군이 군주께서 친히 거동하여 폐읍까지 오시느라 욕보셨다는 소식을 듣고 , 하신을 보내 집사를 대접하게 하셨습니다 . ”  “노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가 ? ” 효공이 말했다.  “소인은 두려워하나 군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 ” 전금이 대답했다.  “곳간은 경쇠를 걸어 놓은 방처럼 텅텅 비어 있고 , 들판에 푸른 새싹도 보이지 않는데 무엇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가 ? ” 효공이 말했다. “선왕의 명을 믿고 있습니다 . 과거 주공과 태공은 왕실의 대들보로서 성왕을 좌우에서 보좌했습니다 . 성왕이 그 노고를 치하하고 두 분께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 ‘자손 대대로 서로 해치지 말라 ! ’ 그 맹세가 왕실의 맹부에 보관되어 있고 태사가 맹부를 주관했습니다 . 환공은 이를 근거로 제후들을 규합해 상호 간의 불화를 해소하려 노력했고 서로 부족한 것은 채워 주었으며 각 나라의 재해를 구제하였으니 이는 태공의 옛 직분을 밝게 드러낸 것입니다 . 이제 군주께서 즉위하여 제후들은 기대에 부풀어 말하고 있습니다 . ‘환공의 공적을 따르지 않겠는가 ! ’ 우리 역시 감히 성을 보수하거나 군사를 모으지 않았고 , ‘어찌 환공을 계승하여 9 년 만에 선왕의 명과 소임을 버리시겠는가 ? 그렇게 한다면 선군을 어찌 뵐 것인가 ? 군주께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 ’라고 말합니다 . 군자들은 이를 굳게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 ” 효공이 이 말을 듣고 회군하였다 . 원문 (5.26.3.) 夏 , 齊孝公 伐我北鄙 , 衛 人伐 齊 , 洮 之盟故也 . 公使 展喜 犒師 , 使受命于 展禽 . 齊侯 未入竟 , 展喜 從之 , 曰 : “ 寡君聞君親 舉 玉趾 , 將辱於...

초나라 성득신成得臣 (춘추좌전.5.23.3.)

이미지
가을 , 초나라의 성득신 成得臣 이 군사를 거느리고 진 陳 나라를 정벌했다 . 송나라를 추종한 죄를 토벌한 것이다 . 이어 ( 진 陳 의 ) 초 焦 ( 안휘성 박현 亳縣 ) 와 이 夷 ( 박현의 동남쪽 70 리 ) 를 빼앗고 , 돈 頓 ( 하남성 항성현 項城縣 서쪽 ) 에 성을 쌓은 후 돌아왔다 . 자문은 이를 득신의 공으로 여겨 영윤으로 삼았다 . 숙백 叔伯 이 자문에게 물었다 . “귀하는 이 나라를 어찌 하실 생각입니까 ? ”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요 . 큰 공적을 세웠는데 높은 지위로 보상하지 않으면 나라를 안정시킬 인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 ” 원문 秋 , 楚成得臣 帥師伐 陳 , 討其貳於 宋 也 . 遂取 焦 · 夷 , 城 頓 而還 . 子文 以爲之功 , 使爲 令尹 . 叔伯 曰 : “ 子若國何 ? ” 對曰 : “ 吾以靖國也 . 夫有大功而無貴仕 , 其人能靖者與有幾 ? ” 관련 주석 ▣ 秋 , 楚成得臣 帥師伐 陳 : 성득신 成得臣 의 자는 자옥 子玉 이다 . ▣ 討其貳於 宋 也 . 遂取 焦 · 夷 : 초 焦 와 이 夷 는 모두 진 陳 나라의 읍이다 . 초 焦 는 현재의 안휘성 박현 亳縣 이고 , 이 夷 는 박현의 동남쪽으로 70 리 떨어진 곳이다 . 두예는 “이 夷 는 성부 城父 라고도 한다”라고 설명하지만 실은 성부는 이의 한 읍일 뿐이다 . 상세한 설명은 『좌전·소공 9 년』의 주석을 참조하라 . 춘추좌전 지도 - 돈나라 ▣ 城 頓 而還 : 돈 頓 은 국명이다 . 희성이고 현재의 하남성 항성현 項城縣 의 서쪽에 남돈 南頓 의 옛성이 있다 . 고동고는 『대사표』에서 어떤 이의 주장을 인용하여 “돈국은 본래 현재의 현의 북쪽으로 30 리 떨어져 있었는데 , 돈의 군주 頓子 가 진나라의 압박을 피해 초나라로 도망쳤고 , 남쪽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남돈이라고 부른다 . ”고 주장하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 ▣ 子文 以爲之功 : “ 之 ”는 “ 其 ”의 용법으로 자옥 ( 성득신 ) 의 공으로 여겼다는 뜻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