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와 헤로도토스의 역사 서술 (중국이야기)



아테네인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인과 아테네인 간의 전쟁의 역사에 대해 썼다. 이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이 전쟁이 크게 확대되고, 또 과거에 일어난 그 어떤 전쟁보다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게 되리라 예측하고 곧 쓰기 시작했다. (1.1.)”


 

『펠레폰네소스전쟁』 첫 문장이다. 여기엔 저자가 누구인지, 저술 동기는 무엇인지 숨김없이 드러난다. 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기도 했던 그는 범 그리스 세계에 유례없는 영향을 미칠 사건으로 판단하고 즉시 자료 수집에 나서고 실시간으로 서술을 시작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좌전』이 성립된 연대와 유사한 시기의 서양 역사서는 헤로도토스(대략 기원전 484– 425)의 『역사』와 투키디데스(대략 기원전 465– 400)의 『역사(펠레폰네소스전쟁)』가 있다. 두 사람의 시대는 대체로 춘추 말기에서 전국 시대 초기에 해당한다.

 

평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저서를 평가할 때, 전자에 대해 확인할 수 없는 상고 시대의 전설과 믿기 어려운 황당한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기록한 데 반해 후자는 철저하게 사실과 증거에 근거한 엄밀한 기록이라는 면에서 투키디데스의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술



천병희 씨가 공들여 번역한 두 저자의 저서를 모두 읽어본 사람으로 이런 평가에는 쉽게 동의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역사를 대하는 태도로서는 헤로도토스의 광범위한 지적인 호기심과 질문 그리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의 해결을 위해 직접 범 그리스(범 그리스는 발칸반도 아래에 위치한 협의의 그리스뿐만 아니라 지중해에 널려 있는 식민도시들을 포함한다), 소아시아, 이집트 등을 답사하고 현지의 유력한 지식인들 예를 들면 이집트 신관들을 포함해 민간의 문화와 관습의 탐구를 위해 그 누구라도 서슴지 않고 인터뷰했으며 그들의 전언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함부로 삭제하지 않고, 들은 그대로 전하는 동시에 의혹이 있을 경우 빼놓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첨부하는 태도를 가졌다.

 

그가 묘사하는 아이귑토스(이집트)와 홍해, 아라비아 만의 충적평야에 대한 분석은 실제로 답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정확성을 보여준다. 아이귑토스, 아라비아, 리뷔아, 쉬리아 각지의 토양을 비교하여 설명한 후 아이귑토스는 수 만년에 걸쳐 네일로스 강(나일 강)의 충적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매우 정확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네일로스 강의 발원지를 규명하기 위해 직접 탐사에 나서 테바이와 엘레판티네 그리고 호수를 건너 도보로 40일 행군하고 다시 배를 타고 12일 후 메로에라는 전 아이티오피아 수도에 도착한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재차 행군해서 탈주자들의 나라에 도착했다. 비록 수원지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당시로선 실제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헤로도토스는 현지인을 인터뷰해서 얻은 정보를 기록하고 왜 나일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는지, 미풍이 없는지 자기 나름의, 현대인의 입장에선 다소 황당하지만, 의견을 제시한다. (『역사』제229-34 편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고양이 미이라 (이집트)

이집트의 문화와 관습을 기록한 부분에서는 할례 문화, 일상 생활에서의 남녀의 작업 구분, 그리고 이시스 축제를 직접 참관한 후 의식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과정과 절차를 밟는 지, 희생으로 사용된 소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기록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 기술의 정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2. 35-41을 참고)그가 묘사했던 이집트의 고양이 무덤 관습은 20세기에 들어 실제로 약 5만 마리 정도의 고양이 시체가 묻힌 대규모 무덤을 발굴하면서 진실로 확인되기도 했다. (2. 67)

 

스스로를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곧잘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믿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다’, ‘말도 안 된다’, ‘사실이 아닌 신화일 뿐이다’, ‘저런 건 기록의 대상이 아니다등의 깨인 인문학(?) 정신으로 상고 시대로부터의 소중한 전승을 무시하거나 삭제하곤 하는 실수를 범한다. 헤로도토스는 설사 자신의 비판적 견해가 필요한, 신뢰하기 어려운 인터뷰 상대의 진술이라도 버리지 않고 이를 충실하게 전해 후학들에게 전함에 소홀하지 않았던 열린 태도를 가진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투키디데스의 역사 서술



아테네 귀족 출신 투키디데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인 기원전 424년 트라케로 파견된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암피폴리스의 수비였는데 스파르타의 공격을 받아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도시는 함락된다. 이 때문에 추방된 그는 20여년 간 아테네 밖에서 거처하며 이 기간 중에 그의 역사를 저술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존의 여러 설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내가 끌어낸 결론을 믿고, …… 명백한 증거를 기초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자에게 오류는 없을 것이다. 연설도 발언된 말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연설은 될 수 있는 한 실제로 발언된 연설의 주요 요지에 가깝도록 애써, 연설자가 각각의 놓인 환경에 관해 매우 적절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도록 서술하였다. (투키디데스.1.21.) …… 과거의 사건이나 이와 비슷한 것은 인간의 통유성에 따라 장래에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유익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1.22.)”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가 스스로 진술한 자신의 『역사』 기술 방법이다. 객관적인 서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는 저술에 앞서 자신이 내린 결론을 가지고’, 아테네를 떠나 밖에서 전해 들은 소식을 토대로 그대로 기술한 것도 아니고, 또 들은 것을 서술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방법도 아니며, 확신에 찬 자신의 결론 속에서 연설자가 놓인 환경을 상상해서 그가 적절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각색해 서술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결론과 서술에 오류는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의 역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연설도 어디서 어디까지 사실이고 저자의 문학적 각색인지 실상은 알 수 없다.

 

투키디데스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서술을 엄격한 사실에 근거한 저술이라고 성급히 판단하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봤기 때문에 양자를 비교해 본 것일 뿐이다. 그의 책 첫머리를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좌씨의 서술


『좌전』의 서술 동기에 대해서는 다른 편에서 상세히 다룰 생각인 데 간략히 말하면, 첫번째 난제는 저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E.H. 카가 말했듯 어떤 역사서를 접할 때 독자가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할 일은 저자가 누구인가그리고 저자는 어떤 환경에 놓인 인물인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역사서를 대할 때 가장 기본적인 이 문제가 『춘추』와 『좌전』에선 현재 불가능하다. 춘추 시대를 기록한 가장 권위 있는 이 두 저서의 저자는 수천 년 동안 논란만 있을 뿐 결론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저자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좌전』의 서술 동기를 파악하는 문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열쇠 역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있을 수 있다. 비록 그리스의 역사가처럼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이 저서를 쓰고 있는지 글로 밝히진 않았지만 처음과 끝 그리고 좌씨가 이정표로 삼았던 『춘추』와 확연히 다른 저자의 관심사를 가지고 추측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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