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장악, 역법의 강요 (중국이야기)

시간의 통일


국제 표준시에 따르면 중국의 영토는 대략 다섯 개의 시간대에 걸쳐 있지만 중국은 베이징 표준시(GMT+8)로 통합하여 전국을 단일 표준시로 지정한다. 미국이 본토 내에서만 네 개의 시간대로 구분하여 달리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세계 표준시 - 중국은 하나의 시간을 준용한다

중국은 고대로부터 시간을 장악하는 일을 천자의 중요한 일로 삼고 있다. 고대 중국의 천자/왕이란 시간을 장악하는 자이다. 왕에 의해 장악된 특정한 시간의 흐름을 제후들에게 반포하고 그들은 나의 시간을 받아 그들의 나라에서도 준용하길 희망했다.희망했다라고 쓴 까닭은 원칙과 실상은 달랐기 때문이다. 『좌전』의 기록을 보면 천자의 희망과 달리 각 지역의 제후들은 그 나라가 위치한 지역의 농사에 적합한 시간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이 원칙과 달랐다 해서 그 원칙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왕으로서 시간을 장악하는 것이 고대 중국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元年春王正月.” 


『춘추』의 첫 문장이다. 시간 외에 다른 기록은 전혀 없다. 오직 시간만 존재한다. 사관은 말한다. 은공이 즉위한 첫번째 해이고, 봄이며, ‘즉 천자인 주나라 왕의 달력정월이라는 뜻이다. 사관은 특별히 기록할 만한 아무런 사건이 없더라도 계절의 첫 달은 반드시 여름 4’, ‘가을 7’, ‘겨울 10등을 적는다. 마치 기계처럼.

 

현재 발굴된 주나라 초기의 청동기 명문을 보면 일자를 기록할 때 반드시 간지의 순서로 기록된다. 예를 들면 「아방정」의 명문에는 “11월 정해일’, 「사수정」의 명문에는 “11월 계미일등으로 날자를 표기한다. 『춘추』 역시 반드시 년, 계절, , (간지)의 순으로 날자를 기록한다. 같은 문화권의 우리도 지금까지 2020116일의 순서로 표기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한번 굳어진 관습이란 우리의 생각보다 생명력이 길다. 그런데 시간의 장악에 있어서 이 표기법은 어떤 의미와 분기점을 이루게 된 것일까?  

 

하늘과 땅의 통함을 끊다(絶地天通)


 

주나라 이전 상나라 시대에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은 열흘을 단위로 하는 ’, 달의 기울고 참에 따른 ’, 60일의 순환주기를 가진 간지의 조합과 한 해를 의미하는 가 있었다. 11월의 초순, 중순, 하순의 유래도 이미 3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상나라 시대와 그리고 주나라 초기까지도 한 해를 의미하는 어휘로 이 아니라 를 채용하고 있었다. 문헌뿐 아니라 발굴된 주나라의 초기 청동기 명문에서도 이를 증명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상나라에서 은 시간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표기법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시대 시간을 표기하는 핵심 개념은 순과 간지였다. 이에 반해 은 시간을 기록하는 표지로서는 큰 기능을 하지 못했다. 데이비드 N 키틀리는 상나라에서 날짜를 기록하는 최고의 권위는 간지에 있었고 갑골에 삭망월이 기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시간의 기준으로서 달(삭망월)을 상나라 사람들이 무시했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통제할 수 없었던 일을 기록한 각사에선 해당 점복이 행해진 달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었다는 점에서 의 명시는 상나라의 점술인(정인)에게 뭔가 불확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먼 미래의 일을 기록할 때에 한정된다. 과 그 이상의 시간은 상나라의 왕으로서도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이 장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주나라가 시간의 흐름을 장악한 방법은 상나라에 없었던 어떤 새로운 도구를 도입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전대부터 사용된 간지, , 년을 활용했을 뿐이다. 주나라 사람들은 다만 인식의 전환을 시도했을 뿐이다. 하늘과 인간을 구분하고 양자 간의 교통을 끊어낸 것이다. 그 시대에 이미 지식인들은 인문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주나라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경험 상나라의 서쪽 지역 제후였을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왔던 경험을 통해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다시 주나라로 이렇게 반복되는 천명의 경질, 혁명은 왕이 아닌 자(지방 제후)들의 제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사는 하늘과의 교통이고 신령스러운 존재와의 교통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천명은 늘 경질될 수 있다는 관념의 씨앗을 뿌리는 것에 다름아니다. 상나라를 멸한 주나라의 통치자들은 천명이 경질될 수 있는 이 잠재적 씨앗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고 자신들의 혁명이 성공한 뒤 기존 제사 제도의 개혁을 추진하여 사다리를 걷어차버린 것이다.

 

서주의 영명한 정치인이며 사상가인 주공은 하늘은 특별히 친애하는 이가 없고’, ‘하늘은 마냥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존재이며 국가의 존속은 오로지 인간의 덕에 달려 있을 뿐이라고 빈번하게 역설한다. 하늘은 그저 경원할 대상일 뿐이다.

 

주공에게 하늘은 인간사를 주재하는 상나라 시대의 인격신이 아니다. 다만 경외하되 멀리할 대상일 뿐이다. 하늘에 기대지 않고 인간의 부단한 노력에 의지할 뿐이다. 만사를 주재하는 하늘에 대한 두려움, 상제에 대한 경외로 막혀 있던 시간의 흐름 역시 하늘이 아닌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흐름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하루, 한 달, 사계절, 한 해가 모두 인간, 인간의 수장인 천자의 손에 장악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장악할 수 있다는 환희는 생각 외로 벅찬 감동이었을 것이다. 이제 왕은 내가 정한 시간의 흐름으로 상대의 시간을 통제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나의 시간을 사용하는 한 너는 내 지배 아래에 있다. 조선 시대까지 중국이 자신의 달력을 사용할 것을 강제했던 그리고 독자적인 달력의 제작을 늘 감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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