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실大室 (춘추좌전.6.13.4.)

가을 7, 태실大室(주공의 사당)의 윗층의 천정이 무너졌다. 『춘추』에 기록한 까닭은 관리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원문

秋七月大室之屋壞, 不共也.


관련 주석

大室屋壞: “대”를 『공양』에선 “세”로 쓴다. 혜동의 『공양고의』: “『공양』에선 “대”를 모두 “세”로 쓴다. 예를 들면, 위나라 ‘대숙의’를 ‘세숙제’로, 송나라 ‘악대심’을 ‘악세심’으로 쓴 사례들이다.태실에 대해, 가규와 복건 그리고 두예는 “태묘실大廟室”이라고 말했는데 그 주장이 옳다. 태묘는 주공의 묘이다. 태실은 태묘의 중앙에 있는 실이다. 『상서·낙고』의 “왕이 태실로 들어가 어깨를 드러냈다(王入大室裸), 『좌전·소공13년』의 “옥을 태실의 뜰에 묻었다.” 그리고 『예기·월령』의 “천자가 태묘의 태실에 거처했다.” 등의 기사로서 입증할 수 있다. 『공양』과 『곡양』에서는 태실을 세실이라고 부르고, 노공 백금의 사당이라고 말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다. 태실은 2층으로 만드는데, 실 위에 실이 있고 고대에는 이를 중옥이라 불렀다. 본문의 “屋壞”는 2층에 있는 실이 무너진 것이지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곡부 주공묘

秋七月大室之屋壞, 不共也: 태실은 경문의 주석을 참조. 두예: “종묘를 허술하게 관리하여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 사실을 적어 신하들의 불경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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