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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銘文이란 무엇인가? (좌전.9.19.4.)

 명문이란 무엇인가 계무자 季武子 는 전쟁에서 획득한 병기들을 녹여 임종 林鐘 을 만들고 노나라의 무공을 종에 새겼다 .  장무중 臧武仲 이 계손에게 말했다 . “예가 아닙니다 . 무릇 명문 銘文 이란 천자는 아름다운 덕을 새기고 , 제후는 거동한 시기를 말하고 성취한 공적을 헤아리며 , 대부는 전공을 칭합니다 . 이제 전공을 칭하면 대부의 등급으로 낮추는 것이고 , 성취한 공적으로 말하면 이번 일은 남의 힘을 빌린 것입니다 . 거동의 시기로 말하자면 백성의 생업을 방해한 바가 많으니 어떤 명분으로 명문을 새길 것입니까 ? 또 명문은 대국이 소국을 정벌하고 획득한 전리품으로 이기 彝器 를 제작하고 공적을 새겨 자손에게 보여줌으로써 밝은 덕을 드러내고 상대의 무례를 징벌하는 것입니다 . 이번 일은 남의 힘을 빌어 우리의 위급을 구제한 일인데 이를 명문에 새겨 어찌할 것입니까 ? 소국이 대국에게서 요행을 얻어 획득한 것에 전공을 밝게 드러내 그들을 분노케 함은 망국의 길입니다 . ” ▣ 季武子 以所得於 齊 之兵作林鐘而銘 魯 功焉 : 임종 林鐘 은 「주어하」의 “경왕이 무역 無射 의 율 (11 번째 음계 ) 에 맞춰 종을 주조했으니 대림 大林 이다 . ”의 대림이다 . 종의 명문 ( 鐘銘 ) 은 항상 간략하게 임 林 으로 호칭한다 . 양수달 선생의 『적미거금문설·초공종발』에 상세하다 . ▣ 臧武仲 謂 季孫 曰 : “ 非禮也 . 夫銘 , 天子令德 : 영 令 은 동사로 쓰였다 . 영덕이란 명덕 銘德 , 즉 덕을 종에 새기다 . 장병린의 『좌전독』을 참고하라 . ▣ 諸侯言時計功 : 두예 : “거행한 일이 때에 맞고 행동에 공적이 있으면 새길 수 있다 . ” ▣ 大夫稱伐 : 『채옹집명론』 : “진 晉 의 위과가 진 秦 의 두회를 보씨에서 포로로 잡았다 . 그 공적을 경종에 새겼는데 소위 ‘ 대부칭벌 ’ 이라 부르는 일이다 . ” ▣ 今稱伐 , 則下等也 ; 計功 , 則借人也 : 두예 : “진나라의 힘을 빌렸기 때문이다 . ” ▣ 言時 , 則妨民多...

계무자季武子(춘추좌전.9.19.3.)

  계무자 季武子 가 진나라로 가서 출병에 감사를 표했고 , 진 평공은 그에게 향례를 베풀었다 . 범선자가 집정으로서 「서묘 黍苗 」 ( 『시·소아』 ) 를 노래했다 . 계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 “소국이 대국을 우러러봄은 마치 백곡이 단비를 고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 만약 늘 단비가 내린다면 천하가 모두 화목해지니 어찌 폐읍만 그 혜택을 입겠습니까 ? ” 그는 「유월」 ( 『시·소아』 ) 로 화답하였다 . 원문 (9.19.3.) 季武子 如 晉 拜師 , 晉侯 享之 . 范宣子 爲政 , 賦 「 黍苗 」 . 季武子 興 , 再拜稽首 , 曰 : “ 小國之仰大國也 , 如百穀之仰膏雨焉 . 若常膏之 , 其天下輯睦 , 豈唯敝邑 ? ” 賦 「 六月 」 .  주석 ▣ 季武子 如 晉 拜師 : 두예 : “제나라를 토벌한 일에 감사를 표했다 . ” 그리고 “곽수를 경계로 하여 주나라 땅을 떼어준 것”에 대해 사례했다고도 말한다 . ▣ 晉侯 享之 . 范宣子 爲政 : 중군의 보좌였지만 중군의 장수로 승진했다 . ▣ 賦 「 黍苗 」 : 『시·소아』의 편명이다 . 처음에 “무성한 기장의 싹 ( 芃芃 黍苗 ) 장맛비가 적셔 주네 . ”라는 두 구절이 있다 . ▣ 季武子 興 : 자리에서 일어나다 . ▣ 再拜稽首 , 曰 : “ 小國之仰大國也 , 如百穀之仰膏雨焉 . 若常膏之 : 고 膏 는 윤택하게 하다 . 고우 膏雨 의 고는 형용사인데 여기서는 동사로 쓰였다 . ▣ 其天下輯睦 : 기 其 는 將 의 뜻 . ▣ 豈唯敝邑 ? ” : 어찌 우리나라만 이 혜택을 받으리오까 ? ▣ 賦 「 六月 」 : 『시·소아』의 편명 . 윤길보가 주 선왕을 보좌하여 정벌에 나섰을 때의 시 . 진후를 윤길보에 비유했다 .

계무자季武子가 위나라를 예방하다 (춘추좌전.9.7.5.)

가을 , 계무자 季武子 가 위나라로 가서 자숙 子叔 의 빙문 ( ☞ 9.1.5.) 에 답례했고 , 또 답방이 늦어진 것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님을 해명했다 . 원문 (9.7.5.)  秋 , 季武子 如 衛 , 報 子叔 之聘 , 且辭緩報 , 非貳也 . 주석 ▣ 秋 , 季武子 如 衛 , 報 子叔 之聘 , 且辭緩報 , 非貳也 : 자숙의 예방은 양공 원년에 있었다 . 6 년 후에야 이에 대한 답방을 했고 아울러 그에 대한 사과와 죄송함의 뜻을 설명했다 . 사 辭 자는 『좌전·양공 5 년』의 “오나라가 계택의 회합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해명했다 ( 辭不會于 雞澤 之故 ) ”에서의 용법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