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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의 명으로 위나라를 공격한 정나라 (춘추좌전.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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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헌공이 송나라를 구원하여 양우 襄牛 ( 하남성 범현 范縣 . 위나라 ) 에 군을 주둔했다 . 정나라의 자전 子展 이 말했다 . “반드시 위나라를 정벌해야 합니다 . 그렇지 않으면 초나라와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이미 진나라에 죄를 얻었는데 다시 초에 죄를 얻는다면 장차 이 나라가 어찌 되겠습니까 ? ” 자사 子駟 가 말했다 . “나라가 피폐해질 것입니다 . ” 자전이 말했다 . “두 대국에 죄를 얻으면 필경 멸망할 터 , 망하는 것보다는 고생이 낫지 않습니까 ? ” 여러 대부들도 자전의 말을 옳게 여겼다 . 그래서 정나라의 황이 皇耳 가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쳤는데 이는 초나라의 명령이었다 . 위나라의 손문자 孫文子 ( 손림보 ) 가 정나라 군을 추격할 지 점을 치고 그 조짐을 헌공의 모친 정강 定姜 에게 바쳤다 . 강씨가 점사를 물었더니 손림보가 대답했다 . “ ‘ 조짐이 마치 산릉과 같으니 출정하면 우두머리를 잃게 될 것이다 .’ 입니다 . ” 강씨가 말했다 . “정벌을 한 자들이 우두머리를 잃는 것이니 외구를 수비하는 쪽은 이롭다 . 대부는 이를 고려하라 ! ” 위나라가 정나라 군사를 추격했고 , 손림보의 아들 손괴 孫蒯 가 황이를 견구 犬丘 ( 하남성 영성현 永城縣 의 서북쪽 ) 에서 사로잡았다 . 원문 (9.10.5.)  衛侯 救 宋 , 師于 襄牛 . 鄭子展 曰 : “ 必伐 衛 . 不然 , 是不與 楚 也 . 得罪於 晉 , 又得罪於 楚 , 國將若之何 ? ” 子駟 曰 : “ 國病矣 . ” 子展 曰 : “ 得罪於二大國 , 必亡 . 病 , 不猶愈於亡乎 ? ” 諸大夫皆以爲然 . 故 鄭皇耳 帥師侵 衛 , 楚 令也 . 孫文子 卜追之 , 獻兆於 定姜 . 姜氏 問繇 . 曰 : “ 兆如山陵 , 有夫出征 , 而喪其雄 . ” 姜氏 曰 : “ 征者喪雄 , 禦寇之利也 . 大夫圖之 ! ” 衛 人追之 , 孫蒯 獲 鄭皇耳 于 犬丘 . 주석 ▣ 衛侯 救 宋 , 師于 襄牛 : 양우 襄牛 는 위나라 땅이고 『좌전·희공 28 년』의 주석을 참조하라 . 춘추시대 지도....

위나라 손림보의 무례 (춘추좌전.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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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의 손문자 ( 손림보 ) 가 우리나라로 와서 빙문하고 , 계무자의 해명에 감사를 표했다 . ( ☞ 9.7.5.) 더불어 손환자가 맺었던 동맹을 더욱 돈독히 했다 . 양공이 대청의 계단을 오를 때 손림보도 나란히 계단을 올랐다 . 숙손목자 叔孫穆子 가 의전을 돕고 있다가 급히 달려와 말하였다 . “제후의 회합에서 과군이 위군의 뒤에 선 적이 없습니다 . 지금 귀하가 과군의 뒤를 따르지 않고 나란히 오르니 과군께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 잠시 발걸음을 멈추시지요 ! ” 손림보는 자신의 무례에 해명도 또 뉘우치는 낯빛도 없었다 .  목숙 穆叔 이 말한다 . “손자는 필경 망할 것이다 . 신하로서 군주처럼 행동하고 과실을 범하고도 개전의 빛이 없으니 망함의 근본이다 . 『시』 ( 『소남·고양』 ) 는 말한다 . ‘공궁에서 퇴조하여 식사하는 그 모습 차분하고 침착하네 . ’ 이는 순종을 말한 것이다 . 제멋대로 행동하고도 오히려 차분하니 필경 꺾여 부러질 것이다 . ” ( ☞ 9.26.2.) 원문 (9.7.7.)  衛孫文子 來聘 , 且拜 武子 之言 , 而尋 孫桓子 之盟 . 公登亦登 . 叔孫穆子 相 , 趨進 , 曰 : “ 諸侯之會 , 寡君未嘗後 衛君 . 今吾子不後寡君 , 寡君未知所過 . 吾子其少安 ! ” 孫子 無辭 , 亦無悛容 . 穆叔 曰 : “ 孫子 必亡 . 爲臣而君 , 過而不悛 , 亡之本也 . 『 詩 』 曰 : ‘ 退食自公 , 委蛇委蛇 ’, 謂從者也 . 衡而委蛇必折 . ” 주석 ▣ 衛孫文子 來聘 , 且拜 武子 之言 : 두예 : “노나라의 늦어진 보빙이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라는 말을 뜻한다 . ” ▣ 而尋 孫桓子 之盟 : 환자는 손량부로서 문자의 부친이다 . 그가 예방하여 맹약을 체결할 때는 성공 3 년의 일이다 . ▣ 公登亦登 : 『의례·빙례』에 따르면 , 빙국 ( 방문을 받은 ) 의 군주가 중정에 서서 귀빈에게 안으로 들어오라 청한다 . 귀빈은 들어와 세 차례 읍하고 계단의 앞에 선다 . 공궁의 계단은 7...

손림보의 귀국 (춘추좌전.8.14.1.)

성공 14 년 봄 , 위 정공이 진나라를 예방했고 여공은 그에게 손림보를 만날 것을 강권했다 . ( ☞ 8.7.6.) 정공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여름 , 위 정공이 귀국한 뒤에 진 여공은 극주를 시켜 손림보를 위나라까지 호송하고 정공에게 그를 접견하게 했다 . 정공은 거절하고 싶었다 .  부인 강씨가 말했다 . “불가합니다 . 손림보는 선군의 종경의 후계이고 , 대국이 요청하는데 허락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 비록 그가 밉더라도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 군주께선 인내하십시오 ! 백성을 안정시키고 종경을 용서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  정공은 손림보를 접견하고 그의 지위와 채읍을 회복했다 .  위 정공이 고성숙 苦成叔 ( 극주 ) 에게 연회를 베풀었고 영혜자 甯 惠子 가 의전을 도왔다 . 고성숙의 태도가 오만했다 . 영자가 말한다 . “고성숙의 가문은 멸족할 것이다 ! 예부터 향사 享食 를 거행할 때 그 사람의 위의를 보고 화복을 점쳤다 . 그래서 『시』 ( 『소아·상호 桑扈 』 ) 에 ‘구부정한 소뿔잔에 맛난 술 향기롭다 . 저 사람 교제에 교만하지 않으니 만복이 찾아든다 . ’라고 말하지 않는가 ! 이제 저 사람은 교만하니 화를 부르는 길이로다 . ” ( ☞ 8.17.10.) 원문 (8.14.1.)  十四年春 , 衛侯 如 晉 , 晉侯 強 見 孫林父 焉 . 定公 不可 . 夏 , 衛侯 旣歸 , 晉侯 使 郤犨 送 孫林父 而見之 . 衛侯 欲辭 . 定姜 曰 : “ 不可 . 是先君宗卿之嗣也 , 大國又以爲請 . 不許 , 將亡 . 雖惡之 , 不猶愈於亡乎 ? 君其忍之 ! 安民而宥宗卿 , 不亦可乎 ? ” 衛侯 見而復之 . 衛侯 饗 苦成叔 , 甯 惠子 相 . 苦成叔 傲 . 甯 子 曰 : “ 苦成叔 家 [1] 其亡乎 ! 古之爲享食也 , 以觀威儀 · 省禍福也 , 故 『 詩 』 曰 : ‘ 兕 觵 其 觩 , 旨酒思柔 . 彼交匪傲 , 萬福來求 . ’ 今夫子傲 , 取禍之道也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