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림보의 귀국 (춘추좌전.8.14.1.)


성공 14년 봄, 위 정공이 진나라를 예방했고 여공은 그에게 손림보를 만날 것을 강권했다. ( 8.7.6.) 정공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여름, 위 정공이 귀국한 뒤에 진 여공은 극주를 시켜 손림보를 위나라까지 호송하고 정공에게 그를 접견하게 했다. 정공은 거절하고 싶었다

부인 강씨가 말했다. “불가합니다. 손림보는 선군의 종경의 후계이고, 대국이 요청하는데 허락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그가 밉더라도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군주께선 인내하십시오! 백성을 안정시키고 종경을 용서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정공은 손림보를 접견하고 그의 지위와 채읍을 회복했다

위 정공이 고성숙苦成叔(극주)에게 연회를 베풀었고 영혜자惠子가 의전을 도왔다. 고성숙의 태도가 오만했다. 영자가 말한다. “고성숙의 가문은 멸족할 것이다! 예부터 향사享食를 거행할 때 그 사람의 위의를 보고 화복을 점쳤다. 그래서 『시』(『소아·상호桑扈)에 ‘구부정한 소뿔잔에 맛난 술 향기롭다. 저 사람 교제에 교만하지 않으니 만복이 찾아든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제 저 사람은 교만하니 화를 부르는 길이로다. ( 8.17.10.)


원문


(8.14.1.) 十四年春衛侯晉侯孫林父. 定公不可. 衛侯旣歸晉侯使郤犨孫林父而見之. 衛侯欲辭. 定姜: 不可. 是先君宗卿之嗣也大國又以爲請. 不許將亡. 雖惡之不猶愈於亡乎? 君其忍之! 安民而宥宗卿不亦可乎?衛侯見而復之.

衛侯苦成叔惠子. 苦成叔. : 苦成叔[1]其亡乎! 古之爲享食也以觀威儀·省禍福也: 旨酒思柔. 彼交匪傲萬福來求.今夫子傲, 取禍之道也.



(1) 각본에는 모두 “고성가”라고 쓰고 “숙”자가 없다. 『당석경』의 방주에 “숙”자가 있고 『예문유취36』과 『초학기14』에서 인용한 것에는 모두 “숙”자가 있다. 「노어상」의 “(苦成叔家欲任兩國)”을 보면, “고성숙가”는 당시 습관적인 호칭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금택문고본을 따라서 “숙”자를 더했다.


주석

衛孫林父歸于: 두예: “진나라가 힘을 써 그를 귀국시켰기 때문에 ‘귀’라고 썼다.

十四年春衛侯晉侯孫林父: 두예: “손림보는 성공 7년에 진나라로 망명했다. 그를 만날 것을 강권한 이유는 손림보를 귀국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위 정공과 손림보에게 서로 만날 것을 강권했다.

定公不可. 衛侯旣歸晉侯使郤犨孫林父而見之. 衛侯欲辭. 定姜: 두예는 “정강은 정공의 부인이다”라고 설명했다.

不可. 是先君宗卿之嗣也: 선군은 정공의 부친 목공을 말하고, 종경이란 손림보의 부친 손량부를 가리킨다. 선군종경은 한 단어로서 선군의 종경이란 뜻이다. 공영달의 『소』에서 『세본』을 인용하여 손씨는 위 무공의 후손이고 위나라 군주와는 동종이 된다. 손량부는 위나라의 집정대신이었기 때문에 “선군의 종경”이라고 썼다고 한다.

大國又以爲請. 不許將亡: 대국의 요청을 거절하면 정벌을 받아 망할 수 있음을 우려한 말.

雖惡之不猶愈於亡乎? 君其忍之! 安民而宥宗卿: 여기서 종경은 손림보를 말한다. 그는 일찍이 손량부의 뒤를 이어 위나라의 집정대신이었다.

不亦可乎?衛侯見而復之: 손림보의 지위와 채읍을 회복시켰다.

衛侯苦成叔: 향연의 향자는 『좌전』에서 모두 “향”으로 쓰는데 유독 여기서만 “향”자로 쓰고 있다. 이 정자이고 향은 가차자이다. 단옥재의 『설문해자주』에 상세하다

고성苦成은 진나라의 지명으로 현 산서성 운성현運城縣의 동북쪽 약 22리 떨어진 곳이다. 왕부의 『잠부론·지씨성』과 『통지·씨족략』3에 따르면, 고는 읍명이고 극주의 채읍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고씨는 곧 극씨라고 한다. 성은 극주의 시호이고 숙은 그의 자이다. 극주는 피살되긴 했지만 시호는 있다. 극지의 시호가 소자昭子(「노어8」에 보임)인 것과 같다. 두 가지 주장 중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 극주가 고성숙으로 불린 사례는 「노어상」과 「진어6」에도 나온다.

惠子: 영혜자惠子는 영식寗殖이다.

苦成叔. : 苦成叔家其亡乎!: 각본에는 모두 “고성가”라고 쓰고 “숙”자가 없다. 『당석경』의 방주에 “숙”자가 있고 『예문유취36』과 『초학기14』에서 인용한 것에는 모두 “숙”자가 있다. 「노어상」의 “(苦成叔家欲任兩國)”을 보면, “고성숙가”는 당시 습관적인 호칭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금택문고본을 따라서 “숙”자를 더했다.

古之爲享食也以觀威儀·省禍福也: : 의 음은 굉이다. 시굉은 고대에 코뿔소의 뿔로 제작한 술을 담는 그릇이다. 용량은 비교적 커서 벌주를 내릴 때도 이를 사용했다. 『좌전·소공원년』에선 시작兕爵으로 쓴다. 의 음은 규이다. “기구”는 짐승뿔의 모습이 굽어져 있는 모양.

旨酒思柔: 어중조사이고 뜻이 없다. 『사전』에 예들이 나열되어 있다.

彼交匪傲: 彼交匪傲”은 『좌전·양공27년』의 “彼交匪敖”와 같은데 오와 오는 고대에 통가한다. 장림의 『경의잡기』와 호승공의 『모시후전』에 그 설명이 상세하다. 교자는 교 가차로 생각된다. 『주송·사의絲衣』의兕觥其, 酒思柔. 不吳不敖, 胡考之休”를 보면, “굉”은 “굉”의 본자이고 두 글자는 통용된다. 不吳不敖”는 본문의 “彼交匪傲”와 뜻이 같다. 오는 스스로 높이 여김이고, 는 교만함의 뜻이다.

萬福來求.: 『소아·상호桑扈』의 시구이다. 는 취. 왕인지의 『시술문』에 자세하다. 래는 어중조사로 도치를 나타낸다. 만복래구는 온갖 복을 모음이다.

今夫子傲, 取禍之道也.: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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