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문자孫文子 (춘추좌전.8.14.5.)
위 정공이 병환에 들자 공성자孔成子와 영혜자甯惠子에게 경사敬姒의 아들 간衎을 태자로 옹립하게 했다.
겨울 10월, 위 정공이 타계했다. 부인 강씨가 곡을 마치고 휴식을 취할 때 태자가 애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음식과 물도 마시지 않고 탄식했다. “이 자가 위나라를 망칠 것인데, 필경 화는 미망인한테서 시작될 것이다. 오호! 하늘이 위나라에 재앙을 내리시는구나! 전鱄이 사직을 주재하게 했어야 했도다.” 대부들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손문자는 이때부터 자신의 보물을 국도에 두지 않고 모두 척戚읍에 두었고 진晉나라 대부들과 더욱 친밀하게 지냈다.
원문
(성공좌전.14.05.) 衛侯有疾,使孔成子·甯惠子立敬姒之子衎以爲大子. 冬十月,衛定公卒. 夫人姜氏旣哭而息,見大子之不哀也,不內酌飮,歎曰: “是夫也,將不唯衛國之敗,其必始於未亡人. 烏呼! 天禍衛國也夫! 吾不獲鱄也使主社稷.” 大夫聞之,無不聳懼. 孫文子自是不敢舍其重器於衛,盡寘諸戚,而甚善晉大夫.
주석
▣衛侯有疾,使孔成子·甯惠子立敬姒之子衎以爲大子: 공성자孔成子는 공달孔達의 아들 공증서孔烝鉏이다. 경사는 다음의 “부인 강씨”로 미루어보면 위 정공의 첩이다. 간衎의 음은 간看이다. 위 헌공이다.
▣冬十月,衛定公卒. 夫人姜氏旣哭而息,見大子之不哀也,不內酌飮: 내內는 납納, 작酌은 작勺과 같다. 작음은 곧 『좌전·정공4년』의 “勺飮不入口”에의 “작음”과 같다. 양수달 선생의 『독좌전』에 그 설명이 있다. 『예기·상대기』에 따르면, 사자의 빈소가 차려지면 부인, 며느리, 여러 첩들은 거친 음식疏食과 물을 마신다. 작음은 이 소식疏食과 수음水飮을 말한다.
▣歎曰: “是夫也,將不唯衛國之敗,其必始於未亡人: 고대 과부는 미망인이라고 자칭했다. 『좌전·장공28년』의 주석을 참조.
▣烏呼! 天禍衛國也夫! 吾不獲鱄也使主社稷.”: 전鱄의 음은 전專이다. 『좌전·양공14년』의 기사에 따르면, 전은 간의 친아우이다.
▣大夫聞之,無不聳懼: 용聳은 송悚을 가차했다. 『설문』은 “송은 두려워함이다(悚, 懼也).”라고 풀이한다.
▣孫文子自是不敢舍其重器於衛: 중기는 보배로운 기이다.
▣盡寘諸戚: 척戚은 본래 손씨의 채읍이었지만 손림보가 진나라로 망명했을 때, 진이 위나라에 그 땅을 돌려 주었었다. 손림보가 다시 돌아와 복권하자 위나라 군주가 그에게 돌려주었다.
▣而甚善晉大夫: 『좌전·양공14년』에 뒷일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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