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성공을 모함한 선백 (춘추좌전.8.16.6.)
노 성공을 모함한 선백
가을, (성공이 진 여공, 제 영공, 위 헌공, 송나라의 화원 그리고 주邾나라 군주와) 사수沙隨(하남성 영릉현寧陵縣의 북쪽)에서 회합하고 정나라의 정벌 문제를 논의했다.
선백이 사람을 보내 극주郤犨에게 말했다. “노후는 괴퇴壞隤(산동성 곡부현曲阜縣 부근)에서 머무르며 승패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극주는 신군의 장수이고 또 공족대부로서 동방 제후들의 업무를 주관했다. 그는 선백에게 뇌물을 받고 성공을 진 여공에게 참소했다. 진 여공은 성공을 접견하지 않았다.
원문
(8.16.6.) 秋,會干沙隨,謀伐鄭也. 宣伯使告郤犨曰: “魯侯待于壞隤,以待勝者.” 郤犨將新軍,且爲公族大夫,以主東諸侯. 取貨于宣伯,而訴公于晉侯. 晉侯不見公.
주석
⊙秋,公會晉侯·齊侯·衛侯·宋華元·邾人·于沙隨: 사수沙隨는 송나라 땅으로 고대에 사수국이 있었다. 현 하남성 영릉현寧陵縣의 북쪽이다.
⊙不見公: 주석 없음.
▣秋,會干沙隨,謀伐鄭也: 정나라는 아직 진나라에 복종하지 않았다.
▣宣伯使告郤犨曰: “魯侯待于壞隤,以待勝者.”: 두예: “진나라와 초나라간의 승부를 지켜보았다.” 노 성공을 모함한 것이다.
▣郤犨將新軍,且爲公族大夫,以主東諸侯: 제나라와 노나라 같은 동방의 제후들의 초대와 접대 등의 사무를 주관하였다.
▣取貨于宣伯,而訴公于晉侯: 소訴는 『논어·헌문편』의 “공백료가 계손씨에게 자로를 훼방놓았다(愬)”에서의 “소愬”와 같다.
▣晉侯不見公: 『공양전』은 “성공이 어리다는 이유였다”고 말한다. 양옥승의 『폐기』에선 이 당시 성공의 나이는 이미 30여 세로서 진 여공이 성공을 접견하지 않은 것은 참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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