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 환씨를 제거하다 (춘추좌전.8.15.4.)


가을 8, 송 공공의 장례를 치렀다

이때 화원華元이 우사右師, 어석魚石이 좌사左師, 탕택蕩澤이 사마司馬, 화희華喜가 사도司徒, 공손사公孫師가 사성司城, 상위인向爲人이 대사구大司寇, 린주鱗朱가 소사구少司寇, 상대向帶가 태재大宰, 어부魚府가 소재少宰였다

탕택이 공실을 약화시키려고 공자비公子肥를 죽였다. 화원이 말했다. “나는 우사로서 군신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사의 직분이다. 오늘날 공실이 비천해졌는데 이를 바로잡지 못했으므로 내 죄가 크다.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감히 총애를 입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진나라로 망명했다.

화원과 화희는 대족戴族(대공의 후예)이고, 사성 공손사는 장족莊族(장공의 후예)이며, 나머지 육관은 모두 환족桓族(환공의 후예)이었다

어석이 화원을 만류하려 했다. 어부가 말했다. “우사가 돌아오면 반드시 탕택의 죄를 다스릴 터인데 환씨가 멸족될 것입니다.” 어석이 말했다. “우사가 돌아오고 설사 우리가 탕택의 단죄를 허락해도 필경 섣불리 실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화원은 큰 공로가 많아 국인들이 그와 뜻을 함께 하므로 돌아오지 않으면 송나라에서 환씨의 제사가 끊어질까 걱정입니다. 우사가 탕택을 토벌해도 술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비록 환씨가 제거된다 해도 반드시 그 절반 정도일 것입니다.” 어석이 직접 황하까지 가서 화원을 만류했다. 화원이 탕택의 토벌을 요청하자 수락했고 이내 그는 돌아왔다. 화원은 화희와 공손사를 시켜 국인들을 인솔하여 탕씨를 공격하게 하고 자산子山(탕택)을 죽였다. 『춘추』에 “송나라가 그의 대부 산을 죽였다.”라고 쓴 것은 탕택이 그의 종족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어석, 상위인, 린주, 상대 그리고 어부가 도성을 떠나 수수睢水 가에 머물렀고 화원은 사람을 보내 그들이 떠나지 않게 만류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울 10, 화원이 몸소 가서 그들을 만류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내 되돌아섰다. 어부가 말했다. “지금 화원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다시는 국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사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이고 말이 급한 것을 보면 다른 뜻이 있다. 만약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요량이었다면 지금쯤 그의 수레는 빠르게 달리고 있을 것이다.” 모두 언덕에 올라 바라보니 화원의 수레가 매우 빨리 내달리고 있었다. 그들도 수레를 달려 쫓아 갔지만 병사들이 수수의 제방을 트고 갑문을 내린 후 성가퀴로 올라가 대비했다. 좌사와 두 명의 사구 그리고 두 명의 재는 결국 초나라로 망명했다. 화원은 상술向戌을 좌사로, 노좌老佐를 사마로, 그리고 악예樂裔를 사구로 삼아 국인들을 안정시켰다.



원문

(8.15.4.) 八月宋共公. 於是華元爲右師魚石爲左師蕩澤爲司馬華喜爲司徒公孫師爲司城向爲人爲大司寇鱗朱爲少司寇向帶爲大宰魚府爲少宰. 蕩澤弱公室公子肥. 華元: 我爲右師君臣之訓師所司也. 今公室卑, 而不能正吾罪大矣. 不能治官敢賴寵乎?乃出奔.
族也; 司城族也; 六官者皆族也. 魚石將止華元. 魚府: 右師反必討是無桓氏.魚石: 右師苟獲反雖許之討必不敢. 且多大功國人與之不反桓氏之無祀於. 右師討猶有. 桓氏雖亡必偏.魚石自止華元. 請討許之乃反. 使華喜·公孫師帥國人攻蕩氏子山. 書曰殺其[1]大夫”,言背其族也.
魚石·向爲人·鱗朱·向帶·魚府出舍於華元使止之不可. 冬十月華元自止之不可乃反. 魚府: 今不從不得入矣. 右師視速而言疾有異志焉. 若不我納今將馳矣.登丘而望之則馳. 騁而從之則決·閉門登陴矣. 左師·二司寇·二宰遂出奔. 華元使向戌爲左師老佐爲司馬樂裔爲司寇以靖國人.


(1) 완각본에는 “기”자가 누락되어 있다. 여기서는 금택문고본과 『교감기』를 따라 덧붙였다.



주석

秋八月庚辰: 경진일은 10일이다.

宋共公: 주석 없음.

秋八月宋共公. 於是華元爲右師魚石爲左師: 어석은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공자목이公子目夷 증손이다.

蕩澤爲司馬: 공영달의 『소』는 『세본』을 인용하여, “공손수公孫壽 대사마 훼 낳았고, 훼가 사마 택을 낳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예는 “탕택은 공손수의 손자”라고 설명했다. 그의 이름은 산이고 「송세가」에선 “당산唐山”이라고 쓰는데 “당”과 “탕”은 소리가 가까워 통가한다.

華喜爲司徒: 공영달의 『소』는 『세본』을 인용, “화보독이 세자가世子家 낳았고, 가가 계로季老 낳았으며 로가 사도 정 낳았다. 정은 사도 희를 낳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예는 “희는 화보독의 현손이다.”라고 말한다.

公孫師爲司城: 공영달의 『소』는 『세본』을 인용, “장공이 우사 무 낳고, 무가 사성 사를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두예는 “장공의 손자”라고 말한다.

向爲人爲大司寇鱗朱爲少司寇: 공영달의 『소』는 『세본』을 인용, “환공이 공자린公子鱗 낳고, 린이 동향관東鄕 관이 사도 문 낳았다. 문은 대사구 자주子奏 낳았고, 주는 소사구 주 낳았다.”고 한다. 두예는 린주를 “린환의 손자”라고 말하는데 『세본』과 부합하지 않는다.

向帶爲大宰魚府爲少宰. 蕩澤弱公室公子肥: 탕택이 공실을 약화시키려고 공자비를 죽였다. 「송세가」는 “태자비를 죽였다”고 쓴다. 아마 비는 공공의 태자로서 다음 군주의 자리에 올라야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 같다.

華元: 我爲右師君臣之訓師所司也. 今公室卑, 而不能正吾罪大矣. 不能治官: 관은 『맹자·공손추하』의 “관리로서의 직책(官守)”의 뜻이다. 불능치관이란 자신의 직분을 다하지 못함이다.

敢賴寵乎?: . 총애를 얻음을 이로움으로 삼다.

乃出奔: 「송세가」: “사마당산이 태자비를 공격하여 죽이고 화원을 죽이려 했지만 그는 진나라로 망명했다.

族也: 화원과 화희는 모두 송 대공의 후손이기 때문에 대족이라 한다. 족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종족이고 다른 하나는 씨족이다. 본문은 씨족의 뜻이다. 『좌전·희공7년』의 “설씨·공씨·자인씨 등 삼족”에서의 족과 같다. 심동의 『소소』에 설명이 자세하다.

司城族也; 六官者皆族也: 어석·탕택·상위인·린·상·어부는 모두 송 환공의 후예이다.


참고) 송나라 주요 공족


魚石將止華元: 화원의 망명을 저지하려고 했다.

魚府: 右師反必討是無桓氏.: 환씨와 환족은 같은 말이다. 화원이 탕택을 토벌하면 환씨에게까지 이를까 걱정한 것.

魚石: 右師苟獲反雖許之討必不敢. 且多大功: 두예는 화원이 선공 15년에 자반을 제거하여 송나라의 포위를 해결하고, 성공 12년에 진과 초 두 나라와 강화를 맺은 큰 공로를 세웠던 것이라고 한다. 화원은 문공 16년부터 우사로서 집정한 이후 30여 년이 흘렀으므로 어석이 말한 “큰 공로를 세웠다”는 말은 이뿐만이 아닐 수 있다. 『좌전』에 모두 기록하지 않았을뿐이다.

國人與之不反桓氏之無祀於: 화원을 돌아오지 못하게 하면 국인들이 들고 일어나 환족을 공격할까 두려워했다.

右師討猶有: 상술向戌이다. 공영달의 『소』는 『세본』을 인용, “환공이 상부혜向父盻 낳고, 혜는 사성 자수訾守 낳았으며, 수는 소사구 전 합좌사合左師 낳았다.”고 한다. 합좌사가 바로 상술이다. 상술 역시 환족이다. 어석은 화원이 설사 탕택을 토벌하여 그 화가 다른 환족에까지 이르러도 상술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 상술이 화원의 붕우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건이 마무리된 후 상술은 화원은 그를 좌사로 삼았다.

桓氏雖亡必偏.: 일부분이다.

魚石自止華元: 하는 황하이다.

請討: 화원이 탕택을 토벌하기를 청함이다.

許之: 어석이 동의한 것.

乃反: 이 문구에 따르면, 화원은 황하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온 것일 뿐이다. 그러나 『춘추』와 『좌전』에선 모두 “진나라로 망명했다”고 적었고, 『춘추』는 “진나라에서 송나라로 돌아왔다”고 적고 있어서 어떤 사람은 그의 동기와 정치적 후원에 입각해서 말을 한 것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화원이 비록 황하가에 가긴 했지만 이미 진나라의 국경으로 넘어섰기 때문에 “진나라로 망명했다”, “진나라에서 돌아왔다”고 쓴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떤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使華喜·公孫師帥國人攻蕩氏子山. 書曰殺其大夫: 완각본에는 “기”자가 누락되어 있다. 여기서는 금택문고본과 『교감기』를 따라 덧붙였다.

言背其族也: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탕씨는 본래 송나라의 공족인데도 스스로 공족을 약화시키고 위해를 가하려 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쓰고, 씨를 밝히지 않아 그의 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배기족”의 “족”은 “종족”의 뜻이 된다.

魚石·向爲人·鱗朱·向帶·魚府出舍於: 음은 수이다. 수수雎水 본래 낭탕거蒗蕩渠 지류의 나루터이지만 하남성 기현杞縣에서 수현睢縣 북쪽을 통과하여 다시 동쪽으로 녕릉과 상구시의 남쪽을 지난다. 다시 동쪽으로 하읍현의 북쪽을 지난 후에 동남쪽으로 흘러간다. 현재는 상류 수현 부근에 혜제하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가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물길이 없어졌다. 수상은 송나라 도읍에서 멀지 않은 수하가로 생각된다.


춘추지도. 수수雎水


華元使止之不可. 冬十月華元自止之不可乃反: 다섯 사람은 돌아가지 않으려 해서 화원 홀로 돌아갔다.

魚府: 今不從不得入矣: 지금 화원을 따르지 않으면 송나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

右師視速而言疾有異志焉: 금택문고본엔 “必有異志焉”으로 쓴다. 이 문구는 진심으로 만류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若不我納今將馳矣.登丘而望之則馳: 다섯 사람이 언덕에 올라 화원을 바라보니 그는 수레를 질풍처럼 몰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고, 다섯 사람이 귀국하는 것을 실제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聘而從之: 다섯 사람 역시 수레를 몰아 화원을 뒤쫒았다.

則決·閉門登陴矣: 수서睢澨 수수의 제방이다. 화원은 사람을 시켜 제방의 문을 열게 하고 물을 이용해 상대방을 저지했다. 폐문등비는 다섯 사람이 무력으로 공격해 오는 것을 방어한 것.

左師·二司寇·二宰遂出奔: 망명자는 다섯인데 경문에선 어석만을 썼다.

華元使向戌爲左師老佐爲司馬: 두예: “노좌는 대공의 오세손이다.

樂裔爲司寇以靖國人: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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