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성공11년인 게시물 표시

영호令狐 결맹 (춘추좌전.8.11.9.)

이미지
진 秦 과 진 晉 이 화친을 맺기 위해 영호 令狐 ( 산서성 임의현 臨猗縣 의 서쪽 ) 에서 회합하기로 했다 . 진 晉 여공이 먼저 영호에 도착했지만 진 환공은 황하를 건너길 주저해 황하 서편의 왕성 王城 ( 섬서성 대려현 大 荔縣 동쪽 ) 에 머문 채 , 대부 사과 史顆 를 보내 황하의 동쪽에서 여공과 결맹하게 했고 , 진의 극주 郤犨 가 황하의 서편으로 건너와 환공과 결맹했다 .  범문자 范文子 ( 사섭 ) 가 말한다 . “이 결맹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재계하고 결맹하는 것은 신뢰를 보증하는 행위이고 , 약속한 장소에서 회합하는 것은 신뢰의 첫걸음이다 . 시작부터 약속을 따르지 않는데 신뢰를 보증할 수 있겠는가 ? ” 진 환공은 그 길로 귀국하여 진과의 화의를 배신했다 . 원문 秦 · 晉 爲成 , 將會于 令狐 . 晉侯 先至焉 . 秦伯 不肯涉 河 , 次于 王城 , 使 史顆 盟 晉侯 于 河 東 . 晉 郤犨 盟 秦伯 于 河 西 . 范文子 曰 : “ 是盟也何益 ? 齊盟 , 所以質信也 . 會所 , 信之始也 . 始之不從 , 其可 [1] 質乎 ? ” 秦伯 歸而背 晉 成 . (1)   “가 可 ”는 완원의 각본에는 “하 何 ”로 쓰여 있다 . 하지만 『당석경』과 금택문고본 그리고 송본 등에선 모두 “ 可 ”로 쓴다 . 여기서 이를 따른다 . 주석 ▣ 秦 · 晉 爲成 , 將會于 令狐 : 영호 令狐 는 『좌전·희공 24 년』의 주석 참조 . 중국 호구폭포 춘추지도. 영호 令狐 ▣ 晉侯 先至焉 . 秦伯 不肯涉 河 , 次于 王城 : 왕성은 『좌전·희공 15 년』의 주석 참조 . ▣ 使 史顆 盟 晉侯 于 河 東 : 사과 史顆 는 진 대부 . 영호는 황하의 동쪽에 있다 . ▣ 晉 郤犨 盟 秦伯 于 河 西 : 왕성은 황하의 서쪽이다 . ▣ 范文子 曰 : 범문자는 사섭이다 . ▣ “ 是盟也何益 ? 齊盟 , 所以質信也 : “제 齊 ”는 “재계함 齋 ( 재 ) ”와 같다 . 『저초문』에 “과거 우리 선군 목공과 초 성왕이 양방의 마음을 하...

송나라 화원華元, 진초 우호 추진 (춘추좌전.8.11.8.)

송의 화원 華元 은 초 영윤 자중과 사이가 좋았고 , 또 진의 난무자 欒武子 ( 난서 ) 와도 친밀했다 . 화원은 초나라가 진의 사신 적패 糴 茷 의 화친 제안을 허락했고 , 그로 하여금 돌아가 이 사실을 복명하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겨울 , 화원이 초나라를 예방하고 이어 진나라를 예방하여 진과 초의 우호를 추진했다 . 원문 (성공11년 여덟번째 기사) 宋華元 善於令尹 子重 , 又善於 欒武子 , 聞 楚 人旣許 晉糴 茷 成 , 而使歸復命矣 . 冬 , 華元 如 楚 , 遂如 晉 , 合 晉 · 楚 之成 . 주석 ▣ 宋華元 善於令尹 子重 , 又善於 欒武子 : 진의 난서이다 . ▣ 聞 楚 人旣許 晉糴 茷 成 : 진의 적패가 초나라에 우호를 위해 떠난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 ▣ 而使歸復命矣 . 冬 , 華元 如 楚 , 遂如 晉 , 合 晉 · 楚 之成 : 다음 해 『좌전』의 기사를 참고 . 참고) 좌전.8.9.9. - 남관을 쓴 초나라 포로  종의 鍾儀

극지郤至의 토지 소유권 분쟁(춘추좌전.8.11.7)

이미지
진의 극지 郤 至 와 주나라가 후전 鄇 田 ( 후 鄇 는 온 溫 의 별읍 . 현 하남성 무척현 武陟縣 의 서남쪽 ) 의 소유권을 놓고 다퉜다 .  간왕이 유강공 劉康公 과 선양공 襄公 에게 명하여 진나라에 소를 제기했다 .  극지가 말했다 . “온 溫 은 저의 옛 땅이므로 그곳을 잃을 수 없습니다 . ”  유자와 선자가 반박했다 . “과거 주나라가 상나라를 물리친 후 제후들에게 봉지를 점유케 했습니다 . 소분생 蘇忿生 이 온 溫 땅을 받아 왕실의 사구 司寇 가 되었고 , 단백달 檀伯達 과 함께 황하 근처의 땅을 받은 것입니다 . 소씨가 적 狄 에게 붙었지만 거기서도 신임을 얻지 못하자 위나라로 도망쳤습니다 . 양왕께서 문공의 공적을 치하하고 그에게 온을 하사했고 , 귀국의 호씨 ( 호주 ) 와 양씨 ( 양처보 ) 가 처음으로 그 땅에 거처한 후로 귀하까지 이르렀습니다 . 옛 일로 논하자면 왕의 관료의 땅인데 어찌 그대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단 말입니까 ? ”  진 여공은 극지에게 다투지 말라고 타일렀다 . 원문 (성공11년 일곱번째 기사)  晉 郤 至 與 周 爭 鄇 田 , 王命 劉康公 · 單襄公 訟諸 晉 . 郤 至 曰 : “ 溫 , 吾故也 , 故不敢失 . ” 劉子 · 單子 曰 : “ 昔 周 克 商 , 使諸侯撫封 , 蘇忿生 以 溫 爲 司寇 , 與 檀伯達 封于 河 . 蘇氏 卽 狄 , 又不能於 狄 而奔 衛 . 襄王 勞 文公 而賜之 溫 , 狐氏 · 陽氏 先處之 , 而後及子 . 若治其故 , 則王官之邑也 , 子安得之 ? ” 晉侯 使 郤 至 勿敢爭 . 주석 ▣ 晉 郤 至 與 周 爭 鄇 田 : 후 鄇 는 온 溫 의 별읍 . 현 하남성 무척현 武陟縣 의 서남쪽 . 춘추지도. 후 鄇/ 온 溫 ▣ 王命 劉康公 · 單襄公 訟諸晉 . 郤 至 曰 : “ 溫 , 吾故也 , 故不敢失 . ” : 온은 극지의 채읍이다 . 그래서 성공 16 년과 17 년의 『좌전』에 그를 온계 溫季 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 극지는 온읍이 본래 극씨의 소...

숙손교여(춘추좌전.8.11.6)

가을 , 선백 宣伯 ( 숙손교여 ) 이 제나라를 예방하여 , 이전의 우호를 거듭 확인했다 . 원문 秋 , 宣伯 聘于 齊 , 以修前好 . 주석 ▣ 秋 , 宣伯 聘于 齊 , 以修前好 : 두예 : “안의 전쟁 이전의 우호를 말한다 . ”

주공초周公楚 (춘추좌전.8.11.5.)

이미지
주공초 周公楚 는 혜왕과 양왕의 일족들의 핍박을 싫어했고 또 백여 伯輿 와 정권을 다투다 이기지 못하자 분노하여 주나라를 떠났다 . 양번 陽樊( 하남성 제원현 濟原縣 의   동남쪽 약 20 리 고양성 古陽城 ) 까지 갔을 때 , 간왕이 유자 劉子 를 보내 그를 돌아오게 하니 , 견 鄄 에서 유자와 맹세를 한 후 들어왔다 .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경사를 떠나 진나라로 떠났다 . 원문 (성공11년 다섯번째 기사)  周公楚 惡 惠 · 襄 之偪也 , 且與 伯輿(1) 爭政 , 不勝 , 怒而出 . 及 陽樊 , 王使 劉子 復之 , 盟于 鄄 而入 . 三日復出 , 奔 晉 . (1)   : “ 伯輿 ”는 어떤 본에서는 “백여 伯與 ”로 쓰는데 『석문』에 근거하여 정정했다 . 주석 ▣ 周公楚 惡 惠 · 襄 之偪也 : 『좌전·희공 30 년』에 주공열 周公閱 이 보이는데 , 주공초는 그의 후손이다 . 고동고의 『대사표』는 열의 증손이라고 주장하는데 큰 오류이다 . 혜와 양은 주 혜왕과 주 양왕의 후예들을 가리킨다 . ▣ 且與 伯輿 爭政 : “ 伯輿 ”는 어떤 본에서는 “백여 伯與 ”로 쓰는데 『석문』에 근거하여 정정했다 . 『좌전·양공 10 년』에 보면 주 왕실에 백여가 나오는데 이 두 사람간 약 18 년의 차이이므로 동일인일 수도 있다 . 춘추지도. 양번(번) ▣ 不勝 , 怒而出 . 及 陽樊 : 양번은 곧 『좌전·은공 11 년』의 번 樊 이고 , 『좌전·희공 25 년』에도 언급된다 . 상세한 내용은 은공의 주석을 참조 . ( 하남성 제원현 濟原縣 의   동남쪽 약 20 리 고양성 古陽城 )  이 당시에는 이미 진나라의 땅이 되었다 . ▣ 王使 劉子 復之 , 盟于 鄄 而入 : 견 鄄 은 주나라의 읍으로 소재지는 상세하지 않다 . ▣ 三日復出 , 奔 晉 : 주석 없음 .

계문자 (춘추좌전.8.11.4.)

이미지
여름 , 계문자 ( 계손행보 ) 가 진나라로 가서 극주의 빙문에 답례하고 , 또 결맹에 참석했다 . 원문 (성공 11년 네번째 기사)  夏 , 季文子 如 晉 報聘 , 且涖盟也 . 주석 ▣ 夏 , 季文子 如 晉 報聘 , 且涖盟也 : 주석 없음 .

시효숙施孝叔, 짐승도 짝을 잃지 않는 법 (춘추좌전.8.11.3.)

이미지
성백 聲伯 ( 공손영제 ) 의 모친은 빙례를 치르지 않은 채로 숙힐과 살았기 때문에 ( 선공의 부인 ) 목강은 “나는 첩을 동서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 그녀가 성백을 낳자 목강이 쫓아냈다 . 그녀는 제나라의 관우해 管于奚 에게 재가했고 , 두 아이를 낳은 후 과부가 되자 아이들을 데리고 성백에게 돌아왔다 . 성백은 배다른 아우 ( 外弟 ) 는 대부로 삼고 , 외매 外妹 는 시효숙 施孝叔 에게 시집보냈다 .  진나라의 극주가 노나라를 예방했을 때 성백에게 부인으로 삼을 여인을 청하자 , 성백은 시씨에게서 여동생을 빼앗아 극주에게 시집보냈다 . 그녀가 시씨에게 말했다 . “짐승도 자기 짝을 잃지 않는 법인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 ” “그대를 지키려다 죽고 싶지 않소 . ” 부인은 그 길로 극주를 따라갔고 극씨한테서 두 아들을 낳았다 .  극씨가 멸족된 후 진나라는 부인과 아이들을 시씨에게 돌려보냈다 . ( ☞ 8.17.10.) 시씨가 황하 가에서 그들을 맞이할 때 아이들은 물에 빠뜨려 죽였다 . 부인이 분노했다 . “자신의 짝을 보호하지 못하고 떠나보내더니 이젠 홀로 된 남의 아이들조차 자애롭게 대하지 않고 죽였으니 어찌 끝이 좋을 수 있겠소 ? ” 이어 시씨를 두고 저주했다 . 원문 (성공 11년 세번째 기사)  聲伯 之母不聘 , 穆姜 曰 : “ 吾不以妾爲姒 . ” 生 聲伯 而出之 , 嫁於 齊管于奚 , 生二子而寡 , 以歸 聲伯 . 聲伯 以其外弟爲大夫 , 而嫁其外妹於 施孝叔 . 郤犨 來聘 , 求婦於 聲伯 . 聲伯 奪 施氏 婦以與之 . 婦人曰 : “ 鳥獸猶不失儷 , 子將若何 ? ” 曰 : “ 吾不能死亡 . ” 婦人遂行 . 生二子於 郤 氏 . 郤 氏 亡 , 晉 人歸之 施氏 . 施氏 逆諸 河 , 沈其二子 . 婦人怒曰 : “ 己不能庇其伉儷而亡之 , 又不能字人之孤而殺之 , 將何以終 ? ” 遂誓 施氏 . 주석 ▣ 聲伯 之母不聘 : 성백은 공손영제이다 . 『춘추·성공 2 년』의 주석 참고 . 불빙은 매빙 媒聘 의 예를 거행하지 않음이...

극주郤犨 (춘추좌전.8.11.2.)

이미지
극주 郤犨 가 우리나라로 와서 빙문하고 , 또 결맹에 참석했다 . 원문 (성공 11년 두번째 기사)  郤犨 來聘 , 且涖盟 . 주석 ⊙ 晉侯 使 郤犨 來聘 , 己丑 : 기축일은 24 일이다 . ⊙ 及 郤犨 盟 : “극주 郤犨 ”를 『공양』에선 모두 “극주 郤州 ”라고 쓰는데 , 공영달의 『소』에서 인용한 『세본』과 부합한다 . 두 글자는 음이 가까워 통할 수 있다 . 『예기·악기』에서 인용한 『세본』의 “무중주 武仲州 ”는 곧 『좌전』의 “위주 魏 犨 ” 혹은 “위무자 魏武子 ”이다 . ▣ 郤犨 來聘 : 공영달의 『소』에서 인용한 『세본』에 따르면 극주와 극극은 모두 극표 郤豹 의 증손자이다 . 두 사람은 종조형제간이다 . ▣ 且涖盟 : 앞의 『좌전』에서 노 성공이 맹세를 받아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에 진나라는 극주를 보내어 노나라와 결맹한 것이다 .

노 성공의 귀국 (춘추좌전.8.11.1.)

이미지
성공 11 년 봄 왕력 3 월 , 성공이 진나라에서 돌아와 음지를 거행했다 . 진나라는 성공이 초나라를 추종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억류했었다 . 성공이 결맹의 수용을 요청하자 돌려보냈다 . 원문(성공 11년 첫번째 기사)  十一年春王三月 , 公至自 晉 . 晉 人以公爲貳於 楚 , 故止公 . 公請受盟 , 而後使歸 . 주석 ▣ 十一年春王三月 , 公至自 晉 . 晉 人以公爲貳於 楚 : 『좌전·성공 4 년』의 기사에 따르면 , 노 성공은 전에 초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진나라를 배신하려고 했었다 . 혹 이 때문에 의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 故止公 . 公請受盟 , 而後使歸 : 노 성공은 지난해 7 월에 진나라에 가서 현재까지 약 9 개월을 머물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