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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堵狗의 처 (춘추좌전.9.15.9.)

  12 월 , 정나라 사람이 ( 주살한 도여보의 일족 ) 도구 堵狗 의 처를 빼앗아 범씨 范氏 에게 돌려보냈다 . 원문 (9.15.9.)  十二月 , 鄭 人奪 堵狗 之妻 , 而歸諸 范氏 . 주석 ▣ 十二月 , 鄭 人奪 堵狗 之妻 , 而歸諸 范氏 : 두예 : “도구 堵狗 는 도여보의 일족이다 . 도구는 진나라 범씨한테서 부인을 얻었다 . 정나라는 여보를 죽인 후 도구가 범씨를 믿고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그녀를 다시 범씨에게 돌려보냈다 . 먼저 관계를 끊은 것이다 . ” ( ☞  9.10.9.)

각자의 보배를 잃지 않다 (춘추좌전.9.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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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보배, 송나라의 자한 어떤 송나라 사람이 옥을 얻어 자한에게 바쳤다 . 자한은 옥을 받지 않았다 .  옥을 바친 이가 말했다 . “옥인에게 보였더니 보배라 하기에 바치는 것입니다 . ” 자한이 말했다 . “나는 탐욕을 부리지 않음을 보배로 생각하고 너는 옥을 보배로 여긴다 . 만약 이 옥을 내게 준다면 두 사람 모두 보배를 잃게 되니 각자의 보배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 ” 그가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 “소인이 옥을 지닌 채 이 곳을 벗어날 수 없으니 옥을 바쳐 목숨을 구하고자 합니다 . ” 자한은 그를 자신의 읍으로 보내는 한편 , 옥인을 시켜 그를 위해 옥을 가공하게 하여 그것을 팔아 부자로 만들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 원문 (9.15.8.)  宋 人或得玉 , 獻諸 子罕 . 子罕 弗受 . 獻玉者曰 : “ 以示玉人 , 玉人以爲寶也 , 故敢獻之 . ” 子罕 曰 : “ 我以不貪爲寶 , 爾以玉爲寶 . 若以與我 , 皆喪寶也 , 不若人有其寶 . ” 稽首而告曰 : “ 小人懷璧 , 不可以越 鄉 , 納此以請死也 . ” 子罕 寘諸其里 , 使玉人爲之攻之 , 富而後使復其所 . 주석 ▣ 宋 人或得玉 , 獻諸 子罕 . 子罕 弗受 . 獻玉者曰 : “ 以示玉人 : 두예 : “옥인은 옥을 다루는 장인이다 . ” 작가 미상의 '취옥백채 翠玉白菜', (대만국립박물관 소장품) ▣ 玉人以爲寶也 , 故敢獻之 . ” 子罕 曰 : “ 我以不貪爲寶爾 , 以玉爲寶 . 若以與我 , 皆喪寶也 , 不若人有其寶 . ” : 모든 사람은 각자 보배로 여기는 물건이 따로 있다 . ▣ 稽首而告曰 : “ 小人懷璧 , 不可以越 鄉 : 두예 : “이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도적에게 해를 입을 것이다 . ” ▣ 納此以請死也 . ” : 두예 : “죽음을 면하기를 요청한 것이다 . ” ▣ 子罕 寘諸其里 : 자한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 ▣ 使玉人爲之攻之 : 두예 : “공을 옥을 가공함이다 . ” ▣ 富而後使復其所 : 복건은 “옥을 팔아 부를 얻음이다 . ” ‘ 복기...

진 도공의 장례 (춘추좌전.9.15.7.)

진 도공의 장례 정나라의 공손하 公孫夏 가 진나라로 가서 조문하고 , 자교 子 蟜 가 장례에 참석했다 . 원문 (9.15.7.)  鄭公孫夏 如 晉 奔喪 , 子 蟜 送葬 . 주석 ▣ 鄭公孫夏 如 晉 奔喪 , 子 蟜 送葬 : 『좌전·소공 30 년』 정나라의 유길의 언급이 있다 . “선왕의 법은 제후의 상에 사가 조문하고 대부가 장례식에 참석한다 . 오직 가호 嘉好 나 빙향 聘享 그리고 삼군에 관련된 일에만 경을 사신으로 보낸다 . ” 하지만 실제로는 이전부터 맹주에 대한 이런 선왕의 법을 지키지 않았다 . 소공 3 년 유길은 일찍이 이런 말을 했었다 . “과거 문공과 양공이 패주였을 때에는 제후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 군주가 죽으면 대부가 조문하고 경이 함께 장례를 주관했다 . ” 이 역시 선왕의 법보다 한 등급 높다 . 이제 진 도공이 죽었는데 정나라는 공손하를 파견하여 진나라에 분상하게 했다 . 분상 奔喪 이란 가서 조문함이다 . 공손하는 자서이고 정나라의 경이다 . 또 자교를 파견해 송장하게 했다 . 송장 送葬 은 함께 장례를 처리함이다 . 자교는 정나라의 경인 공손채이다 .

진 도공이 서거하다 (춘추좌전.9.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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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도공의 타계 가을 , 주 邾 나라가 우리 노나라 남쪽 변방을 정벌했고 , 사자를 보내 진나라에 보고했다 . 진나라는 회합을 열어 주나라와 거나라를 토벌하려 했지만 도공이 병에 걸려 중단되었다 . 겨울 , 진 도공이 타계했고 결국 회합은 열리지 못했다 . 원문 (9.15.6.)  秋 , 邾 人伐我南鄙 , 使告于 晉 . 晉 將爲會以討 邾 · 莒 , 晉侯 有疾 , 乃止 . 冬 , 晉悼公 卒 , 遂不克會 . 주석 ▣ 秋 , 邾 人伐我南鄙 : 두예 : “역시 진나라를 배반하려 했기 때문이다 . ” ▣ 使告于 晉 . 晉 將爲會以討 邾 · 莒 : 두예 : “ 12 년과 14 년 거나라가 노나라를 정벌했는데 아직 그에 대해 토벌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晉侯 有疾 , 乃止 : 중단되어 회합을 갖지 못했다 . 노나라 스스로도 토벌하지 않았다 . ▣ 冬 , 晉悼公 卒 , 遂不克會 : 주석 없음 .  

성成을 포위한 제나라 (춘추좌전.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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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을 포위한 제나라 여름 , 제 영공이 성 成 을 (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동북쪽 90 리 ) 을 포위했는데 진나라에 딴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 이때 우리 노나라는 성 成 에 외성을 쌓았다 . 원문 (9.15.5.)  夏 , 齊侯 圍 成 , 貳於 晉 故也 . 於是乎城 成 郛 .   주석 ⊙ 夏 , 齊侯 伐我北鄙 , 圍 成 : 성 成 은 『산동통지』에 따르면 현 산동성 영양현 寧陽縣 동북쪽 90 리 떨어진 곳으로 “성 郕 ”으로 쓰기도 한다 . ⊙ 公救 成 , 至 遇 : 우 遇 는 노나라 땅이고 곡부와 영양현의 사이에 있어야 한다 . 군사를 이끌고 성에 외성을 쌓았다는 말을 보면 제나라는 아직 성을 차지하지 못했고 혹 노나라가 출병했기 때문에 포위를 풀었을 수 있다 .   ▣ 夏 , 齊侯 圍 成 , 貳於 晉 故也 : 제나라와 노나라는 모두 진나라의 동맹국이다 . 제나라는 범선자가 우모를 빌려간 후 돌려주지 않자 진나라에게 배반할 마음을 가졌다 . 그래서 노나라의 읍을 침범했다 . ▣ 於是乎城 成 郛 : 『춘추』의 두 문장을 합해서 하나의 전으로 만들었다 .

악사 사혜師慧 (춘추좌전.9.15.4.)

악사  사혜 師慧 정나라의 위씨 尉氏 와 사씨 司氏 가 일으킨 반란의 잔당들이 송나라에 머물고 있었다 . ( ☞ 9.10.9.) 정나라는 ( 부친이 피살당한 ) 자서 子西 , 백유 伯有 , 자산 子 產 을 위해 송나라에 말 160 필에 악사 사벌 師 茷 과 사혜 師慧 를 뇌물로 주었다 . 3 월 자사의 아들 공손흑 公孫黑 을 송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 사성 司城 자한 子罕 이 도여보 堵女父 , 위편 尉翩 , 사제 司齊 를 정나라에 넘겨주었지만 사신 司臣 만은 선량하게 여겨 풀어주며 계무자에게 그를 부탁했다 . 계무자는 그를 변 卞 에 거처하게 했다 . 정나라는 넘겨받은 세 사람을 죽여 젓갈을 담았다 . 사혜가 송나라 조정을 지나며 소변을 보려 했다 . 그를 시종하는 이가 말했다 . “여긴 조정입니다 . ” “조정에 사람이 없다 . ” “조정에 어찌 사람이 없겠습니까 ? ” “필경 사람이 없을 것이네 . 사람이 있다면 어찌 천승지국의 재상의 요청을 나처럼 음란한 음악을 연주하는 소경보다 소홀히 여기겠는가 ? 그러니 필경 이 곳엔 사람이 없을 것이네 . ” 자한이 이야기를 듣더니 군주께 청하여 그를 돌려보냈다 .  원문 (9.15.4.)  鄭尉氏 · 司氏 之亂 , 其餘盜在 宋 . 鄭 人以 子西 · 伯有 · 子 產 之故 , 納賂于 宋 , 以馬四十乘 , 與 師 茷 · 師慧 . 三月 , 公孫黑 爲質焉 . 司城 子罕 以 堵女父 · 尉翩 · 司齊 與之 , 良 司臣 而逸之 , 託諸 季武子 , 武子 寘諸 卞 . 鄭 人醢之三人也 . 師慧 過 宋 朝 , 將私焉 . 其相曰 : “ 朝也 . ” 慧 曰 : “ 無人焉 . ” 相曰 : “ 朝也 , 何故無人 ? ” 慧 曰 : “ 必無人焉 . 若猶有人 , 豈其以千乘之相易淫樂之矇 ? 必無人焉故也 . ” 子罕 聞之 , 固請而歸之 . 주석 ▣ 鄭尉氏 · 司氏 之亂 , 其餘盜在 宋 : 반란에 대해서는 『좌전·양공 10 년』참조 . ▣ 鄭 人以 子西 · 伯有 · 子 產 之故 , 納賂于 宋 : 자서의 부친은 자사 ,...

초나라의 관직 서열 (춘추좌전.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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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의 관직 서열  초나라의 공자오 公子午 가 영윤 令尹 이 되었고 , 공자파융 公子罷戎 이 우윤 右尹 , 위자풍 蒍 子馮 이 대사마 大司馬 , 공자탁사 公子橐師 가 우사마 右司馬 , 공자성 公子成 이 좌사마 左司馬 , 굴도 屈到 가 막오 莫敖 , 공자추서 公子追舒 가 잠윤 箴尹 ( 간관 ), 굴탕 屈蕩 이 연윤 連尹 그리고 양유기 養由基 가 궁구윤 宮 廄 尹 이 되어 국인을 안정시켰다 . 군자가 평하였다 . “이때 초나라는 인재를 잘 발탁하였다 . 관리의 임용은 나라의 급선무이다 . 인재 등용을 잘하면 백성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없어진다 . 『시 』 ( 『주남·권이』 ) 에 말한다 . ‘아 ! 인재를 그리워하니 저들을 관직에 두루 앉히리라 . ’ 인재를 잘 선택한 것이다 . 왕이하 공후·백 伯 ·자 子 ·남 男 ·전 甸 ·채 采 ·위 衛 ·대부까지 모두 적재적소에 위치한 것을 이른바 ‘주행 周行 ’이라고 말한다 . ” 원문 (9.15.3.)  楚公子午 爲令尹 , 公子罷戎 爲右尹 , 蒍 子馮 爲大司馬 , 公子橐師 爲右司馬 , 公子成 爲左司馬 , 屈到 爲莫敖 , 公子追舒 爲箴尹 , 屈蕩 爲連尹 , 養由基 爲宮 廄 尹 , 以靖國人 . 君子謂 : “ 楚 於是乎能官人 . 官人 , 國之急也 . 能官人 , 則民無 覦 心 . 『 詩 』 云 , ‘ 嗟我懷人 , 寘彼周行 ’, 能官人也 . 王及公侯 · 伯 · 子 · 男 · 甸 · 采 · 衛 · 大夫 , 各居其列 , 所謂周行也 . ” 주석 ▣ 楚公子午 爲令尹 : 『설원·권모편』의 “초 공자오가 진 秦 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진은 그를 억류했다 . ”는 사건은 진 평공 때의 일이다 . 하남성 석천현 淅川縣 의 하사 下寺 에 있는 초나라 시대의 묘에서 왕자오정 王子午鼎 이 발굴되었는데 왕자오는 바로 이 공자오이다 . ▣ 公子罷戎 爲右尹 , 蒍 子馮 爲大司馬 : 『정의』는 『세본』을 인용하여 위애렵 蒍艾獵 은 손숙오 孫叔敖 의 형이고 , 풍 馮 은 애렵의 아들이라 한다 . ▣ 公子橐師 爲右司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