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의 관직 서열 (춘추좌전.9.15.3.)


초나라의 관직 서열 


초나라의 공자오公子午가 영윤令尹이 되었고, 공자파융公子罷戎이 우윤右尹, 위자풍子馮이 대사마大司馬, 공자탁사公子橐師가 우사마右司馬, 공자성公子成이 좌사마左司馬, 굴도屈到가 막오莫敖, 공자추서公子追舒가 잠윤箴尹(간관), 굴탕屈蕩이 연윤連尹 그리고 양유기養由基가 궁구윤이 되어 국인을 안정시켰다.

군자가 평하였다. “이때 초나라는 인재를 잘 발탁하였다. 관리의 임용은 나라의 급선무이다. 인재 등용을 잘하면 백성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없어진다. 『시(『주남·권이』)에 말한다. ‘아! 인재를 그리워하니 저들을 관직에 두루 앉히리라.’ 인재를 잘 선택한 것이다. 왕이하 공후·백·자·남·전·채·위·대부까지 모두 적재적소에 위치한 것을 이른바 ‘주행周行’이라고 말한다.


원문

(9.15.3.) 楚公子午爲令尹公子罷戎爲右尹子馮爲大司馬公子橐師爲右司馬公子成爲左司馬屈到爲莫敖公子追舒爲箴尹屈蕩爲連尹養由基爲宮以靖國人.

君子謂: 於是乎能官人. 官人國之急也. 能官人則民無. , 嗟我懷人寘彼周行’,能官人也. 王及公侯·······大夫各居其列所謂周行也.


주석

楚公子午爲令尹: 『설원·권모편』의 “초 공자오가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진은 그를 억류했다.”는 사건은 진 평공 때의 일이다. 하남성 석천현淅川縣 하사下寺 있는 초나라 시대의 묘에서 왕자오정王子午鼎 발굴되었는데 왕자오는 바로 이 공자오이다.


왕자오정王子午鼎-초나라


公子罷戎爲右尹子馮爲大司馬: 『정의』는 『세본』을 인용하여 위애렵蒍艾獵 손숙오孫叔敖 형이고, 애렵의 아들이라 한다.

公子橐師爲右司馬公子成爲左司馬屈到爲莫敖: 「초어상」의 위소의 주석: “굴도屈到 초나라 경 굴탕屈蕩 아들 자석子夕이다.

公子追舒爲箴尹: 『여씨춘추』고유의 주석: “초나라에는 잠관이란 관직이 있는데 그는 간관諫官이다.” 두예: “추서는 장왕莊王 아들 자남子南이다.” 『형남췌고편荊南萃古編』에 왕손유자종王孫遺者鐘 있는데 유상劉翔 왕손유자가 바로 이 공자추서라고 주장한다.

屈蕩爲連尹養由基爲宮以靖國人: 주석 없음.

君子謂: 於是乎能官人. 官人國之急也. 能官人則民無: 의 음은 투이고 분수를 넘은 야심을 가지고 기회를 본다는 뜻이다. 유능한 인재를 선택하여 적절한 관직에 안배하면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홉 명 중에 다섯 사람이 공자이다. 굴씨는 초나라의 대성으로서 본래 초나라 왕실과 동족이고 위씨 역시 이전 영윤의 종자로서 모두 세족이다.

, 嗟我懷人寘彼周行: 『주남·권이』의 시구. 본래는 부녀자가 멀리 나가 있는 장부를 생각하며 노래한 시이다. 권이라는 나물을 캐고 또 캐도 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하고 계속 떠오르는 님의 생각에 다시 나물을 캘 생각도 나지 않아 바구니를 큰 길에 내던진다는 노래이다. 하지만 『좌전』의 작자는 자기의 의도대로 이 시를 해석하고 있다. 후대인들은 좌씨를 근거로, 진앙 같은 이는 『모시전소』에서 “군자를 그리워하고, 현인을 관리로 등용하여 두루 관직에 배치한다.”고 해석했는데 모두 『좌씨전』의 설에 근거한 설명이다.

能官人也. 王及公侯·······大夫各居其列所謂周行也.: 두예: “왕 이하 제후와 대부 모두 각기 맡은 직분이 있다. 즉 이것이 시인이 말한 주행의 뜻이다. 전·채·위는 오복의 명칭이다. 천자의 거처를 중심으로 천리를 기라 하고, 그 밖을 후복侯服이라 한다. 그 다음 외곽을 순서대로 전복甸服, 남복男服, 채복采服, 그리고 위복衛服이라 하는데, 각 복은 오백리이다. 후남侯男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생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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