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평공의 즉위 (춘추좌전.9.16.1.)

진 평공의 즉위



양공 16년 봄, 진 도공을 장사지냈다. 평공이 즉위했고, 양설힐羊舌(), 장군신張君臣이 중군의 사마, 기해祁奚, 한양韓襄, 난영欒盈, 사앙士鞅 등이 공족대부로, 우구서虞丘書 승마어乘馬御에 임명되었다. 상복을 벗고 관리를 임명한 평공이 곡옥曲沃에서 증제를 올렸다. 도성의 경계를 명하고 황하를 따라 내려가 취량(하남성 제원현濟源縣 서쪽) 제후들과 회합했다. 평공은 제후들에게 침탈한 땅의 복귀를 명하고, 우리나라를 침략한 문제로 주 선공과 거 리비공을 잡아들이며, 또 “제나라 및 초나라와 사신을 왕래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진 평공이 제후들과 온에서 연회를 가졌고 여러 대부들에게 춤을 추게 하고, “노래나 시가 반드시 춤에 어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제나라 고후高厚의 시가 춤에 어울리지 않았다. 순언荀偃이 분노했고, 또 말하였다. “제후들 중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이가 있다.” 여러 대부들을 시켜 고후와 결맹하게 했더니 고후가 도망쳐 돌아갔다. 이때 노의 숙손표叔孫豹, 진의 순언, 송의 상술向戌, 위의 영식, 정의 공손채公孫, 그리고 소주 대부들이 맹세하여 말했다. “맹주를 조견하지 않는 나라를 함께 토벌한다.


원문

(9.16.1.) 十六年春晉悼公. 平公卽位羊舌爲傅張君臣爲中軍司馬祁奚·韓襄·欒盈·士鞅爲公族大夫虞丘書爲乘馬御. 改服·修官烝于曲沃. 警守而下會于. 命歸侵田. 以我故宣公·莒犁比公且曰: ·之使.

晉侯與諸侯宴于使諸大夫舞: 歌詩必類.齊高厚之詩不類. 荀偃且曰: 諸侯有異志矣.使諸大夫盟高厚高厚逃歸. 於是叔孫豹·晉荀偃·宋向戌··鄭公孫·之大夫盟曰: 同討不庭.


주석

十六年春晉悼公. 平公卽位羊舌爲傅: 은 곧 숙향叔向이다. 『좌전·성공18년』에서 사악탁이 태부가 되었고, 힐 역시 사악탁의 뒤를 이어 태부가 되었다. 「진어7」은 진 도공이 양설힐한테 『춘추』를 학습했고 이에 따라 숙향을 불러 태자 표 사부로 삼았다고 서술한다. 이제 표가 뒤를 이어 진의 군주가 되었기 때문에 숙향이 태부가 된 것이다. 태부는 상설 관직이 아니고 경이나 대부가 모두 태부가 될 자격이 있었다. 『좌전·선공16년』에서 사회가 중군의 장수와 함께 태부를 겸임했다는 기사가 있는데 중군의 장수가 태부를 겸임할 수도 있다. 『좌전·소공5년』, 초 영왕은 양설힐을 상대부라고 일컬었는데 힐은 상대부로서 태부의 직을 맡았다. 양처보가 태부이면서 중군의 장수였음을 『좌전·문공6년』의 기사에서 볼 수 있다.

張君臣爲中軍司馬: 두예: “장로張老 아들이다. 그의 부친의 자리를 대신했다.

祁奚·韓襄·欒盈·士鞅爲公族大夫: 기해는 이미 양공 3년에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했다. 그런데 13년 후에 다시 공족대부가 되었고 『좌전·양공21년』에 따르면 숙향을 구제하기도 했다. 마종연의 『보주』는 기해는 혹 기오祁午 아닌가 주장하지만 옳지 않은 것 같다. 한양은 한무기韓無忌 아들이다. 한무기가 공족대부를 역임했음은 『좌전·양공7년』에 보인다. 『통지·씨족략』5에서 『세본』을 인용, “진나라 한궐韓闕 무기를 낳고, 무기가 양을 낳고 양이 자어子魚 낳았다.

虞丘書爲乘馬御: 『광아』의 구자의 주석에 우구虞丘는 복성이라고 설명한다. 『통지·씨족략』3에서는 우구는 진나라의 읍으로서 우구서는 그의 채읍을 씨로 삼은 것이라고 말한다.

改服·修官: 상복을 벗고 길복으로 갈아입다. 수관修官은 현명한 이를 선발하여 관리로 임용한다. 유월의 『평의』: “관과 관 고자에서 통한다. 수관은 수관修館이다. 취량에서 회합하므로 그곳의 관사를 먼저 청소한 것이다.” 역시 통한다.

烝于曲沃: 증은 제사의 명칭. 『좌전·환공5년』의 “경칩에 증제를 지낸다.

警守而下會于: '경수'는 국도에 군사를 배치하여 수비하다. 황하를 따라 내려간다. 취량은 경문의 주석 참조.



취량溴梁-춘추시대지도


命歸侵田. 以我故宣公·莒犁比公: 작년의 『좌전』을 참조. 거나라 군주는 지명으로 시호를 삼는 경우가 많다. 리비犁比역시 지명이다. 장총함의 『두주변정』에 설명이 자세하다.

且曰: ·之使.: 주나라와 거나라의 군주의 죄를 책망했다. 그들은 제나라와 초나라를 왕래했기 때문이다.

晉侯與諸侯宴于: 은 현재 행정구역은 서남쪽에 있고 취수가 흐른다.

使諸大夫舞: 歌詩必類.: 왕소란: “옛 사람들은 춤출 때 반드시 시를 함께 불렀다. 『묵자』(공맹편)에서도 ‘춤추며 시 삼백 수를 불렀다’는 말이 있다.” 『경설』4에 자세하다. 『초사·구가·동군東君』에서도 “시를 부르고 함께 춤을 추고(展詩兮會舞)”라고 하고, 『시·소아·거할』의 “노래하고 춤을 추고(式歌且舞)” 등으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歌詩必類 노래와 춤이 서로 어울리는 것을 하라는 것으로서 본인의 뜻을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하라는 뜻.

齊高厚之詩不類. 荀偃且曰: 諸侯有異志矣.: 고후가 부른 노래와 춤이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使諸大夫盟高厚高厚逃歸. 於是叔孫豹·晉荀偃·宋向戌··鄭公孫·之大夫盟曰: 同討不庭.: 부정不庭의 뜻에 대해선 『좌전·은공10년』의 주석에 상세하다. 여기 부정은 옛말을 차용한 것이고, 실제로는 맹주인 진나라에 불충한 것으로 가리킨다. 『좌전·성공12년』의 부정의 뜻과 가깝다. 武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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