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로 국론이 분열된 허나라 (춘추좌전.9.16.2.)
천도에 국론이 분열된 허나라
허 영공이 진晉의 영토 안으로 천도할 수 있기를 요청했다. 제후들은 바로 허나라의 천도를 준비했지만 허나라의 대부들이 반대했고 진나라는 제후들을 돌려보냈다.
정나라의 자교子蟜는 허나라 정벌 소식을 듣고 바로 간공을 보필하여 제후군을 뒤따랐다. 목숙穆叔은 양공을 시종하여 귀국했다. 노의 제자齊子(숙노)가 군사를 이끌고 진의 순언과 회합했다. 『춘추』에 “(숙노가) 정백과 회합했다(叔老會鄭伯·晉荀偃·衛甯殖·宋人伐許.).”고 썼는데 서술의 공평함 때문이다.
여름 6월, 진나라가 역림棫林(하남성 섭현葉縣의 동북쪽)에 군을 주둔하고, 경인일(9일), 허나라를 정벌하여 함씨函氏에 군을 주둔했다.
원문
(9.16.2.) 許男請遷于晉. 諸侯遂遷許,許大夫不可,晉人歸諸侯.
鄭子蟜聞將伐許,遂相鄭伯以從諸侯之師. 穆叔從公. 齊子帥師會晉荀偃. 書曰 “會鄭伯”,爲夷故也.
夏六月, 次于棫林. 庚寅,伐許,次于函氏.주석
▣許男請遷于晉: 허나라 본래의 도읍은 현 하남성 허창시 동쪽 36리 떨어진 곳이다. 노 성공 15년, 허
영공 때 초나라는 정나라의 위협을 피해 허나라를 섭葉으로 천도하게 했다. 현
섭현葉縣의 서남쪽으로 30리 떨어진 섭현의 옛성이다. 이때부터 허나라는 초나라의 부용국이 되었다. 지금 허나라가 진나라에
천도를 요청했는데 초나라를 배반하고 진나라에 복종하려는 생각이었다.
▣諸侯遂遷許: 준비만 하고 실제로는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도한 땅을 적지 않았다.
▣許大夫不可,晉人歸諸侯: 제후들을 모두 귀국시키고 진군만 허나라 대부들을 토벌했다.
▣鄭子蟜聞將伐許,遂相鄭伯以從諸侯之師: 이 이하는 초기에 제후의 군사를 동원했던 일을 보충 서술하고 있다.
▣穆叔從公. 齊子帥師會晉荀偃. 書曰 “會鄭伯”,爲夷故也: 『춘추』는 “叔老會鄭伯·晉荀偃·衛甯殖·宋人伐許”라고 썼는데, 『춘추』는 노나라의 역사이므로 반드시 노나라를 주체로 삼기 때문에 숙노를 맨 앞에 쓴 것이다. 정백은 정나라의 군주이고, 순언이 연합군의 원수이지만 진의 신하이기
때문에 정백의 뒤에 배열한 것이다. 이夷는 공평平의 뜻. 이처럼 서열하면 공평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목숙은 숙손표/숙손목자 -옮긴이.)
▣夏六月, 次于棫林: 역림은 허나라 땅이다. 현 하남성 섭현葉縣의 동북쪽이다. 『좌전·양공14년』의 진나라 땅인 역립과 이름은 같지만
다른 곳이다.
▣庚寅: 9일이다.
▣伐許,次于函氏: 함씨 역시 허나라 땅이다. 현 섭현의 북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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