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낭子囊의 유언, 영郢에 성을 쌓아라 (춘추좌전.9.14.11)


자낭子囊의 유언, 영에 성을 쌓아라 


초나라의 자낭子囊이 오나라 정벌에서 돌아온 후 타계했다. 임종을 앞두고 자경子庚에게 유언을 남겼다. “반드시 영에 성을 쌓아라!” 

군자가 평하였다. “자낭은 충성스럽다. 군주가 서거했을 때 시호를 추증하는 일을 잊지 않았고, 임종을 앞두고 사직의 보위를 잊지 않았다. 어찌 충성스럽다 말하지 않겠는가? 충은 백성이 우러르는 바이다. 『시』에 ‘행동이 충에 귀결되니 만민이 우러러본다’(『소아·도인사)라고 했으니 이는 충을 말한 것이다. 


원문

(9.14.11.) 楚子囊還自伐. 將死遺言謂子庚: 必城!君子謂: 子囊. 君薨, 不忘增其名; 將死, 不忘衛社稷可不謂忠乎? 民之望也. : 行歸于周萬民所望 忠也.



주석

楚子囊還自伐: 『여씨춘추·고의편』(『설원·입절』과 「저관구사」역시 이 문장을 기재했다): “초나라와 오나라가 전쟁을 앞두고 초의 군사는 적고 오의 군사가 많았다. 장군인 자낭이 왕에게 명을 받지 않고 군사를 돌렸기 때문에 결국 검을 품고 자살하였다.” 『좌전』과는 다르다.

將死遺言謂子庚: 자경子庚 공자오公子午이다. 자낭을 이어 영윤이 되었다.

必城!: 『사기·초세가』에 근거하면 초 문왕 원년에 영에 처음으로 도읍했다. 하지만 『세본』에 따르면 초 무왕 때에 이미 영에 도읍했다. 『좌전·장공18년』에 파나라巴人 “초나라의 성을 공격했다.”는 기사로 보면 당시에 이미 축성된 상태였다. 그래서 『속한군국지』의 유소의 주석에는 “강릉현 북쪽 10여리 떨어진 곳에 기남성이 있는데 초왕이 도읍한 곳이다. 동남쪽에 영성이 있는데 이는 자낭이 축성했다.”고 말한다.


영郢-초나라-춘추시대


君子謂: 子囊. 君薨, 不忘增其名: 『좌전·양공13년』에 자세하다.

將死, 不忘社稷可不謂忠乎? 民之望也. : 行歸于周: 정현의 『전』: “주는 충신忠信 뜻이다.

萬民所望: 『시·소아·도인사都人士』의 첫장이다.

忠也.: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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