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유자속孟孺子速 (춘추좌전.9.16.4.)


맹유자속孟孺子速


가을, 제 영공이 노나라의 성(산동성 영양현寧陽縣 북쪽)을 포위할 때 맹유자속孟孺子速은 제나라 군을 요격했다. 영공이 말했다. “저 자는 용맹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군을 물려 그의 이름을 떨치게 해주자.” 맹유자속은 이어 해형海陘(대문하大汶河 사수泗水 사이에 있는 험로)을 막고 돌아왔다.



원문

(9.16.4.) 齊侯孟孺子速徼之. 齊侯: 是好勇去之以爲之名.遂塞海陘而還.



주석

齊侯伐我北鄙: “성”은 “성”으로도 쓴다. 『석문』역시 그러하다. 여기서는 『석경』과 송본 그리고 악본에서 “성”으로 쓴 것을 따랐다.

 

齊侯: “성”자가 각본에는 모두 “성”으로 쓰여 있다. 사실 두 곳은 같은 지역이다. 여기서는 감본을 따라 일관성을 택했다.

孟孺子速徼之: 맹유자孟孺子 맹헌자孟獻子 아들이다. 이름은 속이고 시호는 장자莊子이다. 음은 효이다. 숨어 있다가 중간을 끊고 공격함이다.

齊侯: 是好勇: 시는 맹유자를 가리킨다. 『논어·헌문』의 “변장자卞莊子 용맹함”, 조탄의 『보폐재찰기』등에서 “변장자는 맹유자를 말한다.”라고 하지만 신뢰할 수 없다.

去之以爲之名.: 포위를 풀어 맹속의 용맹한 이름을 이루게 하다. 『좌전·양공18년』, 제나라의 안영이 제 영공을 가리켜 “참으로 용맹이 없다”는 말은 사실은 겁먹고 도망친 사실을 말한 것이다.


해형海陘-춘추시대


遂塞海陘而還: 두예는 단지 “해형海陘은 노나라에 있는 험난한 길이다.”라고 해석했다. 은 현 산동성 영양현寧陽縣 북쪽에 있다. 이미 『춘추·환공6년』의 주석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성읍의 북쪽은 제나라의 경계와 가깝다. 해형은 제나라와 노나라 사이의 험난한 길이다. 『설문』의 “형은 산이 끊긴 지세가 험한 곳이다(, 山絶坎也).”에 대해 단옥재는 “어떤 산이 두 개의 하천 사이에 있기 때문에 산절감이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소위 해형이란 험로에 하천이 있는 것을 말할 뿐이다. 해형은 성 북쪽에 있어야 맞고 대문하大汶河 사수泗水 사이에 있어야 한다. 강영의 『고실』은 해자에 얽매여서 제성諸城 경계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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