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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舍’, ‘신信’, ‘차次’

본문 3.3.4.  겨울 . 장공이 활 滑 ( 하남성 저현 雎 縣 의 서북쪽 ) 에 군을 주둔하고 며칠간 머물렀다 . 정나라 자의와 회합하여 기 紀 나라 문제를 논의하려고 했지만 자의는 국내 문제로 사절했다 . 범례에 따르면 , 군대가 하루 주둔하는 것을 ‘사 舍 ’ , 이틀은 ‘신 信 ’ , 그 이상은 ‘차 次 ’ 라고 한다 . 원문 冬 , 公次于 滑 , 將會 鄭伯 , 謀 紀 故也 , 鄭伯 辭以難 .  凡師 , 一宿爲舍 , 再宿爲信 , 過信爲次 . 👉 관련 주석과 춘추좌전 완역 포스트  

1.6.7. 장공의 왕실 예방

본문 정 장공이 주나라를 예방하여 처음으로 환왕을 알현하였다 . 왕이 그를 예로써 대우하지 않았다 . 주나라의 환공 ( 주공흑견 ) 이 왕에게 말하였다 . “우리 주나라가 동천할 때 , 진 나라와 정나라에 의지했습니다 . 정나라를 잘 대우하여 찾아오게 권장해도 오히려 그가 오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판에 어찌 그를 무례하게 대우하십니까 ? 정나라는 다시 내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 ” 1.6.7.  鄭伯 如 周 , 始朝 桓王 也 . 王不禮焉 . 周桓公 言於王曰 : “ 我 周 之東遷 , 晉 · 鄭 焉依 . 善 鄭 以勸來者 , 猶懼不 蔇 , 況不禮焉 ? 鄭 不來矣 . ” 해설 ▣ 鄭伯 如 周 , 始朝 桓王 也 : 두예 : “환왕이 즉위한 후 주나라와 정나라는 서로 악행을 주고받았다 . 이때에 처음으로 조견했기 때문에 ‘시 始 ’라고 쓴 것이다 . ” 하작의 『의문독서기』 : “정나라가 이전에 진나라와 원한을 맺은 적이 있는데 주나라가 혹여 자신을 토벌할까 두려워 조견한 것이다 . ” ▣ 王不禮焉 : 「 정세가」 : “장공 27 년 처음으로 주 환왕을 조견했다 . 환왕은 추수한 곡식을 약탈한 일에 분노하여 예를 갖춰 대하지 않았다 . ” ▣ 周桓公 言於王曰 : 주 환공은 환공 18 년의 주공흑견 周公黑肩 이다 . 『시·주남』과 『소남』의 『보』에 근거하면 주공은 노나라에 , 소공은 연나라에 봉건되었지만 그들의 장자들이 제후국의 군위를 세습하였고 , 차자들은 왕기 내의 채지에서 왕조의 관리로 봉직했다 . 이들이 곧 춘추시대의 주공과 소공이다 . 주공이 처음 받은 채지는 섬서성 봉상현 경내에 있다 . 두예의 “부풍옹현 동북쪽에 주성 周城 이 있다”라는 것이 이를 가리킨다 . 주나라가 동천한 이후로는 평왕이 서도 西都 를 진 秦 나라에게 봉지로 내렸으므로 주공과 소공은 동도에서 별도로 채지를 받아 주공과 소공의 본명을 보존했다 . 그러나 동천 이후의 주공의 채지가 어디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 ▣ 我 周 之東遷 , 晉 · 鄭 焉依 : “ 晉 · 鄭 焉依 ” 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