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장공의 왕실 예방

본문

정 장공이 주나라를 예방하여 처음으로 환왕을 알현하였다. 왕이 그를 예로써 대우하지 않았다. 주나라의 환공(주공흑견)이 왕에게 말하였다. “우리 주나라가 동천할 때, 나라와 정나라에 의지했습니다. 정나라를 잘 대우하여 찾아오게 권장해도 오히려 그가 오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판에 어찌 그를 무례하게 대우하십니까? 정나라는 다시 내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1.6.7. 鄭伯, 始朝桓王. 王不禮焉. 周桓公言於王曰: 之東遷, ·焉依. 以勸來者, 猶懼不, 況不禮焉? 不來矣.


해설

鄭伯, 始朝桓王: 두예: “환왕이 즉위한 후 주나라와 정나라는 서로 악행을 주고받았다. 이때에 처음으로 조견했기 때문에 ‘시’라고 쓴 것이다.” 하작의 『의문독서기』: “정나라가 이전에 진나라와 원한을 맺은 적이 있는데 주나라가 혹여 자신을 토벌할까 두려워 조견한 것이다.

王不禮焉: 정세가」: “장공 27년 처음으로 주 환왕을 조견했다. 환왕은 추수한 곡식을 약탈한 일에 분노하여 예를 갖춰 대하지 않았다.

周桓公言於王曰: 주 환공은 환공 18년의 주공흑견周公黑肩이다. 『시·주남』과 『소남』의 『보』에 근거하면 주공은 노나라에, 소공은 연나라에 봉건되었지만 그들의 장자들이 제후국의 군위를 세습하였고, 차자들은 왕기 내의 채지에서 왕조의 관리로 봉직했다. 이들이 곧 춘추시대의 주공과 소공이다. 주공이 처음 받은 채지는 섬서성 봉상현 경내에 있다. 두예의 “부풍옹현 동북쪽에 주성周城이 있다”라는 것이 이를 가리킨다. 주나라가 동천한 이후로는 평왕이 서도西都를 진나라에게 봉지로 내렸으므로 주공과 소공은 동도에서 별도로 채지를 받아 주공과 소공의 본명을 보존했다. 그러나 동천 이후의 주공의 채지가 어디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之東遷, ·焉依: ·焉依는 “·是依”와 같은 말이다. 그래서 『국어·주어』와『수경주·위수주』에서 인용할 때 모두 언 대신 시를 쓰고 있다. 언과 시는 모두 결구조사로 사용되어 빈어가 동사 앞으로 도치된 문장이다. 『좌전·양공30년』의 “국가를 안정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큰 가문을 안정시켜야 한다(安定國家, 必大焉先)”은 必先大 같다. 「오어」: “지금 왕께서는 원로대신을 제쳐두고 어린아이와 함께 도모하시려고 합니다(而孩童焉比謀).” 比謀孩童 같다. 『후한서·임광이충유식전』의 『찬』: “짐짓 군사를 돌리는 척하는 일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두 태수밖에 없습니다(委蛇還旅, 二守焉依)”는 바로 본문의 문법을 채용하고 있다. 두예: “주 유왕이 견융에게 피살되고, 평왕이 동쪽으로 천도할 때 진 문후와 정 무공이 왕실을 보좌했다. 그런 까닭에 ‘·焉依’라고 쓴 것이다.

以勸來者, 猶懼不: 같고, 미치다() 혹은 오다()의 뜻이다.

況不禮焉? 不來矣: 여기 “언”은 “지의 용법이다. 대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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