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공보가孔父嘉와 화보독華父督

본문

환공 2년 봄, 송의 화보독이 공씨를 공격하여 공보를 죽이고 그의 처를 빼앗았다. 송 상공이 분노했고 화보독은 두려운 나머지 상공을 시해했다군자는 화보독이 군주를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고 이후 악에 동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춘추』는 군주의 시해를 먼저 썼다환공이 제 희공, 진 환공, 정 장공과 직(하남성 상구현. 송나라)에서 회합하여 송나라의 변란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뇌물을 받고 화씨의 지위를 세워주었다송 상공이 즉위하여 10년 동안 11차례의 전쟁이 있었고 백성들은 전쟁을 더 견딜 수 없었다. 당시 공보가가 사마였고 화보독은 태재였다. 백성들이 더 이상 전쟁을 감내할 수 없음을 알고 화보독이 선수를 쳐 널리 말하였다. “전쟁은 사마가 주도했다.” 공보를 죽이고 상공을 시해한 후, 정나라에 머물던 장공을 불러들여 옹립함으로써 정나라와 가까이했다. 환공에게 고나라의 대정을 뇌물로 바쳤고, 제나라, 나라 그리고 정나라에 모두 뇌물을 바쳤다. 그리하여 화보독이 송나라 군주를 보좌하게 되었다.


2.2.1. 二年春宋督孔氏孔父而取其妻. 公怒遂弑殤公君子以爲有無君之心而後動於惡故先書弑其君會于以成爲賂故華氏宋殤公十年十一戰民不堪命. 孔父嘉爲司馬爲大宰故因民之不堪命先宣言曰: 司馬則然.已殺孔父而弑殤公莊公而立之以親. 大鼎賂公··皆有賂故遂相宋公.


해설

二年春宋督孔氏孔父而取其妻: 공보孔父는 이 당시 아직 공을 씨로 삼지 않은 상태이며, “공씨는 후대에 이런 사실을 쫒아서 쓴 것이다.


춘추좌전 표 - 송나라의 주요 귀족


公怒遂弑殤公: 『공양전』과 『곡량전』에 이 사건을 기술할 때, 송독이 상공을 시해하려 했고 그에 앞서 공보를 죽인 것으로 서술하고 있어 『좌전』의 서술과는 차이가 있다. 『사기·송세가』는 『좌전』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君子以爲有無君之心而後動於惡故先書弑其君: 이것은 『춘추』의 문장을 해석한 것이다. 공보를 살해한 일이 먼저이고, 군주를 시해한 것은 그 뒤의 일인데 경문에서 “그 군주 여이를 시해하고 이어 대부 공보를 죽였다(弑其君與夷及其大夫孔父)”로 적은 까닭은 공보가 고명대신(『좌전·은공3년』에 내용이 있다)인데 송독이 그를 죽였다는 것은 그의 안중에 군주가 없었다는 뜻이다.

會于以成爲賂故華氏: 공영달의 『소』에 따르면, 당나라의 학자들이 근거한 진과 송의 판본엔 종종 “”자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의 군신간의 의리로 보면 화씨는 군주를 시해한 난적이다. 그러나 공자풍이 정나라에 망명해 있었고, 정 장공은 그를 송나라로 들여 군주로 세우려고 했다. 송 상공과 공보는 누차에 걸쳐 정나라와 교전을 벌였고, 이 또한 공자풍으로 때문이었다. 이제 화독이 상공과 공보를 살해하고 공자풍을 맞아 군주로 옹립하려고 했으므로 이것은 장공이 실로 원하는 바였다. 의 회합은 사실 이 일을 성사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또 화씨 정권을 수립하려고 화씨는 각 국에 뇌물을 제공했다. 송독은 당시 아직은 화씨가 아니었으므로 “화씨”란 말 역시 후대에 추서한 것이다.

宋殤公十年十一戰: 공영달의 『소』에서 복건服虔의 주장을 인용하여, “여이與夷는 은공 4년에 즉위했다. 첫 번째 전쟁은 정나라를 공격하여 동문東門을 포위한 했다. 두 번째 역시 정나라 공격에 나서 곡식을 탈취하여 돌아왔는데 모두 은공 4년에 있었던 일이다. 세 번째는 주나라의 땅을 탈취했다. 네 번째는 주 및 정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그 외곽 성까지 쳐들어 갔다; 다섯 번째 전쟁은 정나라를 공격하여 장갈을 포위했다. 모두 은공5년에 있었던 일이다. 여섯 번째 전쟁은 정 장공이 주나라 왕의 명으로 송나라를 공격한 것인데 은공 9년의 일이다. 일곱 번째는 은공이 송나라를 관에서 패퇴시킨 일이다. 여덟 번째는 송과 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한 것, 아홉 번째는 송·채·위나라가 대나라를 친 전쟁, 열 번째는 무인일에 정나라 장공이 송나라를 쳐들어간 것으로서 모두 은공 10년의 일이다. 열한 번째는 정나라 장공이 괵나라 군사를 이끌고 송나라 군사를 크게 패퇴시킨 것으로서 은공 11년의 일이다. 11번의 전쟁 중 주나라 땅을 취한 것만이 정나라와 관련이 없는 전쟁이고 나머지는 모두 송나라와 정나라가 교전을 벌이고 있다.

民不堪命: 불감不堪은 오늘날의 견딜 수 없다는 말과 같다.

孔父嘉爲司馬大宰故因民之不堪命先宣言曰: 司馬則然.: “사마司馬가 그렇게 한 것”이란 말은 즉 자신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마가 군사의 수장이므로 송독의 선언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쉬웠다. 자신은 이 선언을 통해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뜻을 나타냈다. ”의 이런 용법에 대해선 『사전』에 상세하다.

已殺孔父而弑殤公莊公而立之以親. 大鼎賂公··皆有賂故遂相宋公: 화독은 비록 송 장공 12년에 송만宋萬에게 피살당했지만 화씨의 송나라 정권 장악은 2백여 년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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