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정나라, 위나라 정벌
본문
정나라가 위나라를 정벌했는데, 공손활의 반란을 지원한 일을 토벌한 것이다.
1.2.7. 鄭人伐衛, 討公孫滑之亂也.
해설
◉鄭人伐衛: 춘추시대 초기에는 타국의 대부가 침벌할 때 어느 나라 사람(某國人)으로 호칭하고 그의 이름과 씨를 밝히지 않았다. 희공 15년에 서나라를 구원할 때 처음으로 공손오와 제후의 대부를 밝혔지만 역시 이름과 씨를 일일이 밝히지는 않았다. 타국의 대부 홀로 군사를 인솔한 경우 이름을 쓴 경우는 문공 3년 진나라의 양처보陽處父가 그 시초이고, 타국의 대부가 여러 나라의 군사를 이끈 경우의 이름을 적은 최초의 사례는 선공 6년 진나라 조돈趙盾과 위나라 손면孫免이며, 안鞌에서의 전투 이후로는 본국과 타국의 대부의 이름을 일일이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장자초張自超의 『춘추변의총론春秋辨義總論』에 상세하다. 『춘추』의 례에 따르면, 행군할 때 북과 종을 울릴 경우 “벌伐”로 쓴다.
춘추좌전 지도 - 정나라 |
▣鄭人伐衛, 討公孫滑之亂也: 공손활公孫滑은 대숙단의 아들이다. 대숙단이 실패한 후, 공손활은 위나라로 도망쳤고, 위나라는 공손활을 위해 정나라 공격에 나서 늠연廩延을 빼앗았다. 『좌전·은공원년』의 기사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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