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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장례 (춘추좌전.8.18.15.)

성공의 장례 『춘추』에 “ 정미일 (26 일 ), 우리 군주 성공의 장례를 치렀다 .” 고 적은 것은 절차가 순리에 맞았기 때문이다 . 원문  (8.18.15.) 丁未 , 葬我君 成公 , 書 , 順也 . 주석 ▣ 丁未 , 葬我君 成公 , 書 , 順也 :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 노침에서 사망했고 5 개월 만에 장례를 치렀으며 나라가 안정된 상태에서 태자가 뒤를 이었기 때문에 “순조로왔다”고 말한 것이라 한다 . 과거 장공은 비록 노침에서 죽었지만 자반이 피살되었고 ; 선공도 노침에서 사망했지만 귀보가 망명하였기 때문에 성공의 사후의 상황처럼 순조롭지는 않았었다 . 

허정에서 회합하고 송나라를 구원하다. (춘추좌전.8.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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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에서 회합하고 송나라를 구원하다 12 월 , 맹헌자가 ( 진 도공 , 송 평공 , 위 헌공 , 주나라의 군주 , 제나라의 최저 와 ) 허정 虛 朾 ( 하남성 연진현 延津縣 의 동쪽 ) 에서 회합하고 송나라의 구원 문제를 논의했다 . 송나라는 제후들의 참전은 사양하고 군사만 요청하여 팽성을 포위했다 . 맹헌자는 제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귀국하여 성공의 장례에 참석했다 . 원문 (8.18.14)  十二月 , 孟獻子 會于 虛 朾 , 謀救 宋 也 . 宋 人辭諸侯而請師以圍 彭城 . 孟獻子 請于諸侯而先歸會葬 . 주석 ⊙ 十有二月 , 仲孫蔑 會 晉侯 · 宋公 · 衛侯 · 邾 子 · 齊崔杼 同盟于 虛 朾 : 심흠한의 『지명보주』에선 허정 虛 朾 은 현 산동성 사수현 泗水縣 이라고 한다 . 즉 노나라 땅으로 본 것이다 . 그러나 원유고 元兪皋 의 『춘추집전석의대성』에선 허정은 곧 허 虛 라고 주장한다 . 허는 『춘추·환공 12 년』의 주석을 참조하라 . 즉 송나라 땅이다 . 송나라 땅으로 보는 것이 비교적 정확하다 . 진의 군주는 아직 멀리 노나라 땅까지 올 수는 없었다 . 춘추시대 지도. 허정虛 朾 ▣ 十二月 , 孟獻子 會于 虛 朾 , 謀救 宋 也 . 宋 人辭諸侯而請師以圍 彭城 . 孟獻子 請于諸侯而先歸會葬 : 주석 없음 .

노나라에 출병을 요청한 진나라 (춘추좌전.8.18.13.)

노나라에 출병을 요청한 진나라 진나라의 사방 士魴 이 우리나라로 와서 출병을 요청했다 . 계문자가 장무중에게 동원할 군의 규모를 물었다 . 장무중이 대답했다 . “정나라를 정벌할 때 실로 지백 知伯 ( 순앵 ) 이 왔었는데 그는 하군의 보좌였습니다 . 지금 체계 彘季 ( 사방 ) 역시 하군의 보좌이므로 당시 출병시켰던 군사의 수와 동일하면 되겠습니다 . 대국을 섬길 때 , 사신의 지위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고 좀더 더하여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 예입니다 . ” 계문자는 그의 의견을 따랐다 . 원문 (8.18.13.)  晉士魴 來乞師 . 季文子 問師數於 臧武仲 , 對曰 : “ 伐 鄭 之役 , 知伯 實來 , 下軍之佐也 . 今 彘季 亦佐下軍 , 如伐 鄭 可也 . 事大國 , 無失班爵而加敬焉 , 禮也 . ” 從之 . 주석 ⊙ 晉侯 使 士魴 來乞師 : “방 魴 ”은 『공양』에선 “ 彭 ”으로 쓴다 . 두 글자는 고음에서 유사하기 때문에 통가한다 . ▣ 晉士魴 來乞師 . 季文子 問師數於 臧武仲 : 장무중은 장손흘 臧孫紇 로서 장선숙 臧宣叔 , 장손허 臧孫許 의 아들이다 . 군사를 얼마나 낼지를 물어본 것 . ▣ 對曰 : “ 伐 鄭 之役 , 知伯 實來 : 지백은 순앵이다 . 지난해의 경문을 참조 . ▣ 下軍之佐也 . 今 彘季 亦佐下軍 , 如伐 鄭 可也 . 事大國 , 無失班爵而加敬焉 : 반작에 대해서는 『좌전·장공 23 년』을 참조 . 즉 사신으로 온 사람의 작위의 고하에 따라 출병의 수를 결정해야 하고 또 더 많을 수는 있지만 적게할 수는 없음을 말한 것 . ▣ 禮也 . ” 從之 : 주석 없음 .

팽성을 구하기 위해 송나라를 정벌한 초나라 자중 (춘추좌전.8.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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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을 구하기 위해 송나라를 정벌한 초나라 자중 겨울 11 월 , 초나라의 자중이 팽성 彭城 ( 강소성 서주시 徐州市 ) 을 구원하기 위해 송나라를 정벌했다 . 송의 화원이 진나라로 가서 위급을 알렸다 .  한헌자가 집정이었고 , 말했다 . “사람을 얻으려면 반드시 먼저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패업을 이루고 , 변경을 안정시키는 일은 송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 ” 여공은 태곡 台谷 ( 미상 ) 에 군사를 주둔시켜 송나라를 구원했다 . 미각지곡 靡角之谷 ( 팽성 부근 ) 에서 초군과 마주치자 초군이 퇴각했다 . 원문 (8.18.12.)  冬十一月 , 楚子重 救 彭城 , 伐 宋 . 宋華元 如 晉 告急 . 韓獻子 爲政 , 曰 : “ 欲求得人 , 必先勤之 . 成霸 · 安彊 [1] , 自 宋 始矣 . ” 晉侯 師于 台谷 以救 宋 . 遇 楚師 于 靡角之谷 , 楚 師還 . (1)   『석경』과 송본 , 금택문고본에는 모두 “강 疆 ”자로 쓴다 . 안강은 강역을 안정시킴의 뜻이다 . 그러나 초나라는 단지 송나라를 정벌하는 것이지 진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아니므로 진의 강역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보기엔 무리다 . 그러므로 “강 彊 ”으로 쓰는 것이 옳다 . 주석 ▣ 冬十一月 , 楚子重 救 彭城 , 伐 宋 . 宋華元 如 晉 告急 . 韓獻子 爲政 : 당시 난서가 만약 많은 나이로 인해 은퇴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면 사망한 것 같다 . 그래서 한궐이 그를 대신해 중군의 장수로 있었다 . 춘추시대 지도. 팽성 ▣ 曰 : “ 欲求得人 : 득인은 得諸侯 와 같다 . ▣ 必先勤之 : 근은 로 勞 . 그를 위해 힘쓰는 일이 있어야 한다 . 「진어 2 」의 “ 秦 人勤我矣 . ”에 대해 위소는 “근아 勤我 는 우리를 돕다 ( 助 ) 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 근과 조 역시 통한다 . ▣ 成霸 · 安彊 : “강”자는 『석경』과 송본 , 금택문고본에는 모두 “강 疆 ”자로 쓴다 . 안강은 강역을 안...

성공의 서거 (춘추좌전.8.18.11)

성공의 서거 기축일 (7 일 ), 『춘추』에 “ 성공이 노침에서 서거했다 .” 라고 쓴 것은 도리에 맞았음을 언급한 것이다 . 원문 (8.18.11)  己丑 , 公薨于路寢 , 言道也 . 주석 ▣ 己丑 , 公薨于路寢 , 言道也 : 『춘추·장공 33 년』의 주석에 자세한 설명이 있다 .

유원지 조성 (춘추좌전.8.18.10.)

유원지 조성 노나라가 녹 鹿 에 유원지를 조성했다 . 『춘추』에 기록한 까닭은 공사가 때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 원문 (8.18.10)  築 鹿 囿 , 書 , 不時也 . 주석 ⊙ 築 鹿 囿 : 『춘추』에선 세 번 “ 築囿 ”를 언급한다 . 본문과 소공 9 년의 “ ( 築 郞 囿 ) ” , 정공 13 년의 “ ( 築 蛇淵 囿 ) ”가 있다 . “낭”과 “사연”은 모두 지명이므로 본문의 “록”역시 당연히 지명이다 . “록유”는 사슴을 기르는 공원은 아닐 것이다 . ▣ 築 鹿 囿 , 書 , 不時也 : 주나라의 8 월은 하력으로 6 월이므로 농사일로 바쁠 때이다 . 토목공사에 힘쓸 때가 아니다 .

주邾 선공이 내조했다 (춘추좌전.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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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선공이 내조하다 8 월 , 주 邾 선공이 내조했는데 , 즉위하여 우리나라에 와서 조견한 것이다 . 원문 (8.18.9.)  八月 , 邾 宣公 來朝 , 卽位而來見也 . 주석 ▣ 八月 , 邾 宣公 來朝 , 卽位而來見也 : 지난해 12 월의 『춘추』에서 “주나라 군주 확차가 죽었다”고 적었다 . 주 선공이 올해 즉위했다 .  춘추시대 지도. 주나라

송나라, 팽성을 포위하다 (춘추좌전.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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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을 포위한 송나라 7 월 , 송나라의 노좌 老佐 와 화희 華喜 가 팽성 彭城 ( 강소성 서주시 徐州市 ) 을 포위했지만 노좌가 팽성에서 전사했다 . 원문 (8.18.8.)  七月 , 宋老佐 · 華喜 圍 彭城 , 老佐 卒焉 . 주석 ▣ 七月 , 宋老佐 · 華喜 圍 彭城 : 노좌는 당시 사마였음이 『좌전·성공 15 년』의 기사에 보인다 . 춘추시대 지도. 팽성 彭城 ▣ 老佐 卒焉 : 두예 : “팽성의 전투을 이기지 못한 사실을 말한 것이다 . ”

진나라에 성혼을 요청하는 기나라 (춘추좌전.8.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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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에 성혼을 요청하는 기나라 가을 , 기 杞 환공이 내조하여 성공의 노고를 위로하고 , 또 진나라의 상황을 물었다 . 성공이 진 도공에 대해 얘기했다 . 기 환공은 이 때문에 급히 진나라를 예방하고 혼사를 청했다 . 원문 (8.18.7.)  秋 , 杞桓公 來朝 , 勞公 , 且問 晉 故 . 公以 晉 君語之 . 杞伯 於是驟朝于 晉 而請爲昏 . 주석 ▣ 秋 , 杞桓公 來朝 , 勞公 , 且問 晉 故 . 公以 晉 君語之 : 두예 : “진 도공의 덕정에 대해 얘기했다 . ” 춘추시대 지도. 기 杞 나라 ▣ 杞伯 於是驟朝于 晉 而請爲昏 : 취 驟 에는 빠름과 자주의 두 가지 뜻이 있다 . 당시 기 환공은 즉위한 지 64 년이 되는 해였으므로 매우 연로했다 . 그러므로 자주의 뜻보다는 신속하게 뜻으로 보는 것이 옳다 .

진나라의 범선자가 노나라를 답방하다 (춘추좌전.8.18.6.)

범선자가 답방하다  성공이 진나라로부터 돌아와 종묘에서 음지를 거행했다 . 진의 범선자가 와서 빙문했고 , 또 성공의 조견에 사례했다 . 군자는 이 때문에 진나라가 예를 갖췄다고 말했다 . 원문 (8.18.6.) 公至自 晉 . 晉范宣子 來聘 , 且拜朝也 . 君子謂 晉 於是乎有禮 . 주석 ▣ 公至自 晉 . 晉范宣子 來聘 , 且拜朝也 : 노 성공이 진 도공을 예방한 것에 대한 답방이었다 . ▣ 君子謂 晉 於是乎有禮 : 소국의 군주가 대국을 예방하면 대국의 경이 예방에 대해 답방하는 것이 나라 간 왕래의 예이다 .

초 공왕이 팽성彭城을 탈취해 어석에게 주다 (춘추좌전.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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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을 탈취해 어석에게 준 초나라 여름 6 월 , 정 성공이 송나라를 침략하여 조문 曹門 ( 서북문 ) 밖에 이르렀다 . 이어 초 공왕과 회합하여 송나라를 정벌하고 조겹 朝 郟 ( 하남성 하읍현 夏邑縣 ) 을 빼앗았다 . 초나라 자신 子辛 과 정나라 황신 皇辰 이 성고 城郜 ( 안휘성 소현 蕭縣 ) 를 침략하여 유구 幽丘 ( 안휘성 소현 蕭縣 ) 를 탈취했다 . 함께 팽성 彭城 ( 강소성 서주시 徐州市 ) 을 공격해 송나라의 어석 , 상위인 , 인주 , 향대 그리고 어부 등을 그곳으로 들여보냈으며 300 대의 전차로 팽성을 수비하게 하고 돌아왔다 . ( ☞ 8.15.4.) 『춘추』에선 “부입 復入 ”으로 썼다 .  범례에 따르면 , 군주 및 신하가 나라를 떠났다가 국인들이 그를 영접하여 옹립하는 경우 “입 入 ”으로 쓰고 , 과거 그의 지위를 회복하는 경우 “복귀 復歸 ”라고 하며 , 제후들이 호위하여 들여보내는 경우 “귀 歸 ”로 쓰 고 , 국인의 동의없이 들어오는 경우 이를 미워하여 “부입 復入 ”으로 쓴다 .  송나라 사람들은 어석 등이 팽성으로 들어간 것을 걱정했다 . 서서오 西鉏吾 가 말했다 . “왜 걱정하십니까 ? 만약 초나라가 우리와 함께 어석 등을 미워하고 덕으로 우리를 대한다면 진심으로 초나라를 섬기고 감히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면 됩니다 . 그러나 대국이 만족을 모르고 우리를 그들의 읍으로 삼더라도 오히려 유감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우환이 될 것입니다 .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가 미워하는 이들을 거두어 그들을 사주하여 국정에 간섭하고 틈을 엿본다면 이 역시 우리의 근심거리입니다 . 현재 초나라는 제후들의 간신들을 높이고 땅을 떼어 교통의 요지를 막고 있습니다 . 간신들의 뜻을 만족시키고 기왕에 복종했던 나라들을 이탈케 하며 , 길이 막힌 제후에게 해를 끼쳐 오나라와 진나라를 두렵게 만들고 있으니 우리에겐 이익이 많은 일이지 근심거리는 아닙니다 . 우리가 무엇 때문에 진나라를 섬겼습니까 ? 진나라는 필시 우리를 도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