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공왕이 팽성彭城을 탈취해 어석에게 주다 (춘추좌전.8.18.5.)


팽성을 탈취해 어석에게 준 초나라


여름 6, 정 성공이 송나라를 침략하여 조문曹門(서북문) 밖에 이르렀다. 이어 초 공왕과 회합하여 송나라를 정벌하고 조겹(하남성 하읍현夏邑縣)을 빼앗았다. 초나라 자신子辛과 정나라 황신皇辰이 성고城郜(안휘성 소현蕭縣)를 침략하여 유구幽丘(안휘성 소현蕭縣) 탈취했다. 함께 팽성彭城(강소성 서주시徐州市)을 공격해 송나라의 어석, 상위인, 인주, 향대 그리고 어부 등을 그곳으로 들여보냈으며 300대의 전차로 팽성을 수비하게 하고 돌아왔다. (8.15.4.) 『춘추』에선 “부입復入”으로 썼다

범례에 따르면, 군주 및 신하가 나라를 떠났다가 국인들이 그를 영접하여 옹립하는 경우 “입”으로 쓰고, 과거 그의 지위를 회복하는 경우 “복귀復歸”라고 하며, 제후들이 호위하여 들여보내는 경우 “귀”로 쓰, 국인의 동의없이 들어오는 경우 이를 미워하여 “부입復入”으로 쓴다

송나라 사람들은 어석 등이 팽성으로 들어간 것을 걱정했다. 서서오西鉏吾 말했다. “왜 걱정하십니까? 만약 초나라가 우리와 함께 어석 등을 미워하고 덕으로 우리를 대한다면 진심으로 초나라를 섬기고 감히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대국이 만족을 모르고 우리를 그들의 읍으로 삼더라도 오히려 유감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우환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가 미워하는 이들을 거두어 그들을 사주하여 국정에 간섭하고 틈을 엿본다면 이 역시 우리의 근심거리입니다. 현재 초나라는 제후들의 간신들을 높이고 땅을 떼어 교통의 요지를 막고 있습니다. 간신들의 뜻을 만족시키고 기왕에 복종했던 나라들을 이탈케 하며, 길이 막힌 제후에게 해를 끼쳐 오나라와 진나라를 두렵게 만들고 있으니 우리에겐 이익이 많은 일이지 근심거리는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진나라를 섬겼습니까? 진나라는 필시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원문


(8.18.5.) 夏六月鄭伯曹門. 遂會楚子. 楚子辛·鄭皇辰城郜幽丘. 同伐彭城宋魚石·向爲人·鱗朱·向帶, 魚府以三百乘戍之而還. 書曰 復入. 凡去其國國逆而立之曰; 復其位, 復歸; 諸侯納之, ; 以惡曰復入. 人患之. 西鉏吾: 何也? 人與吾同惡以德於我吾固事之也不敢貳矣. 大國無厭鄙我猶憾. 不然而收吾憎使贊其政以間吾釁亦吾患也. 今將崇諸侯之姦而披其地以塞夷庚. 逞姦而毒諸侯而懼·吾庸多矣非吾憂也. 且事何爲? 必恤之.


주석


楚子·鄭伯. 宋魚石復入于彭城: 팽성彭城은 현 강소성 서주시徐州市이다.

 

춘추시대 지도. 팽성彭城


夏六月鄭伯曹門: 두예: “조문曹門은 송나라의 성문이다.” 고동고의 『대사표』72에서는 송나라에서 조나라를 향해 출발할 때 반드시 이 문을 통해 가야했기 때문에 조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나라는 송나라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조문은 송나라의 서북문이다.

遂會楚子: 『휘찬』에 따르면, 조겹은 현 하남성 하읍현夏邑縣이다.

楚子辛·鄭皇辰城郜: 자신子辛『춘추·양공원년』에 언급되는 공자임부로서 일찍이 초나라의 우윤과 영윤을 지냈고 양공 5년에 피살되었다.

幽丘: 성곡城郜과 유구幽丘는 현 안휘성 소현蕭縣이다.

同伐彭城: 이때 병력은 양분되어 정 성공과 초 공왕이 함께 송나라의 조겹을 취하고, 자신과 황신이 송나라의 유구를 취했다. 그 후에 합세하여 함께 팽성을 쳤다. 팽성은 현 강소성 서주시徐州市이다.

宋魚石·向爲人·鱗朱·向帶, 魚府: 5명은 송나라에서 초나라로 망명했던 사람들이다. 『좌전·성공15년』의 기사 참조. 『춘추·성공15년』과 올해의 『춘추』에선 다섯 사람 중 어석 한 사람만을 기록했다.

以三百乘戍之而還. 書曰 復入. 凡去其國國逆而立之曰 ; 復其位, 復歸; 諸侯納之, ; 以惡曰 復入: 이 네 가지는 『춘추』의 서법을 해석한 것인데 『춘추』전체를 살펴보면 매우 들어맞지 않는 설명이다. 공영달의 『소』는 이를 미봉하려 했지만 복입 때문에 어려웠다. 왕석의 『춘추황강론』이나 유창의 『춘추권형』, 손각의 『춘추경해』, 소초의 『춘추변의』, 섭몽득의 『좌전헌』과 『춘추고통론』, 장자초의 『춘추종주변의』, 진풍의 『동숙독서기』에 모두 이를 반박하는 주장이 실려 있다. 일본의 안정형의 『좌전집석』은 “國逆而立之曰歸…… 諸侯納之曰入”으로 “입”과 “귀” 두 글자를 바꿔써야 옳은 것이 아닌가 주장했다. 오개생의 『좌전미』는 그의 부친 오여륜의 주장을 인용하여 “경문을 해석한 것 중 실체가 없는 주장은 모두 후대의 경사들이 만든 것이지 『좌씨』의 문장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같은 주장들이 모두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심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옳다.

人患之: 이 문구는 앞의 글 “300승의 병사와 함께 돌아오다”는 말과 관련이 있다. 書曰復入”은 인용문이다.

西鉏吾: 何也?: 우리가 근심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뜻.

人與吾同惡以德於我吾固事之也不敢貳矣: 두예: “오는 어석을 가리킨다.

大國無厭鄙我猶憾: 두예: “우리가 초나라를 섬기면 우리나라를 그들의 읍으로 삼아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한탄할 것이니 이것이 우리의 근심이다.

不然而收吾憎使贊其政: 두예: “초나라가 우리나라와 함께 어석을 미워하지 않고 그를 등용해 정치를 보좌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以間吾釁亦吾患也: 어석이 그들에게 이용당하여 우리나라의 틈을 엿본다면 역시 우리의 근심이다.

今將崇諸侯之姦而披其地: 『상서·목서』의 “사방의 죄를 짓고 도망친 자들을 높이고 존중하여(是崇是長)”에서의 “숭”과 뜻이 같다. 존중한다는 의미. 는 나누어 주다. 숭간이란 어석과 같은 사람들을 존중함이다. 피지는 송나라의 팽성을 빼앗아 어석에게 준다는 의미. 「송세가」는 “평공3년 초 공왕이 송나라의 팽성을 빼앗아 송나라의 좌사 어석에서 주었다”고 말한다.

以塞夷庚: 는 평의 뜻; 경과 항 통하며 길의 뜻. 이경은 수레가 왕래하는 평평한 길. 홍량길의 『고』에 설명이 자세하다. 팽성은 나라 간 왕래의 요충지로서 초나라가 파견한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을 막는다고 말한 것.

逞姦而: 영간은 간사한 어석 등의 뜻을 만족시킴이다. 휴복은 본래 초나라에 복종한 나라를 그 때문에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 휴는 이탈함.

毒諸侯而懼·: 이 문구는 “평평한 길을 막다”를 가리킨다. 각국의 왕래를 방해하고 더욱이 오나라와 진나라가 왕래할 때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길을 막는 행위이다. 그래서 제후들에게 독이 되고 오나라와 진나라가 두렵게 된다.

吾庸多矣非吾憂也: 초나라가 이와 같이 한다면 우리에겐 이로운 일이지 우리의 근심거리는 아니다.

且事何爲? 必恤之.: 두예: “송나라가 진나라를 항상 섬겼던 까닭은 다 이런 환란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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