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영공이 국좌의 반란을 진압하다 (춘추좌전.8.18.2.)


제 영공이 국좌의 반란을 진압하다


경씨의 난( 8.17.9.)때문에 갑신일 그믐 제 영공이 화면華免을 사주해 내궁의 조정에서 국좌를 과로 내리쳐 죽였다. 많은 사람들이 부인의 궁으로 도망쳤다.

『춘추』에 “제나라가 그 대부 국좌를 죽였다(殺其大夫國佐.).”고 쓴 까닭은 그가 군주의 명을 어겼고, 독단으로 경극을 살해했으며, 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영공은 청의 백성을 사주해 국승國勝을 죽였다. 국약國弱(국승의 아우)이 우리나라로 도망쳐 왔다. 왕추王湫는 래나라로 도망쳤다. 경봉慶封이 대부가 되었고 경좌慶佐는 사구司寇가 되었다. 그 후 제 영공은 국약을 돌아오게 하여 국씨의 후계로 삼았으니 예에 맞다.


원문 

(8.18.2.) 慶氏之難故甲申晦齊侯使士華免以戈殺國佐于內宮之朝. 師逃于夫人之宮. 書曰 殺其大夫國佐”,棄命·專殺·叛故也. 使人殺國勝. 國弱來奔. 王湫. 慶封爲大夫慶佐爲司寇. 齊侯國弱使嗣國氏禮也.



주석

慶氏之難故: 국좌가 경극을 살해한 사건은 지난해의 『좌전』참고.

甲申晦: 왕도는 3월 그믐이라고 말했지만 옳지 않다. 이해 정월은 작은 달이고 병진일이 초하루였으므로 정월 그믐이 맞다. 왕도는 정월을 큰 달로 봤다.

齊侯使士華免以戈殺國佐于內宮之朝: 두예의 주석과 『세족보』에 따르면, “사”는 관명이고 화면”은 사람의 이름이다. 는 법을 관장하는 관리이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국좌를 죽이게 한 것이다. 내궁에 대해 두예는 부인의 궁이라고 설명했지만 다음 글에 별도로 “부인지궁”이 나오기 때문에 이 내관은 제 영공이 연거하는 궁이 아닌가 싶고, 조는 내궁의 전면에 있는 당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제 영공은 국좌에게 연침으로 오라고 명령한 후 사람을 시켜 죽인 것이다.

師逃于夫人之宮: 는 무리. 당시에 “내궁의 조”에 있던 기타의 사람들. 그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도망치다가 부인의 궁으로 도망쳐 들어간 것이다.

書曰殺其大夫國佐”,棄命·專殺·叛故也: 기명은 제후와 함께 정나라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포기하고 먼저 귀국한 일이다. 세 가지 죄명은 모두 지난해의 『좌전』기사 참조. 「주어하」에는 선양공이 국좌에 대해 “음란한 나라의 집정으로서 말을 가리지 않고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끝내 피살되었다. 『좌전』의 설명과는 좀 다르다.


춘추시대 지도. 청


使人殺國勝: 국승은 이때 “청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난해의 『좌전』에 있다.

國弱來奔: 국약國弱은 국승의 동생이다.

王湫: 왕추는 국좌의 무리이다.

慶封爲大夫慶佐爲司寇: 제나라의 대부는 제후의 경의 지위에 해당하고 광의의 대부가 아니다. 사구는 항상 대부가 맡은 것은 아니며 경좌는 양공 21년에 비로소 대부가 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경극의 아들이다.

齊侯國弱使嗣國氏禮也: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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