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후의 즉위와 빙문 (춘추좌전.9.1.5.)




기원전 572년. (진 도공 2년, 위 헌공 5년, 초 공왕 19년)


겨울, 위나라의 자숙子叔과 진나라의 지무자知武子(순앵)가 와서 빙문했으니 예에 맞다. 범례에 따르면, 제후가 즉위하면 소국은 군주가 조견하고 대국은 경이 빙문하여, 이전의 우호를 계승하고 신의를 결속하며 양국의 업무를 상의하고 상호간에 과오를 보완하는 것이 예의 큰 줄기이다.


원문

(9.1.5.) 衛子叔·晉知武子來聘禮也. 凡諸侯卽位小國朝之大國聘焉以繼好·結信·謀事·補闕禮之大者也.


주석

衛侯使公孫剽來聘: 공손표는 자숙흑배의 아들이다. 현재 전해지는 기에 위자숙무부고(衛子叔旡父 )가 있는데, 『적미거금문설』에선 즉 공손표가 군주에 오르기 이전에 제작한 기라고 설명한다. 표는 목공의 손자이며 정공의 아우의 아들이다. 흑배에 대해서는 『좌전·성공10년』의 주석을 참조. (참고. 성공좌전.10.2.: 衛子叔黑背命也.)

晉侯使荀罃來聘: 당시 천자 간왕은 이미 서거했다. 고대의 예에 근거하면 제후간에 예방을 한다. 두예는 비록 왕이 사망은 했지만 부고가 아직 각 나라에 도착하지 않아 제후가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고 사신은 이미 길을 떠난 상태였는데 대략 그 시간을 따져보면 건자를 기준으로 10월 초라고 설명하고 있다.

衛子叔·晉知武子來聘: 자숙은 공손표이다. 지무자는 순앵으로 『춘추』의 주석에 상세하다.

禮也. 凡諸侯卽位小國朝之: 주 선공이 노나라 양공을 예방한 일을 가리킨다.

大國聘焉: 위나라는 비록 대국은 아니지만 노나라와 비교하여 필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진나라는 이 당시 패자를 칭하고 있었지만 역시 제후국이다.

以繼好·結信·謀事·補闕: 두예: “궐은 과실과 같다.

禮之大者也: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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