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문자(士燮)의 기도 (춘추좌전.8.17.3)


범문자의 기도


진나라의 범문자가 언릉鄢陵에서 돌아와 집안의 축종을 시켜 자신의 죽음을 기원하게 했다. “군주는 교만한데 적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은 하늘이 그의 교만을 더해주는 것이니 장차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 나를 아낀다면 내가 속히 죽어 화를 입지 않도록 축원하는 것이 범씨의 복이다. 6월 무진일(9), 사섭이 타계했다.


원문 

(8.17.3.) 晉范文子反自鄢陵使其祝宗祈死, : 君驕侈而克敵是天益其疾也難將作矣. 愛我者唯祝我, 使我速死無及於難范氏之福也.六月戊辰士燮.


주석

晉范文子反自鄢陵: 전년 언릉의 전투에서 돌아온 것.

使其祝宗祈死: 축종은 축사祝史 우두머리로 생각된다. 경대부 가문에는 축사가 있다. 『좌전·양공27년』의 기사로 입증할 수 있다. 축종 역시 존재하는데 본문과 『좌전·소공25년』의 기사로 입증된다.

: 君驕侈而克敵是天益其疾也難將作矣. 愛我者唯祝我: 고대에는 저주 역시 축이라고 말했다. 『상서·무일』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입으로 저주하게 될 것(否則厥口詛祝), 『시·대아·탕』의 “속이고 저주하며(侯作侯祝)” 등에서 축은 모두 저주이다.

使我速死無及於難范氏之福也.六月戊辰: 무진일은 9일이다.

士燮: 「진어6」에서는 진 여공 7년 여름 범문자가 죽었다고 한다. 『좌전·소공25년』의 “겨울 10월 신유일, 소자가 재계하고 침소에 들며, 축종에게 죽음을 위해 기도를 올리라고 시켰다. 무진일에 죽었다.”는 기사가 있는데 본문과 유사하다. 두예는 두 사람 모두 기도를 드리게 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공영달의 『소』는 유현의 주장을 인용하여 자살은 아니라고 한다. 혹 두 사람 모두 지병이 있어서 죽기를 청하는 기도를 한 것은 아닌가? 그래서 기도한 날과 실제 죽은 날이 시간적 격차가 있어서 멀게는 일 년, 가깝게는 7일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심흠한의 『보주』와 초순의 『보소』 모두 두예의 주석을 반박하고 있는데 그들의 말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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