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국좌國佐의 반란 (춘추좌전.8.17.9.)
국좌의 반란
제 영공이 최저崔杼를 대부로 삼고 경극慶克에게 그를 보좌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반란을 일으킨 고약의) 노盧를 포위하게 했다.
국좌는 그때 제후들을 따라 정나라를 포위하고 있었는데 국내의 반란 때문에 제후들에게 양해를 구해 귀국했다. 그는 곧바로 노盧로 가서 경극을 죽이고 자신의 채읍 곡穀(산동성 동아현東阿縣)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
영공이 서관徐關(산동성 치천진緇川鎭의 서쪽)에서 국좌와 결맹하고 그를 복권시켰다. 12월, 고약이 농성하던 노가 항복했다. 국좌의 아들 국승國勝을 진나라로 파견해 변고를 알렸고 청清(산동성 요성현聊城縣의 서쪽)에서 명을 기다리게 했다. (☞ 8.18.2.)
원문
(8.17.9.) 齊侯使崔杼爲大夫,使慶克佐之,帥師圍盧. 國佐從諸侯圍鄭,以難請而歸. 遂如盧師,殺慶克, 以穀叛. 齊侯與之盟于徐關而復之. 十二月,盧降. 使國勝告難于晉,待命于清.
주석
▣齊侯使崔杼爲大夫,使慶克佐之,帥師圍盧: 앞의 『전』에서 “고약高弱이 노盧와 반란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래서 포위한 것.
▣國佐從諸侯圍鄭,以難請而歸: 제나라에서 일어난 변고 때문에 제후들에게 알리고 귀국한 것.
▣遂如盧師: 노를 포위하고 있는 군대에 도착.
▣殺慶克, 以穀叛: 곡穀은 『춘추·장공7년』의 주석 참조.
▣齊侯與之盟于徐關而復之: 서관은 『좌전·성공2년』의 주석 참조.
▣十二月,盧降. 使國勝告難于晉: 국승國勝은 국좌의 아들.
▣待命于清: 청淸은 제나라 읍. 현 산동성 요성현聊城縣의 서쪽(과거 당읍현의 동남쪽)이다. 두예: “제나라는 국좌를 토벌하려 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바깥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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