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정나라를 정벌하고 연합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침략하다 (춘추좌전.9.1.2.)


⊙ 기원전 572년 (진 도공 2년, 제 영공 10년, 초 공왕 19년, 정 성공 13년) 



여름 5, 진의 한궐과 순언이 제후들의 군사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정벌하여 외성으로 쳐들어가 유수洧水 가에서 정나라 보병을 물리쳤다

이때 동방 제후들의 군대는 (하남성 저현雎縣의 동남쪽)에 주둔하며 진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군은 정나라에서 출발하여 증에 주둔하던 제후군을 거느리고 초나라의 초 그리고 진나라를 침략했다

진 도공과 위 헌공은 척(하남성 복양현濮陽縣의 북쪽)에 머물며 후방에서 군대를 지원했다.


원문 

(9.1.2.) 夏五月晉韓厥·荀偃帥諸侯之師伐入其敗其徒兵於. 於是東諸侯之師次于, 以待. 師自之師侵楚焦·. 晉侯·衛侯次于以爲之援.



주석

晉韓厥帥師伐: 『공양』은 “궐”을 “굴”로 썼다.

仲孫蔑齊崔杼···人次于: 『공양』은 “증”을 “합”으로 썼다. 한궐에 대해서는 앞서 『좌전·선공12년』의 주석에서 다룬 바 있다. 최저는 『좌전·선공10년』의 주석에 상세하다. 에 대해 두예는 “정나라 땅으로서 진류陳留 양읍현襄邑縣의 동남쪽에 있다”라고 말한다. 대략 현 하남성 저현雎縣의 동남쪽 40리 떨어진 곳이다.


춘추시대 지도. 증鄫


 夏五月晉韓厥·荀偃帥諸侯之師伐: 『좌전·성공18년』에 따르면, 당시 한궐은 집정으로서 중군의 장수였고 순언은 부장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춘추』에서는 한궐만 썼다.

入其: 부는 곽과 같다. 『좌전·은공5년』의 주석에서 다루었다. 『공양전·문공15년』에 “부란 무엇인가? 규모가 큰 외성(恢郭)을 말한다.”라고 풀이하는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외성을 부라고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좌전』으로 살펴보면 부와 곽은 구별이 없다.

敗其徒兵於: 유수洧水는 하남성 등봉현 동남쪽 양성산陽城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밀현密縣을 지나서 진수溱水와 합류하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가다 쌍계하洎河가 된다. 다시 동쪽으로 신정·장갈·유천·언릉·부구 등 여러 현을 지나 가노하賈魯河로 합류한다. 정나라의 수도는 현 신정현의 서북쪽이고, 유수는 그 서남쪽을 흐르는 것으로 생각된다. 『좌전·소공19년』의 “용이 시문時門 밖 유연洧淵에서 싸웠다”라는 기사에 대해 유월은 시문은 곧 정나라 도읍의 서문이고 유연은 유수가 지나가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於是東諸侯之師次于: 증은 경문의 주석 참조.


춘추시대 지도. 초


以待. 師自之師侵楚焦·: 초와 이 두 읍은 본래 모두 진나라 땅이었다. 『좌전·희공23년』의 주석 참조.

晉侯·衛侯次于: 『춘추·문공원년』의 주석 참조.

以爲之援: 진나라를 침략한 군사들의 뒤를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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